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25. 2021

우리가 남긴 흔적(痕跡)

-하니와 함께 다시 찾은 돌로미티 여행


신의 그림자와 동행하면 일어나는 기적..?!!


#1 눈앞에 등장한 친퀘 또르리(5 Torri_le Cinque Torri)의 깜찍한 위용




지금 보고 있는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암봉 끄트머리까지 올라가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의 가슴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신들의 간섭이 없었다면 가능할 일일까..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로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다섯 개의 봉우리(5 Torri,  2137m)는 깜찍(?)했다. 거대한 암봉 다섯 개가 깜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산군들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은 몬떼 누볼라우(Monte Nuvolau, 2575m)가 우뚝 서 있다. 주변은 더할 나위 없다. 구글 위성 지도를 캡처해 보니 현재 위치는 이런 모습이다.



빨간색 위치 표시가 몬떼 누볼라우며 그 뒤로 친퀘 또르리가 위치해 있으며, 포스트는 친퀘 또르리의 현재 위치의 모습이다. 우리가 야영을 하고 있는 골짜기는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않아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승강기를 타지 않고 걸어온 흔적을 확대해 보니 이런 모습이다.



참 재밌다. 우리가 야영을 하고 있는 곳이자, 승강기의 터미널()이 있는 위치(Baita bai de Dones)가 빤히 보인다. 우리는 빨간 점선으로 그어진 승강기 루트 아래 오솔길을 따라 이곳까지 진출한 것이다. 



지난 여정에서 만난 1차 세계대전의 흔적인 참호를 따라 점점 더 친퀘 또르리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 중 한 곳에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흔적..



우리도 암봉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암벽 등반을 하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이 암봉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사 사라진 곳. 그곳은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쟁 중에 파 만들어 둔 참호 속에도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풀꽃들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2 우리가 남긴 흔적들




앞서 우리가 걸어온 흔적들을 구글 위성 지도를 통해 확인해 봤다. 산행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배도 고프고 피곤하고 목도 마르고.. 참호 곁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명당을 찾았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약간 멀어진 곳에 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쉼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야영장에서 만들어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꿀맛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으며 바라본 곳에 장엄하게 서 있는 또퐈나 디 로쎄스(Tofana di Rozes (3225 m))의 위용을 구름들이 휘감고 있다. 대략 7천 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무 아래서 천천히 점심을 먹으며 감상하고 있는 친퀘 또르리..



등 뒤로.. 저 멀리 우리가 자주 다녔던 빠쏘 퐐사레고(Passo Falzarego)보인다. 우리는 친퀘 또르리를 둘러본 다음 다시 우리가 걸아온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니가 나무 그늘에 앉아있는 곳을 기념으로 남겼다. 세상은 관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앉은자리가 꽃방석이라 여기면 꽃방석.. 가시방석이라 여기면 가시방석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꽃방석..



그녀를 뒤로한 채 인증숏을 날렸다.



그리고 다 허물어진 참호 뒤로 우리가 앞산이라 불렀던 또퐈나 디 로쎄스가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구동성으로 내년에 당신의 곁으로 산행을 하겠노라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길을 재촉했다. 이 산중에서 우리를 기억해 주는 흔적은 1도 없다. 기록은 그런 것이지..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들이 백주에 버젓이 등장한다. 우리가 다녀온 돌로미티의 흔적이 오롯이 인터넷의 한 모퉁이에서 여러분들과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신의 그림자를 찬양하는 하나의 작은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까.. 



#3 친쾌 또르리 200배 즐기기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은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때문에 돌로미티 곳곳.. 세상 곳곳에 묻어난다. 



다섯 봉우리를 코 앞에 두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 봉우리 꼭대기를 서성이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조각을 해둔 듯한 다섯 개의 형제 봉우리..



그 곁에 둘레길이 좁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오솔길 끄트머리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길을 걸으면서 삶과 죽음의 흔적을 만나게 됐다.



이곳에서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병사들은 가파른 길을 오가며 생존에 목말라했을 것이다.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하고 장엄한 돌로미티 산군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겨우 살아남았을 때 비로소 신의 그림자가 보일 것이다. 설령 난리 중에 신의 그림자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들 다 무슨 소용이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한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것도 행운이자 복된 삶일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아비규환의 삶에 갇히면 신의 그림자를 알현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돌로미티 곳곳에는 그런 흔적이 오롯이 남아 이방인을 기다리고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작은 동굴 앞에 풀꽃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이 산중에서 늘 바라보던 풍경을 가슴에 안고 먼길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넋들은 당신이 머리를 뉜 곳에서 비로소 신의 그림자를 만나게 되었을까..



작은 이끼 무리에 머리를 박고 꽃을 피워낸 풀꽃 같은 삶들은 비단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



한 생명이 이웃들과 어우렁 더우렁 잘 살아가는 곳..



그 무엇 하나 그저 된 게 없는 신묘막측한 세상..



작은 바위 동굴 아래 풀꽃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황량한 일인가..



세상은 8월인데 이 산중에 피는 풀꽃들은 먼 길을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그녀가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우리가 이 오솔길을 따라 걸었던 흔적이라고는 사진 몇 장이 전부이다.



그 흔적 속에서 우리와 동행한 신의 그림자.. 우리는 곧 당신의 흔적을 만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 것이다.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Le Cinque Torri Dolomiti
il 24 Otto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