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성 로렌조 축일 공짜 나눔 현장
우리도 성인 축제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어제(10일, 현지시간) 저녁 8시경, 피렌체 산 로렌조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 앞에서 성 로렌조 축일 행사(Festa di San Lorenzo)가 있었다. 이 행사는 성인 로렌쪼를 기리는 축제였는데 저녁에는 공짜 먹거리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행사로 피렌체 시민들은 물론 수 천명의 관광객들이 행사 측이 제공한 파스타와 수박 등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피렌체는 마치 마법의 도시로 변한 듯했다. 그 현장을 만나보기 전 로렌쪼 성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톨릭 사이트에서 성인 목록을 뒤져 당신의 행적을 통째로 옮겨와 돌아봤다. 이랬다.
산 로렌쪼 성인은 어떤 사람인가
"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_San Lorenzo)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를 돕는 로마의 일곱 부제 중 수석으로, 주된 임무는 교회 재산 관리와 빈민 구호 및 일반적인 교회 관리였다.
교황 성 식스투스 2세가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걷자 그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울며 그 뒤를 따라갔다. 교황은 그를 위로하며 더욱 힘든 투쟁이 남아 있으니 그 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얻어야 한다며 그 또한 나흘 뒤에 체포되어 자신을 뒤따를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었다. 그러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와 교회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 교회의 모든 보물을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 말을 들은 성 라우렌티우스는 교회의 재산을 모두 모아 정리하려면 3일의 여유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청한 후 나머지 재산마저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재산을 요구하는 집정관에게 병자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분노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해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뜨거운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쇠 위에서 살이 익어가자 성 라우렌티우스는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라고 말한 후 한참 뒤에 “이제 다 익었으니 뜯어먹어라.”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순교 때나 그 후에도 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고 한다.
그의 축일은 4세기 초부터 교회 전례에 도입되었고, 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은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로마의 주요한 일곱 성당 중 하나가 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빠르게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는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며 그를 칭송했다. 교회미술에서 그를 상징하는 문장은 석쇠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오래됐지만(기원 후 258년), 사람들은 여전히 당신을 흠모하고 기리는 것. 당신께서 행한 일은 그야말로 인간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자, 신의 간섭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이 정치와 종교로 타락한 순간에도 이 세상을 지키고자 파수꾼이 되어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현장. 불의에 맞서 정의로운 세상을 지켜내고자 당신의 몸을 던진 그야말로 성스러운 일이었다.
행운이었다. 초파일과 성탄절 밖에 몰랐던 내게 성 축일이 가슴 깊이 파고든 시간이자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는 이유는 잘 몰랐지만 행사에 빠져드는 순간부터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고귀한 축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곁에 있던 한 아주머니께 이 행사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산 로렌쪼의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 날을 기념하는 축제예요."
사람들은 행복했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한 성인이 몸을 던져 희생한 덕분으로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현장. 로렌쪼 성인은 교회의 재산이 가난한 이웃 즉, 병자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라고 말하며 죽음으로 실천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는데 우리는 애써 이들을 멀리하고 살았을 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조차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가치라 생각이 들었다.
내겐 공짜가 아니었어
이날 축제는 성인의 발자취를 기리는 의미에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공짜로 대접했다. 수 천명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제공했는데 행사 주최 측이 준비한 메뉴는 파스타 디 라구(Pasta di Ragu)와 수박이 주요 차림표였다. 피렌체의 리스또란떼에서 차출(?)된 다섯 명의 셰프와 여러 후원자들이 이날 행사에 동원됐는데 내게도 성인의 따뜻한 손길이 미쳤다.
행사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으며 방책 앞으로 다가섰는데 한 행사 요원이 내게 한 접시의 파스타를 내민 것. (얼씨구나..) 싶어서 얼른 받아 인증숏을 남기고 한 알 한 알 파스타를 음미하는데 기막힌 맛이었다. 살사 디 라구(Salsa di Ragù)로 조리한 파스타는 그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입 안에서 여전히 짙은 바실리코(Il basilico) 향을 풍기며 쫄깃쫄깃 풍미를 돋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파스타 접시를 받기 전에 이미 큰 두쪽의 수박을 받아 껍질만 남기고 모두 먹어치운 상태였다. 배가 너무 불렀다. 거기에 파스타 한 접시를 마저 먹었으니 적은 양이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배가 불러..? 아니었다. 나는 집을 나서기 전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나왔다가, 집에서 대략 1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산 로렌쪼 성당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축제에 참석한 것.
이날 제공된 음식은 모두 공짜여서 우격다짐으로 먹어치운지도 모를 일이었다. ㅜ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으로 축제 현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배는 자꾸만 불러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기분 나쁜 포만감이 든 것이다. 만약 산 로렌쪼 성인이 곁에 있었다면 뭐라 했을까.. 당신의 몸을 던져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을 구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실천 현장에서, 몸을 던져 공짜를 탐했으니 배부른 자를 일깨운 축제였다고나 할까.
이날 축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사후 500년을 기념하는 날이자, 피렌체를 빛낸 르네상스(Il Rinascimento)를 일깨우는 날이기도 했다. 가장 피렌체다운 멋이라 할까. 이를 위해 초대형 빔프로젝터 스크린이 산 로렌조 성당 벽면을 끊임없이 비추어주고 있었는데, 축제 현장 분위기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영상 참조)
신이 존재한다면, 당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할 텐데,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이 그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서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한데 묶은 성인 때문에 이탈리아를 찾은 사람들과 이탈리아인들이 참 행복해 보이는 하루였다. 우리에게도 이런 성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Festa di San Lorenzo FIRENZE
10 Agosto Basilica di San Lorenzo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