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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3. 2021

이제 돌아갈 시간

#82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내가 좋아하는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예술가의 십계명>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예술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려면 신을 섬기는 일이다. 신을 섬기는 일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돌로미티에 빼곡한 신의 그림자.. 만약, 당신의 마음속에 신의 그림자가 자리 잡을 수 없을만치 황폐하다면.. 그리하여 행복하지 않게 된다면 언제인가 가슴을 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우리네 삶에 감사함이 생략되거나 날마다 당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습관에 길들여지면 불행한 삶이 아닐까..



(중략) 그렇게 말렸건만.. 결국 그녀는 케리어 두 개를 준비했다. 그 가운데 김치도 포함됐다. 그녀는 인천공항에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이동한 후 환승을 하여 로마 공항으로 입국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일 아침부터 여왕님을 모시러 로마로 떠나게 된다. 



통화를 마친 후 사진첩을 열어 돌로미티의 장엄하고 신묘막측한 풍경을 만나고 있다. 그곳에는 작년 이맘때 함께 걸었던 장면들이 사진과 영상에 남아있었다. 그녀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면 맨 먼저 가 보고 싶은 곳이 돌로미티이다. 그녀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며 잊을만하면 말하곤 했다. 



그런 그녀를 10개월 동안 무사히 지켜준 하늘에 감사한다..라고 지난 여정 D-2 내 영혼이 은총 입어 편에서 이렇게 썼다. 그때가 지난 8월 10일이었다. 그녀가 다음 날 로마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서기 2021년 11월 12일 저녁나절 그녀의 그림 수업이 끝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컴 앞에 앉아 돌로미티의 명서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의 사진첩을 열어놓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의 쉼터 리푸지오 아우론소(Rifugio Auronzo)에서 자동차가 주차된 장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세 개의 봉우리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봉우리 뒤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고 간간히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갈 길은 멀지만 신의 그림자가 자꾸만 발길을 붙든다. 조물주가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어 놓았을 때 숨겨둔 명소일까.. 갈 길은 먼데 한 눈 파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한눈에 봐도 돌아가는 길은 까마득해 보인다. 우리는 연식을 무시한 결과 연료(?)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변한다. 칭얼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차마 힘들어 죽겠다고 말은 하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만으로 상태를 단박에 짐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업어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도 같은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녀온 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길 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사람들.. 개미들 같다.



우리는 조금 점까지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했다. 1차 세계전쟁 당시 파 놓은 동굴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생과 사의 갈림길.. 그들이 목숨과 맞 바꾼 명소를 우리가 발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다시 뒤돌아 보니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쉼터로 이동하고 있다. 복 받은 사람들이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힘들지만 돌로미티를 마음껏 누리는 일은 그 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우리가 돌아갈 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잠시 힘든 일을 잊고 아름다움에 다시 취한다. 카메라의 배터리를 보니 한 눈금 밖에 남지 않았다. 돌로미티를 여행하는 동안 짬짬이 충전을 했지만 비경들이 충전 눈금을 마구 앗아갔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글을 끼적거리는 동안 요즘 대한민국의 문화를 빛내는 <오징어 게임>을 잠시 소환해 봤다. 유소년기 때 잠시 즐겼던 그 놀이다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우리 앞에 놓인 결승선을 통과해야만 다음 여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다리는 천근인데 시선을 유혹하는 신의 그림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하늘은 우리를 마냥 세상에 가두어 두지 않고 언제인가 먼 길을 떠나게 만들 것이다.



그때까지 눈금을 잃어가는 카메라의 배터리처럼 아름다움을 가득 충전해야겠지..



우리가 떠나온 길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정지된 풍경.. 그녀의 두 손에 나무 작대기가 들려있다. 그냥 한 번 둘러보고 싶었던 돌로미티는 해프닝을 만들면서 19박 20일 동안 우리를 붙들어 놓은 것이다. 결승선은 아직 저 먼데 있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il 12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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