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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1. 2021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 수업

-기록, 그녀의 시간 

기회는 단 한 번..?!



   서기 2021년 11월 10일 저녁나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하늘은 구름 낀 날씨로 우중충하다. 한국에서는 눈발이 날리는 첫눈을 기록했다고 전한다. 세월은 어김없이 만추를 지나 겨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 딱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눈발 혹은 우박을 목격하긴 했지만 겨울은 한국과 매우 다른 날씨를 보이고 있다. 우기로 접어든 오늘 아침 하니의 그림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화실을 다녀오면서 그녀의 그림 수업을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짬짬이 기록한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화초가 앙증맞은 꽃을 내놓은 풍경이 있었다. 그녀가 그림 수업을 받고 있는 루이지 화실의 테라스에서 자라고 있는 꽃이다. 수업 중 짬짬이 바람을 쐬는 동안 눈을 맞추고 있는 아름다운 녀석이다. 그녀가 삶을 통째로 그림 수업에 매진하는 동안 녀석은 꽃을 피우는 것이다. 



따지고 보나 마나 그녀는 물론 꽃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녀석을 카메라에 담은 시간은 지난 10월 25일 아침이었다. 그녀가 수업을 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세 번, 월 수 금요일이므로 우리는 바쁜 사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컴 앞에서 죽칠 마음의 여유 조차 없는 것이다.



위 자료사진은 다시 10월 29일 아침에 만난 화실의 풍경이다. 요즘 그녀가 몰두하고 있는 수업은 까르본치노(Carboncino,목탄)로 그려내는 소묘 작품이다. 붓질을 하기 전에 완성해야 하는 기초 작업이지만 여간 까다롭지 않다.



처음에는 동시통역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던 수업이었지만 지금은 눈치만 봐도 루이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수업 과정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매의 눈을 가진 루이지의 지적은 만만치 않다.



완성된 작품에 루이지의 서명과 그녀의 서명이 이어지고 있다. 거의 완벽해야 마무리되는 서명은 대략 두서너 번의 수업을 요구하고 있으며, 집중에 집중을 더해야 완성되는 것이다. 평면에 더해지는 입체감.. 얼마나 많은 손길이 더해졌을까..



이곳은 좀 더 밝게.. 좀 더 어둡게.. 중간색으로.. 형체를 잘 보고.. 뒤로 물러나서 보고 또 보고.. 생각을 깊이 한 다음 다시 수정을 하고.. 덩어리를 좀 더 부드럽게.. 보다 까칠하게 등등..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 어떤 때는 까칠한 지도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죽기 전에 반드시 해 보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수업)..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최소한 20년 동안 그림을 그려온 선수(?)에 비해 이제 겨우 시작한 초딩이 감당하기 어러운 시간들이 수업을 할 때마다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처롭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힘이 든데 당신은 오죽했을까.. 휘몰아치던 루이지의 지도와 함께 응원이 함께하며 화실의 분위기가 요즘 날씨를 닮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가는 것이다. 시간과 벌이는 행복한 시투..!



다시 날이 밝았다. 앞서 가는 그녀.. 그녀가 발을 디딘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고도 바를레타의 명소이다. 라 디스퓌다 디 바를레타(La Disfida di Barletta).. 도전의 도시라 불리는 유서 깊은 정소이다. 



그녀는 매일 새로운 발걸음을 딛는 것이며, 그 길 위에 까만 대리석이 길게 깔려있다. 이곳 구도시에 포장된 까만 대리석은 귀족들이 살던 곳이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지만 한 때 마차가 다녔던 곳. 느리게 느리게 이어지던 시간들이 바쁘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화실 밖 테라스에 살고 있던 녀석들이 꽃을 하나둘씩 더 내놓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동안 그녀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잡 앞 공원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왔다. 우리나라처럼 단풍이 화려하지 않지만 도시를 빛내주는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 앞 공원의 고목들이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다. 짬짬이 산책을 나오는 이곳도 어느덧 11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를레타 두오모 앞에는 극락조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바닷가로 걸음을 옮기니 아드리아해 위로 먹구름이 오락가락.. 빗방울 몇 개가 후드득..



다시 날이 밝았다. 서기 2021년 11월 5일 아침.. 화실에서 바라본 구도시 중심에 안테나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요즘 보기 드문 안테나가 구도시에서 쉽게 발견되는 게 희한하다. 자료사진 아래 도시는 대리석으로 건축된 곳으로 새로운 공사(광케이블)를 할 수 없는 곳. 시간이 멈춘 곳에서 그녀의 그림 수업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그녀가 새롭게 도전한 작품이 완성됐다. 루이자가 좋아하며 박수로 응원을 했다. 



브라바(BRAVA)..!



기회는 단 한 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La sua classe di pittura è bellissima_Studio Luigi Lanotte
il 10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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