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권력의 암울한 미래 VI
아직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서기 2022년 3월 12일 새벽(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아주 가끔씩 새벽을 깨우는 자동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 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니도 깊은 잠에 빠졌다. 이틀 전 그림 수업 때문이다. 집중에 집중을 요구하는 그림 수업이 잠시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수업이 끝나면 어느 순간부터 피곤이 몰려드는 법이다.
살며시 잠자리서 일어나 거실에 불을 켜고 컴에 로그인하고 자판을 가볍게 두드린다. 내 앞에는 도전의 도시 바를레타(La Disfida di Barletta)가 비에 젖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도시는 언제부터인가 매우 친근해졌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자주 써먹는다)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어느 날 우연히 예술가(Luigi Lanotte)를 만나면서 우리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루이지가 사는 도시가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 아래 바닷가였다. 루이지가 설명을 곁들일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바를레타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조차 몰랐다. 설명이 끝난 직후 우리는 "어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지도를 펴 놓고 바를레타를 찾아보니 가물가물.. 그런데 그녀의 그림 수업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구하러 방문한 초행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생각한 어촌이 아니라 뿔리아 주에서 꽤나 잘 나가는 도시였다. 구도시 전체는 대리석으로 지어졌으며 도시의 중심 곳곳에는 고급 리스또란떼와 상점들이 줄지어있었다. 도시가 거대한 백화점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탈리아 뿔리아 주가 그러하지만, 도시 주변에는 올리브 과수원과 포도원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곳이었다. 공업시설은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오염원이 없어서 도시는 늘 상큼한 풍경을 유지하곤 했다.
이 도시를 오염시키는 것은 자동차뿐이랄까.. 도시는 비가 오시면 반들반들 윤기가 흐른다. 뿐만 아니라 비가 오시는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보석으로 치장해 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명명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인구 1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도시는 주말만 되면 인구 100만 명이 사는 도시보다 북적거렸다. 그런 도시가 대략 3년 전부터 인적이 뜸해진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이 도시는 하니를 두 번씩이나 한국으로 피신시켰다. 그녀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나섰다. 그중 한 곳이 아드리아해가 내려다 보이는 도시 외곽의 언덕이었다. 그 언덕에 서면 바를레타 사구가 한눈에 보이고 우리는 이 언덕을 따라 바닷가의 산책로를 통해 산책 겸 운동을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독자님들과 이웃분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랑삼아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도시에 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4년 째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정이 들대로 든 먼 나라의 도시 바를레타.. 하니는 가끔씩 "돌로미티로 이사를 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나는 그녀의 바람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안다. 기왕에 이탈리아서 사는 거 경치도 좋고 물도 좋고 공기도 좋은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아침 당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나서면 눈에 띄는 풍광이 천상의 나라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생가기 시작했다. 이 도시가 너무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맨 먼저 물가가 너무 싸다는 점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싼 물가가 있는 나라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야채와 과일은 공짜에 버금가는 가성비를 자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패션의 나라답게 시민들의 옷차림은 최상이다.
그리고 그녀를 멀리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림 수업이 일취월장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이어지는 그림 수업에 재미를 붙이면서 루이지가 너무 좋아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제 엄마의 작품을 보고 좋아라 하며 전시회를 열어주고 싶어 한다. 3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이 들대로 든 도시..
그럴 리가 없지만 당신이 그토록 아꼈던 사람과 도시는 물론 재산을 어느 한순간 날강도에게 빼앗기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사람들은 이런 경우의 수를 남의 일로 여긴다. 가끔씩 뉴스 속에 등장하는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면 "저런 나쁜 자식이 있나"하며 육두문자를 쓰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세계 어디를 가도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일비재한 일이다.
인간들의 욕심과 욕망이 지나친 나머지 목숨 걸고 남의 재물을 빼았거나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과 개인의 일이다. 시선을 보다 더 넓혀보면 러시아의 푸틴이 제정신이 아니다. 아예 미쳤다. 자국의 병사들은 물론 우크라이나 병사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일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천벌을 받을 짓"이라며 반전운동에 나섰다.
우리에게 이런 볼썽사나운 풍경들은 익숙하다. 1천 번에 가까운 외침은 물론 바다 건너 섬나라로부터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배를 받아왔다. 그동안 우리 선조님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겪었다. 이른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슴에 한으로 남은 게 이들의 만행이었다.
