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다시 서고 싶다
같은 행성.. 서로 다른 느낌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하니와 나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쎄로 뽀쵸코를 등반하면서 점점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초행길의 이 산에 오를 때 내 손에 들린 건 묵직한 카메라 장비가 전부였다. 그녀 또한 스틱 한 자루에 의지하며 무작정 산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발바닥 아래는 작은 돌멩이들이 구슬처럼 미끄덩 거렸으며, 풀은 말랐고 선인장이나 용설란 등 이 산중의 수목들은 점점 수분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났던 전혀 다른 풍경들이 오솔길 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다. 지난 여정에서 안데스 비꾸냐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일면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시인이자 교육자였으며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뿌에르또 몬뜨에서 가까운 테무코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파블로 네루다라는 걸출한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미스뜨랄이 194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네루다는 197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아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가 파타고니아 여행을 끝마치고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온 후 산티아고의 네루다 박물관 라 챠스코나(La Chascona)를 방문하게 된 이유도 그녀를 기념하기 위함이랄까..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라 세레나(La Serena)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가까운 비꾸냐에서 살았던 그녀의 나이 3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렸다. 그래서 매우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녀의 시적 재능을 일깨우기 위한 조치라는 믿기 힘든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11살이 되던 해 그녀가 다니던 여자 학교에서 친구들의 교재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으며, 그녀의 언니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았으며 언니는 선생님이었다.
언니 에밀리나(Emelina)는 그녀에게 성경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 준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람들은 그녀의 신비주의적인 작품이 그로부터 발현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녀의 작품 <예술가의 십계명>의 첫째 계명인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이란 표현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녀는 1914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죽음의 소네트>라는 시로 입상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죽음의 소네뜨..
그녀가 <죽음의 소네뜨>를 쓴 배경에는 그녀의 첫사랑과 무관하지 않았다. 꽤 오랫 시간 동안 어설프게 번역(역자 주)한 노래를 통해 그녀의 아픔을 헤아려 봤다. 누군들 죽음의 소네트를 부르고 싶었을까.. 그녀는 1906년에 철도 직원인 로미오 우레타 카바잘(Romeo Ureta Carvajal)을 만났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1909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당신의 의지와 의사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시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전혀 남다른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첫사랑에 실패한 후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는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며 아이들을 사랑했다. 천진난만함의 대명사 아이들..
그녀는 죽음의 소네트를 노래하면서부터 삶과 죽음.. 희로애락 등의 인생사를 터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는 겨우 3살이었던 그녀 곁을 떠나고 다시 첫사랑마저 당신 곁을 떠나면서 하늘은 그녀에게 또 다른 선물을 예비하고 있었을까.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쎄로 뽀초코에 오르는 동안 전혀 낯선 풍경을 만나며 그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떠올린 두 생각은 마푸체 인디오들의 호연지기와 함께 안데스 깊은 곳으로 스며든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사유..
서기 2021년 12월 9일 저녁나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안데스의 쎄로 뽀초코의 실루엣을 만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경이 내 앞에 등장했다. 안데스 꼭대기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고 계곡은 굽이굽이 물결치고 있다. 이 산을 오르면서 가장 좋아한 풍경이다. 마치 딴 세상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앞선 여정을 통해서 우리의 위치를 쉽게 가늠할 것이다. 고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깎아지른 벼랑이 나타나고 어떤 때는 피사체들이 절벽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우리는 머지않아 산꼭대기에 도달할 것이지만 그때까지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짊어진 배낭 속에는 우리가 먹을 점심 도시락과 생수 그리고 카메라 렌즈를 예비로 챙겨 넣었다. 그러나 정상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낭을 내려놓을 여유가 없었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가다가 눈에 띄는 장면이 있으면 잠시 멈추어 셔터를 누르는데 전부였다.
그때 건진 현장감 있는 사진들이 포스트를 장식하고 있다. 이번 포스트에는 전부 23컷이 등장하고 있다. 이번 포스트뿐만 아니라 관련 포스트에 사용한 여행사진들은 어느덧 10년이 더 경과한 것들이다. 깜깜한 어둠 속 외장하드에 갇혀있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간간이 간을 보긴 했지만 녀석들이 총출동하기는 처음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나와 우리 곁을 지나갔다. 안데스의 풍경을 이탈리아에서 열어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대략 1년 간의 여정으로 파타고니아 여행을 다녀온 얼마 후 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했으며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었다 천우신조..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내 곁 혹은 우리 곁에 일어난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이자 상상 밖의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보니 그렇더라..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힘이 끼어드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 그러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나 할까. 1: 29: 300의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위로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데스의 쎄로 뽀초코 풍경 앞에서 필연의 과정을 잠시 돌아보는 건 내가 좋아하는 가브리엘라 미스뜨랄 때문이다. 서두에 길게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돌아본 것도 그 때문이며, 이번 포스트에도 그녀의 작품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그녀가 칠레의 안데스에서 태어나지 않고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사정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가 태어난 장소는 이곳 산티아고에서 가까운 안데스가 아니라 비꾸냐(La Vicuña)였다. 그녀는 1889년 4월 7일에 태어났으며, 1957년 향년 68세를 일기(췌장암)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조선말에 태어나 6.25 전쟁이 끝난 후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동안에 일어난 세계사를 돌아보면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우리 행성은 매우 불행한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전쟁에 미쳐 날뛰는 동안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때였다.
