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두 발로 찍는 현장의 기록들.. 니가 고생이구나!!
아우론조 쉼터로 가는 길 위의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이는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 국립공원의 명소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하니와 나는 이곳 주차장이 위치한 쉼터(Rifugio Auronzo - Località Forcella Longeres (bl))를 출발해 아우론조 쉼터 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Sentiero Rifugio Auronzo)을 떠났다. 하늘에서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정지된 풍경.. 그녀의 두 손에 나무 작대기가 들려있다. 그냥 한 번 둘러보고 싶었던 돌로미티는 해프닝을 만들면서 19박 20일 동안 우리를 붙들어 놓은 것이다. 결승선은 아직 저 먼데 있다. 지난 여정에 이어 다시 길을 나선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우리는 저곳을 지나왔다. 사람들이 여전히 개미만 하다. 뜨레 치메 라바레도는 워낙 덩치가 커서 가까이서 봉우리 세 개를 전부 다 볼 수 없다. 따라서 봉우리로부터 멀어져야 장엄한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맨 먼저 길을 떠나 아우론조 쉼터(산장)까지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 최초 봉우리 곁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 쉴만한 여유가 거의 없는 것이다. 길은 평탄하고 신작로처럼 넓어서 트래킹에는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 청춘에게 버겁지 않은 게 또 있을까.. 마음은 넉넉할지라도 몸은 천근만근 마음같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 4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는 거리를 한두 시간 더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조금 전 쉼터를 돌아내려 와 최종 목적지인 주차장 입구의 산장까지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 앞서간 사람들의 꽁무니를 쫓아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셔터를 누르고 있다. 이렇게 순간순간 눈에 띄는 프레임을 담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수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때는 길 위에서 망부석이 되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앞에 서 있다. 풀꽃들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풀꽃들이 당신을 불러 세운다고..?! 그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마냥 풀꽃에 붙들려 있을 리가 있겠는가.. 고개를 들어보니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에 구름이 걸려있다. 현장에서 바라보지 않은 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경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의 사진첩에 빼곡한 여행 사진들은 주로 이렇게 기록된다. 맨 처음 현장에서 감동을 하고 다시 편집 과정에서 감동을 하는가 하면 여러분들의 감동이 다시 나를 감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여러분들과 소통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나의 잡기장이나 다름없는 브런치에서 작은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
그동안의 기록을 보니 열심히 끼적거렸다. 눈에 띄는 기록이 구독자 상위 3%, 라이킷 상위 0.5%이며 3년 차 작가로 등장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브런치 작가 이웃분들과 독자님들의 성원 때문에 가능한 선물이다. 그리고 플랫폼을 브런치로 사용하면서 나의 기록(사진과 영상)들이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웃 여러분들과 독자님들과 브런치에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드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사용하던 전화기(한국 번호)가 분실되면서 이탈리아 전화번호로 카카오 계정이 등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제 사용 중인 전화는 하니의 전화번호이다. 만에 하나 가능하다면 선물을 이탈리아 전번(혹은 하니의 전번)으로 등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주었으면 좋겠다. (왠지 아시죠?ㅜ) 당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게 브런치만 한 공간이 어디 있으며, 어디서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면 존재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자연 앞에서 초라한 존재이다.
그러나 나 포함 여러분들이 인터넷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초능력자 이상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SNS를 모르면 존재감 자체를 상실할 것이며, 오프라인의 활동이 곧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희한한 세상이다.
당신의 앞길이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던 불과 얼마 전의 세상은 온 데 간데없고 당신의 길이 훤히 보이는 것이다. 이런 길은 부처님이나 예수님 등 성자들이 걸었을 것이나 지금은 그 누구나 아무나 기적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죽는 날까지..!
세상일은 잘 모른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카카오의 론칭쇼에서 만난 인터넷 플랫폼은 돌로미티의 쉼터만도 못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장소로 요즘에 비하면 너무 왜소해 보이는 사이버 공간이었다. 당시 나는 딸내미로부터 웹서핑을 배웠고 한 때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며 수천만 뷰 이상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유튜브로 이어지고 각종 커뮤니티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유튜브의 경우 론칭쇼 때와 달리 급속도로 달라진 환경을 실감한다. 수십만 명 이상의 독자를 거느린 거대 언론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센스 수입도 독자 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회수(뷰)와 수익에 관심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시의 인기를 구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어느 닐 브런치에서 한 해 결산을 하며 선물을 보내준 것이다. 죽기 살기로 까적대던 옛날(?) 생각이 났다.
그게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런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나의 브런치에는 우리의 삶이 빼곡하게 그려지고 있다. 여행을 하는 등 주로 발로 뛰면서 기록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설은 내게 잘 맞지 않는 옷처럼 여기고 있다. 그 보다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다큐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다. 두 번 다시 이 땅을 밟아볼 수 없는 생애의 순간들을 기록하며 행복해하는 것이랄까..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며 당신 스스로 만든 결승선을 통과하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누군가 당신을 향해 응원의 박수를 쳐 주거나 토닥거려 준다면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할까.. 안 청춘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돌로미티의 산길을 걷는 동안 풀꽃 요정들이 무시로 환호를 보낸다.
수고했어, 금년에도..!!
평범하지만 참 멋진 카피가 도착했다. 동고동락한 사람에게 이런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눈에 봐도 돌아가는 길은 까마득해 보인다. 우리는 연식을 무시한 결과 연료(?)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변한다. 칭얼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차마 힘들어 죽겠다고 말은 하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만으로 상태를 단박에 짐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업어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도 같은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 여정에 이렇게 말했다.
저만치 계곡 아래에 물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이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고 옥수로 목을 축이고 싶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두 발의 속도는 일정하다. 점점 더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산중에 오아시스가 등장했다. 작은 실개울에 옥수가 졸졸졸 흐르는 곳.
이제 저 능선만 넘으면 결승선에 도착하게 될까.. 계곡은 아름답고 갈길은 멀다. 우리는 무엇이 그토록 바빠서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까.. 할 수만 있다면 이 계곡에서 야영을 하며 주저앉고 싶어 진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유혹.. 형편은 서로 다르지 않아서 그렇지 동행자만 있다면 여유가 생길까..
뒤를 돌아보니 하니(좌측 빨간 배낭)가 고개를 떨구고 길을 내려오고 있다. 그동안 줄곧 내 앞에서 걷던 그녀가 결승선이 가까워지면서 말 수가 적어진 것이며,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이다. 이때가 가장 안쓰러울 때이다. 누군가 응원이 필요할 때..
개울가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벗어던지고 등산화까지 모두 벗고 두 발을 개울물에 담갔다. 발도장 찍느라 수고한 두 발과 동고동락 동행한 그녀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그곳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께도..
"수고했어요, 금년에도..!!"
참 희한하지.. 이렇게 힘들게 발도장을 찍었으면 "내년에는 좀 쉬자"라고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다시 돌로미티로 떠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녀뿐만 아니지.. 브런치에 글을 안 쓰면 또 뭐해..?!! ^^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il 19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