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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1. 2021

신의 그림자와 동고동락(同苦同樂)

-하니와 함께 다시 찾은 돌로미티 여행

알아 두면 유익한 믿음의 세계..!



    누구든지 그러하지 않을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세상 만물이 신기하고 사랑스럽게 보일 테지만.. 반대의 경우에 직면하면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돌로미티 사진첩을 열어놓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자니 어머니와 조국의 형편이 절로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선조님들은 이런 경우의 수를 일제강점기로부터 지금까지 겪어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첫눈이 하얗게 쌓인 돌로미티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후손들 앞에 놓인 여려 경우의 수를 계수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먼 나라에 살고 있어도 겉모습은 물론 속 사람까지 여전히 어머니와 조국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 



첫눈이 오시면.. 그 산중에 첫눈이 오시면.. 당신의 가슴속까지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했으면 좋겠다..라고 지난 여정 그 산중에 첫눈이 왔을까 끄트머리에 이렇게 언급했다.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의 여행기를 이어간다. 본문에 포스팅되어있는 관련 친퀘 또르리 여행 사진은 산행 순서대로 편집되었음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동고동락(同苦同樂) 돌로미티




   서기 2021년 10월 11일 이른 새벽(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사흘 동안 추적추적 내린 비로 인해 촉촉이 젖어있는 상태이다. 현재 기온은 영상 11도씨로 쌀쌀한 편이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77번(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의 가느다란 선율이 아침을 깨운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운동을 나갔을 시간이지만 사흘 동안 집콕을 하고 지내고 있다. 비 때문이었다. 더불어 하니가 감기 기운 때문에 차가운 바깥공기를 조심하고 있는 상태이다. 타고난 체력이 그녀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 같은 상태를 못마땅해한다. 매일 아침 하던 운동이 중단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마음이 바빠진다.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돌로미티 사진첩을 열어놓고 그녀와 나에 얽힌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맘때 한국에 있었다면 우리는 내설악의 공룡능선을 다녀왔을지 모른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마등령에서부터 공룡능선을 통과하고 다시 희운각 곁의 무너미 고개를 지나 천불동 계곡에 발을 디딜 때쯤이면 초주검으로 변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 머릿속은 "두 번 다시 공룡능선에는 안 걸 거야"라며 후회를 한다. 



무릎 관절은 삐거덕 거리고 겨우 목숨만 붙은 채로 귀면암을 통과하여 비선대에 이르러서야 한숨이 놓인다. 마지막으로 공룡능선을 다녀온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그런데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그때가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었던 공룡능선은 7차례나 다녀왔다. 청춘도 힘들어하는 코스를 안 청춘이 다녀온 곳.. 7차례나 다녀온 공룡능선은 매번 후회를 거듭하며 쌓은 기록이다. 



한 두 달이 경과하면 힘들었던 당시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때 만났던 비경들이 가슴속으로 스멀스멀 몰려드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내설악 등반 중에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공룡능선은 비교가 안 될 백담사에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코스이다. 이때 만나게 되는 복병이 봉정암 아래의 깔딱 고개이다. 고갯길이 벌떡 일어선 형국의 산길로 기다시피 올라 소청봉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전설이 있다. 봉정암을 세 번만 다녀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다. 불자들은 이 전설을 믿고 어느 날 소원을 가슴에 품고 봉정암으로 발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미리 결론을 들여다보면 당신이 가지고 간 소원은 까마득히 잊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소원보다 당신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는 육신을 잘 보살핀 것만 으르도 감지덕지하게 된다는 것. 그중에는 소원을 성취하신 분들이 적지 않겠지만, 봉정암으로 세 번을 간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보다 산세가 험악한 공룡능선을 7차례나 다녀오면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우리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산다. 물론 무신론자도 존재한다. 그 어떤 신을 모시고 살아갈지라도 사는 동안 동행하는 신들의 세계.. 그녀가 감기 기운으로 나서지 못한 아침 운동과 산행에 묻어난 믿음의 세계는 의외로 단출하다. 


매일같이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오만가지 상념들이 운동을 통해 지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움의 세계.. 매일 비우고 또 비워야 신들이 거처하는 세상이 보이는 것이랄까..



