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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04. 2021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가

-하니와 함께 다시 찾은 돌로미티 여행

   하니와 함께 승강기 아래 오솔길을 따라 친퀘 또르리로 이동하는 동안 신의 그림자가 동행했다. 그 그림자는 어떤 때는 바람으로 어떤 때는 물소리로 어떤 때는 하늘빛으로 어떤 때는 풀꽃으로 어떤 때는 구름으로 어떤 때는 가느다란 실바람 등으로 동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 한순간 친퀘 또르리로 가는 길에 우리는 꽤 오래전에 만들어 둔 군사용 참호와 진지 등을 만났다. 그 흔적들은 수많은 군인들이 유명을 달리했던 전쟁터였으며,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들.. 그 곁으로 풀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곳에서 산화한 군인들의 혼령들이 부활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뺏고자 목숨을 걸고, 또 누군가는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락가락한 곳에 신의 그림자가 빼곡한 것이다. 그녀와 나는 친퀘 또르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전쟁의 상흔을 따라 걸으며, 그들 혼령들이 피워낸 아름다운 풀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 (1915-18, 제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 이탈리아 왕국 VS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돌로미티 친퀘 또르리의 참호를 배경으로 촬영된 1차 세계대전(1915-18) 이탈리아 전선의 모습.


그들 혼령들은 한 때 이곳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며, 휘영청 달 밝은 밤이면 고향에 남아있는 형제자매와 부모님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또 죽음보다 더한 추위가 엄습하면 오들오들 떨며 혹한의 겨울을 견뎠을 것이다. 당신의 위치가 노출될까봐 함부로 불을 피을 수도 없는 산중의 돌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가슴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한 신의 형상을 꿈꿀 수밖에 없었을 게 아닌가.. 그런 그들이 떠난 자리에 풀꽃들이 빼곡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하나와 나는 삶을 보장해주지도 못하는 참호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지난 포스트 그 산에 혼령(魂靈)들이 산다 편에 이렇게 썼다.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가




   서기 2021년 10월 3일 오후,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돌로미티 여행 사진첩을 열어놓고 여행의 흔적을 더듬는다.  돌로미티 여행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산중 곳곳에 등장하는 참호들일 것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만난 돌로미티의 빠쏘 퐐싸레고(Passo Falsarego)의 벙커 혹은 참호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친퀘 또르리의 참호들..



산중 곳곳으로 연결된 참호는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흔적들이었다. 세월은 가도 옛날의 흔적은 남는 것인지.. 여행자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들었다. 



1차 세계대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군인들이 참호를 중심으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전사를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지옥이 있다면 참호가 바로 지옥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전대미문의 전쟁이 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으며, 천만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각국의 군대들이 파 놓은 참호의 길이는 수천 킬로미터 이상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참호 속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그 속에서 4년 동안 적대국과 대치하는 지긋지긋한 전쟁이 이어졌던 것이다. 기록은 당시의 모습을 '생지옥'이라고 묘사했다. 



나는 당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참호 속을 천천히 걸으며 그들의 혼령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혼령들이 참호 속을 바쁘게 다니고 있었으며, 그들은 적군의 총알과 포격을 피해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이탈리아의 뜨렌티노 전선(IL FRONTE TRENTINO

NELLA PRIMA GUERRA MONDIALE)의  자료(아래 첨부)를 살펴보니, 뜨렌티노는 오스뜨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다. 


전쟁이 발발한 1914년 첫해에 징집된 인원만 5만 5천 명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러시아 군대와 싸웠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혔으며 11,400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915년 5월에는 이탈리아가 오스뜨리아-헝가리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뜨렌띠노는 전쟁의 캠프가 되었다.


위 영상에 등장하는 참호 <이탈리아 왕국 VS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촬영 장소 추정


이 전투로 수 백 킬로미터의 참호가 만들어졌으며 마을은 폭격을 당했다. 여자들과 노약자들은 집을 떠나야 했으며, 산중에 남아있는 군인들은 눈 속에서 지내도록 강요되었다. 한겨울.. 이탈리아군과 오스뜨리아-헝가리 연합군이 티롤 지역에서 전투를 하던 중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호 속에서 치러지는 전쟁 중에 이번에는 눈사태가 난 것이다. 눈 덮인 봉우리에서 눈사태가 났으며, 세 나라의 병사 1만여 명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그때가 1916년 12월이었다. 



기록은 이러하지만 우리가 돌로미티 여행을 하면서 체감한 온도에 따르면, 8월 중에도 겨울 같은 날씨였으므로 동사하거나 그에 준하는 고통을 호소한 병사들이 숱하게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병사 1만여 명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던 당시에는 평소와 다른 폭설이 내렸고, 양측 군대는 더 높은 봉우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군대와 병사를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참호와 동굴을 만들기 위한 폭파가 참상을 부른 것이다. 터널 건설과 전투 등으로 눈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병사들의 이런 헛된 죽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1918년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종전될 때까지 이손쪼 강(fiume isonzo)을 사이에 두고 14번의 전투가 더 벌어졌다고 한다. 돌로미티 곳곳에 남아있는 참호를 통해 당시의 참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당시를 돌아보니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깊숙한 곳에 있을 당시였다. 부모님이 태어날 당시였으며 조모님이 건강하게 생존해 있을 때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종전이 된 후 대한민국은 외세에 의해 통일되는 우여곡절 등을 통해 끔찍한 동족상잔을 겪으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6.25 동란을 거친 우리에게 남은 짐은 생각보다 컸으며, 오랫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혀왔다. 이번에는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잔재, 즉 적폐 세력들이 우리 민족을 못살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군사독재 정권에 빌붙은 정치검찰이자 사법부이며 이른바 기득권 세력들이었다. 서슬 퍼렇던 시절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검사들이 정치를 일삼고, 사법부는 정치적 판단으로 민주시민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내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 이탈리아서 지내는 동안 열어본 한국의 정치판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개판의 중심에는 정치검찰이 있었으며 그들은 선량한 민주정부의 사람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의 목에 칼을 겨누는 오만방자함 이상의 행태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럴 리라 없겠지만.. 왕이 통치하던 조선시대 등 옛날의 왕조로 시간을 돌리면, 그들 전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능지처참 형을 당할 인간들이었다. 또 어떤 인간은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쓰고 그가 저질러 놓은 죄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웃픈 꼬락서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나 소나 대통령이 될 수 민주국가에서, 금수보다 못한 인간을 잉태한 대한민국의 국운은 단군 이래 최고의 해를 맞이하고 있는지.. 적폐들의 발가벗긴 봉숭아학당 같은 모습이 매일 커뮤니티에 오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에 남겨진 참호와 병사들의 무모한 죽음을 보면서.. 그들이 흘린 피의 대가와 민주주의의 일면을 비교해 보고 있는 것이다. 



친퀘 또르리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1차 세계대전의 유물인 참호 곁에는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우리도 언제인가 먼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때 당신의 혼령이 풀꽃으로 남아 이웃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한민국의 무사태평과 안녕을 빈다.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Le Cinque Torri Dolomiti
il 03 Otto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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