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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8. 2021

부활의 도시서 만난 귀한 풍경들

-미켈란젤로의 부활과 무궁화 꽃_2편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황금빛 갈 햇살이 마구 쏟아지는 이곳은 르네상스의 고도 퓌렌쩨의 미켈란젤로 광장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장미들의 정원(Giardino delle Rose)이다. 시내 중심에서 뽄떼 베끼오 다리를 건너 아르노 강(Fiume arno)을 좌측으로 끼고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뽀르따 산 미니아또(Porta San Miniato)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거의 직진으로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이어지는 언덕길 옆에 위치한 공원이다. 



시내 중심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Stazione Ferroviaria Firenze Santa Maria Novella) 앞에서 버스를 타고 광장까지 이어지는 노선이 있다. 또 다른 노선이 장미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또 다른 노선은 뽄떼 베끼오 다리에서 아르노 강을 끼고 뽄떼 알레 그라지에(Ponte alle Grazie)까지 이동한 다음 우측으로 빠져 언덕길을 따라 광장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거니 보다 낭만적인 사람들은 장미정원으로 가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황금빛 갈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하거니 독서를 하는 사람들.. 이상행이란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퓌렌쩨서 살 때 하니와 나는 무시로 이 길을 이용해 광장 근처를 싸돌아 다녔다.



그곳을 서성이면 왠지 모를 편안함에 젖어든다. 도시의 소음도 없는 곳. 고도의 나지막한 건축물과 붉은 기와지붕을 바라보면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맞은편에 바라보이는 뽀르따 산 지오르지오(Porta San Giorgio)와 오래된 성벽은 전혀 딴 세상인 듯 낯선 풍경이다.



나는 그곳을 얼마나 자주 서성거렸던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그리고 하니와 함께 죽기 전에 살아보고 싶어서 둥지를 튼 후에도 여러 번 이곳을 다녀왔다. 퓌렌쩨를 찾는 관광객들이 너무 바쁜(?) 나머지 잘 찾지 않는 곳. 장미정원에 들르면 습관처럼 그곳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습관처럼 바라보는 곳.  그곳에는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 위치한 빨라쬬 베끼오 궁전(Palazzo Vecchio)이다. 이 궁전은 13세기에 지어졌고 퓌렌쩨 공화정의 중심지였다. 현재 이 궁전은 맞은편 아르노 강 너머 빨라쬬 피티 궁전(Palazzo Pitti) 옮겨진 상태이다. 1299년 퓌렌쩨 공화정 사람들이 그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다음 오른쪽으로 붉은 돔 두 개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종탑이 보인다. 좌측의 작은 돔은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Cappelle Medicee)이 위치한 바실리카 산 로렌쪼 (Basilica di San Lorenzo)의 건물이다. 우리가 살았던 집은 바로 메디치 가문의 예배당 바로 앞이었다. 엎어지면 바로 코가 닿는 곳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을 매일 만나며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곁에 지오또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이 우뚝 솟아있다. 종탑은 퓌렌쩨 두오모의 부속 건축물로 건축가 지오또가 설계하고 1334년에 짓기 시작하였지만 그는 죽고 말았다. 따라서 이 건축물을 완성한 사람은 당신의 제자였던 안드레아 피사노 탈렌티가 1359년에 완성했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5년이 소요되었다. 종탑의 높이는 약 85m이다. 



그리고 퓌렌쩨를 찾는 사람들 다수가 반드시 찾는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가 붉은 돔으로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름하여 퓌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은 건축가 퓔리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설계하고 이 도시의 상징이자 이탈리아서 가장 유명한 교회 중 하나이다. 이 건축물이 완성될 15세기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교회였다.



퓌렌쩨 두오모는 우여곡절((설계안은 여러 번 바뀌었다)을 겪다가, 퓌렌쩨에 파견된 첫 교황 사절이었던 발레리아나 추기경에 의해 1296년 9월 9일 첫 공사에 들어갔다. 성당의 건축은 1296년에 시작해서 1436년에야 구조적인 관점에서 끝이 난다. 초기 작품들은 건축가 아르놀포 디 깜비오(Arnolfo di Cambio )에게 맡겨졌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여러 번 중단되었다. 마침내 1436년 3월 24일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완공되었다.