그런 그녀가 척박한 안데스 기슭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전쟁 중이거나 가난에 찌들어 살 때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신의 얼굴인 빵이 눈에 띄기나 할까.. 아름다운 장면이 눈에 띌 망정 그게 신의 그림자라고 생각할 여지도 없었을 것이며, 빵 한 조각에 신의 얼굴이 드리워진 것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안데스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산을 등산하면서 서로 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과 같이 세상의 산들이나 지역은 서로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명산이라고 부르는 장소의 산들은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지며 영감이 솟구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그러하지 못한 장소는 사람들을 오그라 붙게 만드는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그녀는 배고픈 사람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는 시대적 배경에서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빵 조각 하나로 겸손을 가르쳐야 했다. 빵 조각이 신의 얼굴이라고 말하며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산천에 널려있는 수목과 꽃들과 뭇 육축들과 존재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신의 그림자라고 말했다. 초행길에 만난 쎄로 뽀초코의 풍경들이 나의 뷰파인더를 자극하고 촉촉한 감성으로 렌즈를 닦아낸 것도 이런 일련의 필연들이 작용한 게 아닐까..
하인리히 법칙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인연의 법칙은 상대적이자 절대적으로 특정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내겐 새로운 세상이었지만 이곳에 살던 마푸체 인디오들과 산티아고 시민들에게는 일상에서 늘 만나는 세상이자 산이었다. 그런 풍경이 내 가슴에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가브리엘라의 영감을 일깨운 작품을 다시 돌아본다.
La mesa, hijo, está tendida(아들아, 상이 차려졌다)
en blancura quieta de nata, (크림의 부드러운 흰색과 함께)
y en cuatro muros azulea, (그리고 푸른 네 개의 벽)
dando relumbres, la cerámica.(반짝이는 도자기)
Ésta es la sal, éste el aceite(이것은 소금이고 올리브유..)
y al centro el Pan que casi habla.(가운데는 빵이 먹음직 해)
Oro más lindo que oro del Pan(금 보다 더 곱고 금 같은 빵)
no está ni en fruta ni en retama, (금잔화도 없고 과일도 없지만)
y da su olor de espiga y horno(그리고 오븐에서 풍기는 밀 냄새)
una dicha que nunca sacia.(끝없는 기쁨을 준다)
Lo partimos, hijito, juntos, (귀여운 아가야 우리는 빵을 쪼갠다)
con dedos duros y palma blanda, (굳은 손가락과 부드러운 손으로)
y tú lo miras asombrado(네가 놀라운 눈으로 보고 있는 동안)
de tierra negra que da flor blanca.(검은 땅이 흰 꽃을 피워내지)
Baja la mano de comer, (먹는 손을 내려놓거라)
que tu madre también la baja.(네 엄마도 손을 내려놓는단다)
Los trigos, hijo, son del aire, (아들아, 밀은 공기로 만들어진 것이고)
y son del sol y de la azada;(볕과 괭이로부터 온 것이란다)
pero este Pan «cara de Dios»(*)(그러나 신의 얼굴이라 불리는 이 빵은)
no llega a mesas de las casas.(모든 식탁에 오지 않는단다)
Y si otros niños no lo tienen,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가지지 못했다면)
mejor, mi hijo, no lo tocaras, (아들아, 그걸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y no tomarlo mejor sería(그것을 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con mano y mano avergonzadas.(부끄러운 손에서 손으로)
Hijo, el Hambre, cara de mueca, (아들아 굶주림은 찌푸린 얼굴로)
en remolino gira las parvas, (타작하지 않은 밀을 휘감으며 회오리친다)
y se buscan y no se encuentran(그들은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할 것이다)
el Pan y el hambre corcovada.(그리고 빵과 곱사등이의 배고픔)
Para que lo halle, si ahora entra, (그래서 당장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금 들어오세요)
el Pan dejemos hasta mañana;(빵은 내일까지 먹지 말고 놔두세요)
el fuego ardiendo marque la puerta, (타오르는 불은 문에 표시된다)
que el indio quechua nunca cerraba, (케추아 인디오는 문을 닫는 법이 없다)
¡y miremos comer al Hambre, (먹는 걸 지켜보자)
para dormir con cuerpo y alma!(굶주린 몸과 영혼이 잠들 때까지)
나는 그녀의 작품을 번역(역자 주)하는 동안 세련되지 못한 문장에 대해 불만이었다. 그러나 남미 여행을 하는 동안 나중에 다시 산티아고에 사는 동안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스페인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니는 곁에서 "현지 사람들보다 유창하다"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현미처럼 까칠한 문장에서 그녀가 작품에서 의도한 바를 눈치채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처음 맞닥뜨린 시어들 하늘이 들어 쓰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을까..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과 신의 얼굴인 빵과 함께 오늘은 그녀의 우주관을 일면 돌아보기로 한다.
