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권력의 암울한 미래 V
먼 나라에서 생각하는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
서기 2022년 3월 11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컴에 로그인하고 사진첩을 열었다. 사진첩 속의 풍경들은 비에 흠뻑 젖었다. 도시가 비에 흠뻑 젖으면 평소와 전혀 다른 느낌이 물씬 배어든다. 비에 대한 노랫말들이 그러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낭만적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우울 모드로 바뀌게 된다. 참 묘한 일이다. 하나의 자연 현상을 놓고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자연현상.. 우리 행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자연현상이라는 말일까..
세상을 살아보니 자연현상은 일정한 법칙에 의해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었다. 이런 거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의 현상과 매우 달았다. 비가 오시는 풍경 하나만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오만가지 생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명명한 우리가 사는 도시 바를레티는 비가 오시면 더욱 빛나는 곳이자 밤이 되면 보석처럼 반들거리는 도시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도시에 내린 비가 내 조국 대한민국의 위상에 덧칠을 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 국민들 중 절반이 나의 바람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면서 '우울모드'로 급 반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사진첩을 열어놓고 잠시 고민한 끝에 원인을 찾게 됐다. 우울모드의 원인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했다. 그러나 간단함에 깃든 문제는 적지 않아 보였다. 특히 우리처럼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제외동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외교부가 밝힌 재외동포 수는 2020년 기준 약 732만 명(7,325,143명)이었다. 재외 동포는 외국국적 동포(시민권자) 4,813,622명, 재외국민 2,511,52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전 세계 5대양 6대주에 흩어져 실고 있었다. 우리도 그중 두 사람이다. 우리나라 이민사를 들여다보면 오늘날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이민의 모습을 '타향살이'로 노래했다. 노랫말을 잠시 들여다볼까..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요즘은 BTS에 열광하지만, 한 때 고복수 님이 부른 이 노래는 우리 세대보다 앞선 어른들에게 애창되었던 노래이다. 당신께서 비좁은 이 땅에서 조차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었으므로, 먼 나라에서 살고 있으면 당신이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1933년 고복수(高福壽) 님이 불렀던 '타향살이'는 단순히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어서 적적한 마음을 노래한 게 아니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 노래는 일제(日帝)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가는 서글픔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라 없는 설움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으면 이런 노래가 등장했을까..
지난주, 겨울을 떠미는 봄비가 도시를 흠뻑 적실 때 나 또한 흠뻑 젖었다. 바짓가랑이는 물론 운동화가 비에 흠뻑 젖을 때까지 집에서부터 도시 중심을 돌아 바닷가까지 싸돌아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열어본 사진첩 속의 '나'는 불과 한 이틀 만에 달라진 조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먼 나라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지내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조국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만, 내 생각은 그러하다. 마치 어미 품을 떠난 아이들처럼 잘 놀다가 불현듯 엄마를 떠올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어머니와 조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조국은 거리와 장소는 물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고나 할까..
그리움의 실체는 사랑이다. 내가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기억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곁에 없으면 늘 보고 싶어 하는 게 타향살이에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그리워한 대상이 타향살이의 노랫말처럼 어떤 이유 등으로 지워지거나 오염되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불과 이틀 전 내 조국 대한민국에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일반의 상식 혹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반하는 한 인간이 등장하면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커뮤니티에 등장한 별명대로 땡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땡칠이란 별명은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대통령 후보)에게 0.73%로 차로 이긴 대통령 당선자를 일컫는 기발한 별명이었다. 그렇게 부른다고 기분이 좋아질 까닭은 없다. 다만 땡칠이에게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에게 붙여주는 대통령이라는 대명사를 절대로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참 불행한 일이 지난 3월 9일에 일어났던 것이다.
갈게 더 끼적거릴 이유도 없다. 먼 나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은 늘 조국을 바라보고 산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게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때 그분들의 마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조국이 최소한 자랑스럽지는 않을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아야 될 게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등 만남의 과정에서 우리를 치네제(Cinese, 중국사람)으로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동양인들을 싸잡아 치네제 혹은 지아뽀네제(Giaponese, 섬나라 사람)이라 부르는 것. 나는 그때마다 "나는 꼬레아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 그러시군요"라며 겸연쩍어한다.
동양인을 싸잡아 치네제로 부르는 이들의 속내는 동양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포함되어 있다. 별로 잘 나지도 못한 사람들이 우쭐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로 말한다. 나는 그때마다 "이탈리아어 할 줄 모르느냐"며 씩 웃는다. 물론 녀석들은 그때마다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해한다. 먼 나라 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황당 시추에이션'이다.
미주알고주알 긴 말이 필요 없다. 땡칠이를 국가원수로 뽑아준 사람들이 원수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땡칠이는 당분간 국가 원수 자리를 놓고 이런저런 모양으로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정권 교체 장면을 보면 권력을 인수인계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나라살림을 해 나갈 작정일 것이다. 그동안 땡칠이가 싸질러 둔 <아무 말 대잔치>에 따르면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고 광화문에 집무실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그 빈자리를 국민들께 돌려준다고 한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땡칠이의 속내는 금방 도드라져 삐져나온다. 땡칠이가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건 시쳇말로 '잔대가리'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의 영부인이 접대부 출신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이 그걸 모를 리 있겠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일이 시방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당분간 사람들을 만나면 스스로 '꼬레아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냥 부끄럽지 않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뿐이다. 이게 다 겁대가리 상실한 땡칠이 덕분(?)일까.. 정신건강에 좋은 일을 찾아 나서야 할 차례다.
Una vista tranquilla di Barletta bagnata dalla pioggia
il 11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