세상의 법칙에 빠져 사는 동안 이른바 신들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살게 된다. 설령 신들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해도 당신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찰이나 교회에 출석을 해야 신들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지.. 전지전능하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믿음을 저버리게 된다. 그래서 어느 기도처에서 듣게 된 아재 개그 같은 이야기는 유명했다. 이랬다.



어느 날 독실한 믿음을 가진 권사 한 분이 돌로미티로 산행을 떠났다. 그녀는 남들이 선호하는 길을 제쳐 두고 이곳저곳 마음대로 걷다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었고 어둠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그믐밤이어서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산중을 헤매다가 발을 헛디디게 되었다. 그리고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을 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녀를 살려준 건 나뭇가지였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여기 누구 없소? 살려주세요~!"라며 소리를 쳤다. 소리를 한 번만 질렀겠는가.. 그때 그녀의 머리를 스쳐가는 신의 그림자.. "하느님 하느님 살려주세요. 죽을 지경입니다!" 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나뭇가지를 붙들고 애원했다. 그때 하느님이 나타나 "네가 살고 싶으면 그 손을 놓아라!!"라고 말했다. 


그녀는 하느님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손을 놓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느님, 손을 놓으면 죽는데요?!"라며 말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다시 "손을 놓아라!!"라고 힘주어 말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자 그녀는 "하느님 말고 누구 없소?!!"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그녀는 꿈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그녀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당신이 믿는 신의 존재가 이러하진 않을까..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부르짖는 신들은 생각보다 응답이 더디다. 생각 보다 전지전능하지 않다. 도무지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신들의 세계.. 어쩌면 좋을까.. 과연 이 세상에 신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 등에 대해서 나는 가끔씩 남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을 소환하곤 했다. 그녀가 간파한 신들의 모습이 그 어떤 신들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했기 때문이다. 초보 신앙인들과 도를 튼 신앙인들의 차이를 견주어 직급을 부여하는 건, 어느 권사가 꾼 꿈속의 신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엘아 미스뜨랄이 보여주고 있는 신의 모습을 알게 되는 즉시 즈음이 놀라게 된다. 신들의 세계가 이토록 잘 표현된 적 있을까..



"첫째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7차례나 다녀온 내설악의 공룡능선은 이른바 '마법의 산'이었다. 안 청춘의 마지막 등반은 17시간이 소요됐다. 이른 아침 날이 밝기 전부터 설악동에서 출발하여 비선대를 지나며 깔딱 고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마등령에 이르고.. 


이때부터 공룡능선을 통과하여 무너미 고개, 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반은 초주검 그 자체였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경험 후에는 두 번 다시 가지 말아야 할 코스가 공룡능선인데 왜 다시 찾게 된다는 말인가.. 


그 해답을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암봉 끄트머리까지 올라가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의 가슴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신들의 간섭이 없었다면 가능할 일일까..



요즘 열어보는 한국의 커뮤니티에는 미신 논란을 보게 된다. 세상에 못된 죄는 다 지은 한 녀석이 부적은 물론 신앙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매사를 점쟁이와 도사에게 의존했던 그는, 이틀 전 성경책을 들고 어느 대형교회에 나타났다. 그는 "집사람(쥴리)이 구약을 다 외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가 저지른 중죄를 향해 다가서는 처벌에 얼마나 똥줄이 탓으면 하느님을 찾았을까.. 마치 신앙심을 빗댄 어느 권사의 아재 개그를 쏙 빼닮았다. 




우리는 친퀘 또르리를 산행하는 동안 가진 정보라곤 인터넷에 등장하는 자료사진과 지도가 전부였다. 초행길의 산길을 승강기도 타지 않고 걸었다.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그 어떤 난관도 모른 채 그저 앞만 보며 걸었다. 그때 우리와 동행한 풀꽃들과 때 묻지 않은 풍경들.. 나는 그들을 신의 그림자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 앞에 예비된 나무 그늘에서 늦은 점심을 챙기며 휴식을 취했다. <계속>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Le Cinque Torri Dolomiti
il 11 Otto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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