LA TIERRA
Niño indio, si estás cansado, (인디오 아가야 피곤하니)
tú te acuestas sobre la Tierra, (그렇다면 대지 위에 몸을 눞여요)
y lo mismo si estás alegre, (그리고 기쁨이 충만하다면)
hijo mío, juega con ella...(아들아, 그녀와 놀거라)
Se oyen cosas maravillosas(경이로운 소리가 들려와요)
al tambor indio de la Tierra:(대지 위에 울려 퍼진 인디오의 북소리)
se oye el fuego que sube y baja(불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들린다)
buscando el cielo, y no sosiega.(쉬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구나)
Rueda y rueda, se oyen los ríos(빙빙 돌면서 강물의 소리를 듣고 있구나)
en cascadas que no se cuentan.(엄청난 폭포의 소리..)
Se oyen mugir los animales;(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요)
se oye el hacha comer la selva.(도끼가 숲을 찍는 소리도 들려요)
Se oyen sonar telares indios.(인디오들이 베틀 짜는 소리도 들려요)
Se oyen trillas, se oyen fiestas.(탈곡하는 소리와 축제 소리도 들려요)
Donde el indio lo está llamando, (인디오들이 부르는 것들이 아니라면)
el tambor indio le contesta, (인디오의 북이 대답한다)
y tañe cerca y tañe lejos, (가깝게 그리고 멀게 두드린다)
como el que huye y que regresa..(도망쳐 돌아오는 사람처럼)
Todo lo toma, todo lo carga(모든 것을 집어치운다)
el lomo santo de la Tierra:(대지의 성스러운 것들:)
lo que camina, lo que duerme, (걸어 다니는 것과 잠을 자는 것)
lo que retoza y lo que pena;(무엇이 재밌는지 무엇이 슬픈지:)
y lleva vivos y lleva muertos(그리고 그는 살아있고 또 죽어있다)
el tambor indio de la Tierra.(대지 위의 인디오의 북,,)
Cuando muera, no llores, hijo:(내가 죽거든 울지 마라 아들아)
pecho a pecho ponte con ella, (가슴에서 가슴으로 느껴라)
y si sujetas los alientos(그리고 호흡이 멈춘다면)
como que todo o nada fueras, (전부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tú escucharás subir su brazo(너는 그의 두 팔을 들어 올려라)
que me tenía y que me entrega, (나를 데려가서 인도해준)
y la madre que estaba rota(그리고 산산조각 난 어머니)
tú la verás volver entera.(너는 그녀가 완벽하게 돌아오는 걸 볼 거야)
그녀는 지금은 사라진 마푸체 인디오 등 원주민들의 북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스페인의 피사로 일행들이 침탈한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인디오들의 자연 친화적인 삶을 가치로 여기고 있었다. 대지에서 울려 퍼지는 바람의 소리와 강물이 흐르는 풍경과 뭇 생명들이 거하는 숲..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춤을 추는 인디오들의 삶이 대지(Tierra, 땅)에 묻어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생명을 낳는 여신이 땅에 살았으며 그 하늘에 북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먹고 마시고 놀다가 피곤하면 잠을 청하는 땅 위의 사람들.. 그들은 하늘과 대지의 순환 가운데 생명이 잉태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과정을 거친다고 믿고 있었을까.. 그녀는 이 같은 느낌을 안데스 자락에서 깨달았으며 군더더기 없고 가식 없이 노래했다. 같은 행성에 살고 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걷다가 손을 흔들어 보인 곳은 쎄로 뽀초코 정상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울림이 있는 그녀의 노래를 뒤로 하고 다음 여정으로 향한다.
"내가 죽거든 울지 마라 아들아.. 가슴에서 가슴으로 느껴라"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Cerro Pochoco, Santiago CILE
Il 09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