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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01. 2021

슬픈 표정도 아름답다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웃다가 우는 아이.. 울다가 웃는 아이..?!!



   서기 2021년 9월 27일 아침,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수상했다. 하니와 함께 집을 나서 아침운동을 시작하려던 찰나, 도시를 가로지르는 작은 도로 위로 빗방울이 발견되기 시작했지. 하나둘씩 발견되던 빗방울은 검은 대리석 위를 점점이 수놓기 시작했다. 가랑비도 아닌 것이 보슬비도 아닌 가는 빗방울이 도로 위를 수놓자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어머머.. 비 오시는 거 아냐.. 우산 가져와야겠어..!"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대답도 하기 전에 먼저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바빴다. 집을 나선 지 불과 1분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검은 대리석을 깔아 놓은 도로 위로 몇 방울의 비가 더 떨어졌을까.. 요즘 이곳 바를레타의 날씨는 오락가락한다. 건기가 끝난 바닷가는 무시로 기온이 바뀌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추위를 느낄 정도였으며 외투를 지참해야 할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그리고 비까지 오락가락.. 아침운동에 외투를 지참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날 아침의 기온은 바람을 느낄 수 없어서 그런지 포근하게 느껴졌다. 마치 봄 날씨 같은 날씨가 아침운동에 나서는 우리의 발길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멀었다. 집을 나서 작은 도시를 가로질러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바닷가 언덕까지 진출해야 당일 아침의 일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재빨리 챙겨 온 우산을 서로 나눠 보조가방에 넣고 바닷가 산책로에 접어들자마자 저만치 아드리아해 너머로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발그래한 바닷가.. 



그 너머 먹구름으로부터 비가 쏟아져 내리는 풍경이 눈에 띄었다. 집을 나설 때 빗방울이 희미하게 도로 위로 떨어졌지만, 막상 산책로에 들어서자 빗방울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서 비를 쏟아내는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해 동쪽 하늘 위로 구름이 덮여있고 서쪽 하늘도 같거니 비슷할 정도의 구름이 덮인 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요즘 바를레타의 바닷가는 을씨년스럽다. 코로나 시대가 대략 3년 정도 길게 이어지면서, 해수욕객을 상대로 비치파라솔을 임대하던 사업장들이 문을 걸어 잠그거나 아예 폐쇄를 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 때 사람들이 우글거리던 해변이 텅 비어가는 모습이 눈에 도드라지는 것이다. 코로나 19는 이탈리아 동부 해안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하니는 한국을 두 차례 오갔다. 그동안 이곳에 혼자 남아 바닷가 풍경을 지켜본 1인의 눈에 비친 아드리아해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그녀와 함께 거니는 바닷가 산책로의 풍경은 많이도 달라졌다. 하니는 지난 8월 11일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을 통해 다시 입국했으므로, 그동안 나의 행적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코로나가 이탈리아는 물론 지구촌을 힘들게 할 때 잠시 아침운동을 띄엄띄엄 걸렀다. 아예 사람들과 접촉을 피했다. 집 앞 공원도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거리를 활보했다. 아니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의 수는 크게 줄었다. 그런 풍경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곳 바를레타는 거의 정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빡쎈 아침운동을 감행했다. 매일 10km에 이르는 거리를 소화해 냈다. 그때 바닷가에서 만난 아름다운 님.. 이때부터 매일 아침 해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해님은 매일 아침 화장을 고치고 나를 맞이했다. 어떤 때는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수수한 차림으로.. 그런가 하면 섹시한 모습까지.. 



천의 얼굴을 한 해님을 만나면서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해님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길들여진 나.. 나는 이때부터 아드리아해 너머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해님이 보고 싶었다. 안달이 났다. 매일 아침 04시가 되면 일어나 늦어도 04시 반이면 집을 나서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해님과 약속(?) 한 시간에 맞추어 내가 지정한 해돋이 명소에서 해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해님은 정확한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내게 눈을 맞추며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이 귀에 걸리곤 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슬픈 표정도 아름답다




그녀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 직후부터 해님과의 약속 시간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늘 한 장소에서 만나던 해님과의 만남은 장소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오늘은 이 카페.. 내일은 저 장소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해님도 처음 겪어야 하는 만남의 시간들 때문에 삐친 것일까.. 



어느 날부터 해님은 수평선 너머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아드리아해는 검은띠로 만들어진 구름을 머리에 이고 해님을 숨기곤 했다. 곧 "삐친 해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내 곁에는 하니가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나누거나 챙겨 온 과일 나부랭이를 해돋이 장소에 펼쳐놓았다. 해님이 그걸 모르실 일이 없다. 해님은 비구름 너머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내려다보고 있었다.


"얄미운 여자 사람 1인.. 흥!"



이날 비는 오시지 않았다. 그 대신 해님은 비를 몰고 온 구름 뒤로 얼굴을 감추었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해님.. 지금은 잠시 잊힌 오래 전의 기억들이 되살아 난다. 웃다가 우는 아이.. 울다가 웃는 아이..



아이들은 슬픈 표정도 아름다운 법이다. 때 묻지 않은 동심(童心)..



웃다가 우는 아이.. 울다가 웃는 아이..



 조금 전까지 삐친 해님.. 이날, 해님은 구름 뒤에 숨어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울다가 웃는 아이처럼..



내가 해님의 이 같은 표정을 알게 된 것도.. 그동안 당신과 맺었던 관계 때문이자 길들여진 탓이겠지..



사노라면 별 일이 다 생긴다. 해님이 울다가 웃는 표정까지도 다 알게 된다. 잘 닦아둔 면경처럼..



영상, BARLETTA,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슬픈 표정도 아름답다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Quando il sole è triste
il 30 Sett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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