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A, 요리학교 학생들의 작품과 이탈리아어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어를 잘 말할 수 있을까..?!!
지난해 나의 <이탈리아 요리> 밴드의 독자 정은주 님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오셨다.
"안녕하세요~ 드라마처럼 재밌고 흥미진진한 현지 생활 잘 읽었습니다. 저는 요리보다 몇 가지 궁금한 점 여쭤봅니다. 현지인과 이태리어('이탈리아어'가 정확한 표기이다)로 대화를 하실 정도면 실력이 대단하신데 이탈리아어를 언제부터 시작하셨을까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알마 요리학교 수업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어떻게 하면 잘하실 수 있는지 배우고 싶네요~^^ 제가 얼마 전에 가입해서 잘 몰라서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드립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도 이민이 가능한지? 이탈리아 요리님은 영주권을 취득하셨는지요? 어떻게 하면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막연하고 궁금한 마음에 여쭤봅니다 ~^^"
이런 질문은 여러분들이 해 오셨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중심으로 답변해 드리고자 한다. 질문은 이러하다. 1) 이탈리아어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2)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지.. 3) 이탈리아 혹은 유럽 국가들도 이민이 가능한지.. 4) 어떻게 하면 오래 머무를 수 있는지.. 5)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 질문의 요지 살펴보면 이탈리아 혹은 EU 국가에 장기간 머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답변에 들어 기기 전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한 동기부터 설명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이하 글쓴이가 졸업한 요리학교(ALMA)에 졸업작품으로 출품한 요리를 감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어를 잘 말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변을 드리도록 한다.
1) 이탈리아어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기 시작하면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됐다. 그때 나이가 50대 중후반이다. 요리학교에서 최고령자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졸업을 했다.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2015년 3월이었다. 어느덧 8년 차이다.
KiHoondo 학생 작품
2) 어떻게 하면 이탈리아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지?
모든 공부가 다 그러하겠지만 언어 습득에 왕도는 없다. 청춘들도 쉽지 않은 언어 습득에 안 청춘이 덤벼들었으므로 그 과정은 험난했다. 따라서 처음 배우는 언어에 대한 동기부여가 매우 중요하다. 어느 날 지천명의 나이를 지내놓고 보니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점점 더 흥미를 잃고 있었다. 뻔한 세상 뻔한 삶.. 나는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한 번 태어나기도 힘든 인생이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의 정리가 끝나자마자 실행애 옮겼다. 죽기 전에 피렌체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작은 음식점(Trattoria)을 경영하고 싶었다. 미켈란젤로의 도시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된 동기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내 조국..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어머니와 조국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기 전 내가 태어난 조국에 대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잘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전투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던지, 금수저로 태어나던지, 그것도 아니면 정치검찰이나 법관이 되는 일이다. 이른바 상류 3~5%에 해당되어야 떵떵거리고 살아갈 것이다.
설령 떵떵거리고 살아간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겪어야 하는 정치적 현실은 가혹했다. 여전히 적폐 세력들이 설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어디를 둘러봐도 부조리 투성이다. 언론은 정론직필을 상실한 지 꽤 오래되었다. 여전히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우리는 물론 선조님들이 주로 그런 환경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분들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 질문에 답한다.
이게 나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였으며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였다. 어떤 사람들은 동기부여를 "이탈리아에서 한 달만 살고 싶어"라고 말하거나 꼬드긴다. 미리 말하지만 몰라도 한참 모르거나 상대를 기망하여 이익을 도모하려는 자이다. 당신이 특정 지역에서 한 달을 살고 싶어서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을 언어 습득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그건 바보 같은 짓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200% 실패를 한 사람들이다. 실패는 고사하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으로 다시는 이탈리아를 보지 않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 요리학교의 졸업장(간판)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한국 사회가 만든 병폐가 나타난 것이다. 200% 실패를 한 사람들이다.
KimKyeongnam 학생 작품
그렇다면 이탈리아어를 어떻게 습득할 수 있을까..
서두에 언급된 1), 2), 3), 4), 5)의 공통점이자 핵심은 언어 공부에 달려있다. 말을 하지 못하면 특정 국가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대체로 한국의 이민자 사회는 언어 습득에 게으른 것을 볼 수 있다. 영어권이든 스페인어권이든 이탈리아 혹은 그 어떤 나라의 이민자들도 성공하지 못한 경우의 수는 언어 습득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언어 습득이 전제되어야 성공적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동양인들이 특정 국가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이유는 그들만의 문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소통에 문제를 지닌 것으로 사료된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외대를 나온 사람도 있고 건축을 전공한 사람 성악을 전공한 사람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 등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언어 때문에 고민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한국말로 배우는 이탈리아어도 힘이 든데, 이탈리아어를 이탈리아어로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들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면서 어느덧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청춘을 언어 공부에 시간 다 보내고 보니 대학 졸업자의 나이가 30줄에 접어들었다. 어떤 분은 이탈리아어에 투자한 시간이 너무 길어서 결국 결혼까지 포기한 사람도 봤다. 당신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나라가 지옥처럼 변하고 결국 보따리를 싸고 고향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어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동기부여가 확실하다면, 한국에 사는 게 지겨워 죽을 지경이라면, 경우의 수 하나를 잘 봐 두시기 바란다.
