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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7. 2021

미켈란젤로의 부활과 무궁화 꽃

-그곳에 가면 누구나 해넘이를 사랑하게 된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사람들의 시선이 멈춘 곳..



사람들이 계단에 모여 앉아 있는 이곳은 르네상스(Rinascimento)의 고도 퓌렌쩨(Firenze. 피렌체라고 읽지 않고 '퓌렌쩨'로 읽었다)의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이다. 



퓌렌체를 다녀가신 분들은 기억해 낼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체를 방문하면 다녀가는 곳이다. 시내 중심에서 아르노 강을 건너 이 광장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이면 족하다. 걸어서 갈 수도 있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시내 관광을 마친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딱 하나.. 정서 쪽으로 바라보게 만든 광장 한쪽의 계단에서 만나는 해넘이 풍경은 두고두고 이 도시를 잊지 못하게 만든다. 해넘이가 시작되면 뽀르따 산 지오르지오(Porta San Giorgio) 언덕 너머로 황홀한 풍경이 연출된다. 


그때 언덕 아래의 아르노 강(Fiume arno)과 고도는 해넘이가 흩뿌린 황금가루로 범범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최초 이곳에 모여 앉았을 때 시간은.. 해넘이가 끝나고 나면서 어둠이 깃든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의 국적은 그야말로 글로벌하다.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몇 안 되는 도시가 퓌렌체이며, 르네상스의 고도이다. 나는 이 도시를 미켈란젤로의 도시(La citta di Michelangelo)라 부른다. 퓌렌체를 빛낸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적지 않지만 유독 미켈란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쩌며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나 이곳을 거쳐간 관광객들의 가슴속에는 당신에 대한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을 것이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풍경은 7년 전 이맘때 카메라에 담은 것으로 해가 바뀌어도 여전한 풍경이다. 



어디를 건드려도 와르르 쏟아지는 스토리텔링의 도시 피렌체를 돌아본 사람들이 거의 반드시 거쳐가는 명소답게 이곳은 해넘이를 끝으로 완성되는 풍경이다.



서기 2021년 11월 16일 오후,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어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니와 나는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인생 후반전에 세운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소원이 여럿 있으면.. 하나만 있어도 이루기 힘든 소원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면 불행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여러 소원을 가질 수 있지만 하늘의 도움 혹은 당신의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속담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나는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체의 명소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해넘이를 지켜보는 동안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불세출의 영웅이자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 시간을 돌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면 이러하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미켈란젤로의 부활과 무궁화 꽃



미켈란젤로의 생애_Biografia



-청춘(Gioventù)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는 1475년 3월 6일 아레쬬(Arezzo)에서 가까운 봘티베리나(Valtiberina)의 까프레세(Caprese)에서,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시모니의 루도비코(Ludovico di Leonardo Buonarroti Simoni)로부터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플로렌티나(Firenze, 이하 '퓌렌쩨'라 읽는다.) 사람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뽀데스타(Podestà)의 정치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마을에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5명의 아이들 중 둘째 아이였다.



퓌렌쩨의 부오나로티는 이 지역 귀족들의 일부였다. 그때까지 가족 중에는 어느 누구도 그들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기계적(meccanica)' 예술(즉, 육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기술)에서 경력을 쌓지 않았다. 2세기 전, 그의 선조인 시모네 디 부오나로타(Simone di Buonarrota)는 첸토 사뷔 회의(Consiglio dei Cento Savi)에 참석해 공직에 있었다. 그들은 공적인 무기의 방패를 가지고 있었고, 바실리카의 성 십자가의 예배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태어났을 무렵에 가족들은 경제적 궁핍을 겪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너무 가난해서 퓌렌체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잃을 뻔했다. 퓌렌체서 가장 중요한 땅 중 하나인 카프레세의 뽀데스떼리아(podesteria di Caprese)는, 그의 가족의 적절한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그가 받아들인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치적 임무였다. 



그들의 선택은 가족의 운명과 젊은 미켈란젤로의 운명은 물론 그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가족과 경제적 문제에 대한 우려는 그를 평생 동안 따라다녔다. 



운명이란 그런 것일까.. 미켈란젤로의 생애를 담은 위키백과(wikipedia)를 번역(역자 주)는데 날밤을 꼬박 새웄다. 무딘 이탈리아어 실력으로 한 예술가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은 벅찼다. 그러나 한 줄 한 줄 당신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동안 기쁨이 넘쳤다. 날밤을 새면서도 너무 재밌는 것이다. 내 앞에는 청춘기의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환영처럼 따라다녔다.



하늘은 우리 행성 최고의 예술가에게 영광을 허락하는 대신 가난을 물려주었다. 그는 자라는 동안 대리석 가루가 섞인 우유를 유모로부터 받아 마셨다.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 그가 조각을 택한 이유가 대리석 가루가 섞인 우유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풍요로울 것도 없는 세상에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그에게는 일상이 되었던 시대.. 퓌렌쩨를 찾는 사람들은 그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 외에도 숱하게 공유되었을 것이다. 특히 SNS가 발달한 요즘에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서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의 도시를 방문하면 해질 녘 반드시 들리는 곳이 광장 한쪽에 마련된 계단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서 산 지오르지오 언덕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해넘이를 보면서 미켈란젤로를 그리워하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들 앞에는 곧 미켈란젤로가 바라봤던 해넘이의 장관이 연출될 것이며 당신이 부활한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최소한 7년 전 내게 일어난 사건은 이러했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첫 번째 해넘이 풍경이 뷰파인더에 포착되었다. <계속>



Quando vai lì, tutti si innamorano del tramonto_FIRENZE
il 16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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