돔 공사는 1420년에 시작되어 1436년에 완성되었다. 대성당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Papa Eugenio IV )가 1436년 3월 25일 축성(祝聖)하였다. 퓌렌쩨 두오모가 완성은 전적으로 브르넬레스끼의 공이 컸다. 위키백과는 천제적인 능력의 그의 공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브루넬레스키의 해결책은 천재적인 동시에 전례가 없었다. 지붕 위가 아니라 드럼에 얹혔으며 이중벽 구조의 8각으로 디자인된 독특한 형태의 돔으로, 지면으로부터 비계를 설치하지 않고 전체 돔을 만들 수 있었으며, 또한 이것은 홍예가 없이 건축된 최초의 커다란 돔이었다. 그러나 돔이 외부에 지지해주는 버팀 벽도 하나도 없이 드럼에 얹혔기 때문에, 돔의 기초에서 옆까지 수평 인장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돔의 안전을 위해 브루넬레스키는 돔의 기초에 나무와 철의 세트로 된 수평으로 팽팽한 사슬을 만들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의 무게는 37,000 톤이고 4백만 개 이상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그는 구조물을 만들면서 여러 모형과 세부 도면을 만들었다. 브루넬레스키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특수한 기계를 만들었다. 이런 특별하게 설계된 기계들과 탁월한 석공 기술은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에 있어서 극적인 공헌이었다. 가장 안쪽의 이중벽 안에 있는 원뿔 표면 위의 원을 베끼는 능력은 스스로 지탱하는 수평 아치의 건설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기하학적 이유로 원형의 평면은 이러한 건립 과정에 필요했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나는 미켈란젤로 도시 퓌렌쩨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오르면 으레 위대한 예술가들을 떠올리는 한편 종국에는 어린 미켈란젤로를 떠올리는 것이다. 한 번 본 적도 없고 먼 나라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퓌렌체를 빛낸 예술가들은 미켈란젤로 외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라퐈 산찌오 다 우르비노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갈릴레이 갈릴레오(Galileo Galilei), 단테 알레기에리(Dante Alighieri), 니꼴로 마키아 벨리(Niccolò Machiavelli) 등 예술 문학 철학 과학 어느 장르든 출중한 이름들이 나열되는 것이다.



인구 30만의 도시 퓌렌쩨.. 한 때 퓌렌쩨 공국은 메디치 가문의 등장은 물론 몰락과 무관하지 않았다. 메디치가는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퓌렌체 공국을 지배했고, 3명의 교황과 2명의 프랑스 왕비를 낳기도 했다. 3명의 교황이 메디치 가문에서 나왔다는 건 요즘으로 치면 정경유착의 산물일까.. 



권력의 정점에 교황청이 있었으며 너도 나도 교황청에 줄을 대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가 가운데 메디치 가문이 키워낸 예술가들 다수는 주로 성화를 그리며 아부를 일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에 발을 들여놓으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당시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몇몇 작품들은 수태고지(Annunciatio, 受胎告知)처럼 도드라졌지만, 색이 바랜 듯 대체로 우중충했다. 숙제처럼 해치운(?) 작품들이 감동을 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미켈란젤로를 생각했다. 그는 성당의 천정화는 물론 관련 조각 작품을 그리거나 만들 때마다 남들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나는 그를 하늘에서 보낸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하곤 했다. 인간이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그가 서 있던 것이다. 



지난 여정 미켈란젤로와 무궁화 꽃 편에서 그의 출생비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우리 행성 최고의 예술가에게 영광을 허락하는 대신 가난을 물려주었다. 그는 자라는 동안 대리석 가루가 섞인 우유를 유모로부터 받아 마셨다.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 그가 조각을 택한 이유가 대리석 가루가 섞인 우유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풍요로울 것도 없는 세상에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그에게는 일상이 되었던 시대.. 퓌렌쩨를 찾는 사람들은 그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 외에도 숱하게 공유되었을 것이다. 특히 SNS가 발달한 요즘에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서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의 도시를 방문하면 해 질 녘 반드시 들리는 곳이 광장 한쪽에 마련된 계단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서 산 지오르지오 언덕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해넘이를 보면서 미켈란젤로를 그리워하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들 앞에는 곧 미켈란젤로가 바라봤던 해넘이의 장관이 연출될 것이며 당신이 부활한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최소한 7년 전 내게 일어난 사건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해 질 녘이 되면 하나둘씩 삼삼오오 미켈란젤로 광장의 한 모퉁이에서 정서 쪽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곳에 서거나 앉아서 좌우로 고개를 돌려보면 좌측으로 해넘이가 시작되는 뽀르따 산 지오르지오(Porta San Giorgio)의 언덕이 보이고, 우측으로 아르노 강 너머 퓌렌체의 나지막하고 정겨운 집들이 두오모 등과 함께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우리 행성에서 이렇게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또 있을까..



거기에 저녁때가 되면 찾아오시는 황금빛 고운 햇살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곳. 해넘이가 시작되면 영감을 일깨우는 요정들이 황금빛 고운 햇살을 고도에 마구 흩뿌리고 있는 것이다. 그 햇살 속에는 천재들의 부활 에너지가 충만할 뿐만 아니라 광장 한 편의 언덕 아래서 해넘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원동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대체로 평화롭지만 우리 행성 곳곳에는 여전힌 기근과 폭력과 전쟁의 위험 등 나쁜 일이 도사리고 있다. 



내 조국 대한민국만 해도 거짓과 위선과 가식으로 포장된 인간들이 권력을 꿈꾸고 있는 세상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가는 세상에서 퓌렌체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퓌렌체 공국은 시민들의 신앙심까지 동원해가며 권력을 탐했지만,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술가들은 사람들에게 꿈을 싣기 위해 삶의 전부를 헌신했던 것이랄까.. 그 언덕 위에 서면 부활한 미켈란젤로의 화신을 만나게 되고 삶의 희망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Quando vai lì, tutti si innamorano del tramonto_FIRENZE
il 17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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