이탈리아어 이렇게 공부했다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었던 내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교대 앞에 위치한 한 어학원에 등록한 즉시 강행군에 들어갔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 언어를 전공한 내가 아는 것은 은사님이 가르쳐 주신 언어 습득 방법이 전부였다. 언어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문법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 입에서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빠를라 빠를라.. 주절주절 중얼중얼..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강남의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운동 겸 언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초소형 녹음기에 녹음된 장문의 이탈리아어를 통째로 외우기도 하고 동사 형용사 등을 큰 소리 내어 외우고 또 외웠다. 은사님께서는 "발음이 어렵거니 말이 잘 안 될 때는 한 단어를 천 번씩 외우라"라고 말씀하셨다. 문법을 배우면서 내게 닥친 난제는 어휘를 늘리는 것이었다. 매일 20 단어씩 5천 단어를 외우는 게 목표였다. (이게 가능할까..?ㅜ)
KimMinseok 학생 작품
만약 내가 청춘일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외국어대학 교수가 되었거나 외교관 등 관련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을 게 분명하다.(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일이 지속되자 생긴 일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면 코피를 쏟는 것이다. 매일 아침 코를 틀어막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전철을 타고 어학원에 갈 때도 전철 속에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흘깃거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가까운 공원에 들렀다. 공원에서 웅변하듯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외우고 또 외우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책상에 앉아 예습과 복습에 열중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잠자리에 들면 이어폰을 귀에 꼽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에 곯아떨어진 어떤 때는 꿈속에서 조차 중얼중얼.. 문장이 훤히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고 다시 1년이 지났을 때 나의 몸무게는 10킬로그램이 줄었다. 아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떠날 때까지 대략의 사정이 이랬다. 솔직히 말하건대 게으름을 피운 시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내 입에서는 이탈리아어가 한 두 마디씩 튀어나왔으며 생소하던 언어가 하나둘씩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탈리아로 건너간 이후 리스또란떼에서 일을 마치면 숙소로 돌아와 집에서 하던 습관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리고 짬이 생기면 이탈리아인들을 만나 나의 언어를 시험해 봤다. 소통이 시작되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 열심히 불렀던 노래가 '넬라 퐌타시아(Nella Fantasia)'였는데 이탈리아는 노래 가사를 쏙 빼닮았고 내 조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정직한 모습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다. 가사는 이랬지..
Nella fantasia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a.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Come le nuvole che volano.
Pien' d'umanita in fondo all'anima.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Li anche la notte e meno oscura.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Come le nuvole che volano.
Pien' d'umanita in fondo all'anima.
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Che soffia sulle citta, come amico.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Come le nuvole che volano, Pien' d'umanita in fondo all'anima.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어느 날부터 이런 노랫말이나 방송은 어느덧 쉽게 귀에 들려왔다.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 때까지
앞에서 대략 살펴본 게 우리의 이탈리아 정착기 중 언어 공부에 관한 일면이다. 여러분들이 질문한 요지는 이탈리아 혹은 EU 등지에서 장기 체류하는 일이다. 나는 언어 공부 외에도 장기체류에 관한 절차 등을 모두 밟았다. 맨 먼저 비자(Residenza Ellettiva)를 발급받고 이탈리아에 넘어온 즉시 장기체류허가증(Permesso di soggiorno)을 신청하고 받았다. 그리고 이탈리아 신분증(Carta di identità)을 취득했다. 그다음 이탈리아 은행에 나의 계좌를 만들었으며 인터넷을 개설했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한국의 면허증을 주 이탈리아 한국 대사관에서 공증을 받은 다음 절차에 따라 발급한다. 그리고 자동차를 구입했다.
이 과정이 쉬운 거 같아도 결코 쉽지 않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관공서에서 할 수 있는 일 전부를 나 스스로 해결했다. 만약 이런 일 등을 해결할 수 없었다면 아내는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고 싶어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은 하나.. 그 어떤 경우의 수라고 할지라도 언어 준비가 소홀하면 그 어떤 꿈도 이루어지지 않거나 사상루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동기부여가 되고 새로운 꿈을 꾸면 한 눈 팔지 마시고 정진하시기 바란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위 글 중에 주목해야 할 내용이 있다. 이탈리아서 본 내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저 수수방관할 수 없어서 사족으로 몇 자 남긴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동기에 대해 한 번 더 살펴보시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그곳에 적혀있다. 어떤 분들은 요즘 뉴스를 열어보기 무섭거나 싫다고 한다. 안 봐도 비됴이다.
이럴 때 그냥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당장 이탈리아어를 공부해 보시기 바란다. 남의 나라 언어를 습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참고로 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안 청춘도 해 낸 일이다. 최소한 당신이 지천명의 나이에 도달했다면 꼭 도전해 보시라. 이탈리아 정말 흥미로운 곳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적힌 페이지를 언급하며 글을 맺는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된 동기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내 조국..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어머니와 조국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기 전 내가 태어난 조국에 대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잘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전투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던지, 금수저로 태어나던지, 그것도 아니면 정치검찰이나 법관이 되는 일이다. 이른바 상류 3~5%에 해당되어야 떵떵거리고 살아갈 것이다.
설령 떵떵거리고 살아간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겪어야 하는 정치적 현실은 가혹했다. 여전히 적폐 세력들이 설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어디를 둘러봐도 부조리 투성이다. 언론은 정론직필을 상실한 지 꽤 오래되었다. 여전히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우리는 물론 선조님들이 주로 그런 환경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분들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na_Reggia di Colorno
il 18 Marzo 2022, La Disfu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