일제라고 하면 치를 떨 정도였으며, 이들과 싸운 독립군 이야기는 전설이 됐다. 그때 불렀던 노래 <울 밑에 선 봉선화>는 참으로 슬프다. 슬플 때는 노래를 불러야 슬픔이 해소되는지.. 노랫말은 왜 그렇게 처량한지 모르겠다. 이랬지..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어언간 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더 들어봤다.(링크 참조) 홍난파 님이 작곡하고 김형준 님이 작사했으며 노래는 김천애 (1919~1995) 님이 불렀다. 노래의 녹음은 1940년에 됐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어부지리 광복을 맞이했다. 억압받던 민족에게 해방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한반도를 초토화시키며 잿더미가 됐다.
그리고 대략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민족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일제에 충성을 하던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18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일제강점기를 다시 겪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독재자가 총살을 당하자 이번에는 군부독재가 등장했다. 그냥 등장한 게 아니라 전혀 무고한 광주시민을 빨갱이로 몰아가며 무차별 사살했다.
광주 학살자로 지목된 전두환에 이어 그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권력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국민들의 가슴속에 저항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세상은 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친일 잔재가 뚜렷한 이명박근혜의 출현으로 잠시 맛 본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군사독재가 한창일 때 '권력의 시녀'로 불리며 온갖 악행을 일삼던 검사 나부랭이가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일러 땡칠이라 불렀다. 제20대 대선에서 0.73%의 근소한 차이로 앞서자 부른 땡칠이.. 나는 이때부터 멘붕에 빠지면서 녀석들이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땡칠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불과 사흘 전의 일이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컴에 로그인하자마자 엉뚱하게도 <보슬비 오는 거리>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보슬비 오는 거리에 / 추억이 젖어 들어 /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믈뿐인데 / 아 타버린 연기처럼 자취 없이 떠나버린 /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 보슬비 오는 거리에 / 밤마저 잠이 들어 / 병들은 내 사랑은 한숨뿐인데 / 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 견디게 괴로워도 / 흐르는 눈물은 빗속에 하염없네
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607080 세대에게 귀에 익숙한 노래일 것이다. 이 노래는 성재희 님이 불렀는데 여러분들이 따라 부를 정도로 노랫말이 심금을 울린다. 새벽에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본 데는 내가 또는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을 빼앗긴 슬픔 때문이었다. 노랫말 속에는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대상을 바꾸어 보니 앞서 언급한 <울 밑에 선 봉선화>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서기 2022년 3월 10일부터 독재자의 시녀 노릇을 했던 검사 나부랭이 출신 땡칠이가 권좌에 오른 것이다. 잠시 멘붕에 빠졌다가 새벽에 깨어보니 그곳에 내 조국 대한민국이 무한 더럽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울 밑에 선 봉선화'가 가슴 깊이 다가오면서 '보슬비 오는 거리'를 소환하는 것이다. 먼 나라에서 기댈 언덕은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조국뿐이다.
그런데 작금에 한반도 반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조님들의 음덕을 저버리고 어쩌자고 거짓말쟁이 땡칠이를 권좌에 앉혔을까. 사람들이 티브이 안 본다고 한다. 뉴스 안 듣는다고 한다. 꼴 보기 싫다는 말이다.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았거나, 학습한 우리 역사가 머리에 남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슴에 남았다면, 차마 할 수 없는 짓이 백주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가 낳은 외눈박이 세상.. 배가 더 고파봐야 하고 자존심이 상할 대로 더 상해봐야 알 것인가.. 역사를 베우는 이유는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외침을 1천 번 가깝게 받고 일제 강점기를 거친 후손들의 생각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지함 이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세계로부터 자원 입대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며, 빵의 가치를 아는 진정한 휴머니스트들이다.
휴머니스트가 되라고 말 하지 않는다. 더도 덜도 노예를 자처하지 말기 바란다. 아울러 선조님을 능욕한 후손들에게 빵을 구걸하지 말라. 땡칠이와 떨수의 공통점은 친일행위를 한 선조를 두고 있다는 점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몸을 사릴 게 아니라 우리 선조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롭지 못한 일에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 다 쓰러져 가는 어머니와 조국을 살리는 위대한 일이다.
Una vista tranquilla di Barletta bagnata dalla pioggia
il 12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