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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7. 2021

돌로미티 최고의 명소 중 한 곳

#84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참고 인내한 당신, 곧 천하제일의 비경을 만나게 될 것이니라..!!




뒤를 돌아보니 하니(좌측 빨간 배낭)가 고개를 떨구고 길을 내려오고 있다. 그동안 줄곧 내 앞에서 걷던 그녀가 결승선이 가까워지면서 말 수가 적어진 것이며,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이다. 이때가 가장 안쓰러울 때이다. 누군가 응원이 필요할 때..



개울가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벗어던지고 등산화까지 모두 벗고 두 발을 개울물에 담갔다. 발도장 찍느라 수고한 두 발과 동고동락 동행한 그녀에게 응원을 보낸다. 참 희한하지.. 이렇게 힘들게 발도장을 찍었으면 "내년에는 좀 쉬자"라고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다시 돌로미티로 떠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조금 전에 그녀는 바지를 갈아입었다. 치렁치렁 거추장스러웠던 긴 바지를 반바지로 바꿔 입은 것이다. 뜨레 치메 라바레도 입구서부터 거의 쉬지 않고 걸어서 아우론조 쉼터(Rifugio Auronzo alle Tre Cime di Lavaredo)까지 걷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곧바로 길을 떠났다. 청춘들이라면 모를까 안 청춘들에게는 평탄한 길도 무리가 따르는 법이다. 



그녀는 힘이 든다고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앞만 보며 걷고 또 걷는 것. 뒤를 돌아보는 법도 없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힘이 들어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바지를 갈아입고 나는 등산화를 벗고 옥수 같은 개울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저만치 앞서서 그녀가 걷고 있다. 두 손에는 등산용 스틱 대신 나무 작대기 두 개가 들려있다. 이유를 설명한 적 있다. 우리는 그 유명하다는 돌로미티를 답사하고자 잠시 들렀다가 19박 20일의 강행군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라면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돌로미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마법이 작용한다고나 할까.. 당신 주변을 둘러싼 풍경들이 신나게 만드는 것이다. 신명 나게 만드는 것이므로 마냥 좋아 죽는 것이다. 천방지축..



그렇게 시작된 돌로미티 여행 나흘 째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격인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를 한 바퀴 돌며 결승선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결승선은 우리가 맨 처음 이곳에 도착해 자동차를 주차해 둔 곳이며 그곳 쉼터는 리푸지오 아우론조 로깔리따 포르첼라 론제레스 (Rifugio Auronzo - Località Forcella Longeres) (bl))라 불렀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으나 한 걸음 한 걸음씩 결승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좌우명은 이랬지..



천년을 살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 며칠간 여독이 쌓이면서 피곤이 몰려들 때 우리 곁에는 비경이 함께 했다. 우리를 응원하는 돌로미티의 비경이 시름을 놓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절경 몬떼 삐아나(Monte Piana) 산군 산중에 숨겨져 있었다.



조물주 왈.. 참고 인내한 당신, 곧 천하제일의 비경을 만나게 될 것이니라..!!



무아지경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조금 번 우리가 잠시 쉬었던 계곡이 발아래로 보인다.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인다.



장엄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몬떼 삐아나 돌로미티 산군..



어쩌면 사는 동안 이런 비경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할 때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여행지가 제아무리 황홀하다고 해도 두 번째 방문하면 심드렁해지는 것이다. 다만, 파타고니아의 엘 찰텐(EL CHALTEN)에 위치한 피츠로이(FITZ ROY) 산군은 달랐다. 그곳은 한 번 다녀온 직후 6년만에 다시 방문한 곳으로 여전한 감흥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장차 그곳에 머리를 뉘고 싶었다. 바람의 땅.. 티끌마저도 때 하나 묻지 않은 곳에 당신의 "뼈를 뿌려달라"라고 할 만큼 사랑했던 곳. 돌로미티에 발을 들여놓은 직후부터 파타고니아와 비교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사진과 영상으로만 만났던 돌로미티 산군은 실제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 떼려야 뗄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다.



발은 천근처럼 무거워도 결승선에 다가서기 싫다고나 할까..



시선은 돌로미티 산군과 골짜기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와 생각이 다르지 않을 사람들이 줄지어 계곡을 오르고 있다.



아마도 이분들도 우리처럼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를 새까맣게 잊고 있을 게 틀림없다.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세 봉우리는 계곡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암봉이라는 것 외 아기자기한 매력은 갖추지 못했다. 그녀는 나중에 빠소 지아우(PASSO GIAU( 곁 빠쏘 포르첼라(PASSO FORCELLA)에 올랐을 때 "뜨레 치메 라바레도 보다 빠쏘 포르첼라가 더 매력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즉각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세 봉우리 뒤로 펼쳐진 거대란 계곡과 봉우리들은 보면 볼수록 매력 덩어리였다.



청춘이었다면 여러 날을 계획하여 이 산중에 머물고 싶을 정도로 흥분되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쉬는 동안 그녀는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 또한..



이제 언덕 하나만 넘으면 결승선이 다가온다. 



그때였다. 세 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이 먹구름으로 바뀌면서 빗방울을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경을 앞에 두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조물주 걸작 앞에서 무례한 일이 아닐까..



뜨레 치메 라바레도를 여행하면 몇 안 되는 뷰포인트 중에서 이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 멀리 아우론조 산장의 주황색 지붕을 이고 있다. 조금 전에 우리는 그곳에 있었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잠시 여장을 내려놓는 것도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돌로미티 최고의 명소 중 한 곳에서 잠시 쉬면서 기록을 남겼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il 27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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