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4. 2022

요리사 앞에서 주름잡은 예술가

-기록, 그녀의 시간


우리가 잘 아는 것과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서기 2022년 3월 13일 일요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화창하다. 구름 몇 점이 점점이 하늘에 박혀있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부지런히 다니고 있다. 이곳 바를레타의 일요일은 여느 때보다 평온하다. 시민들 다수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로 가거나 도시 곳곳에서 여가를 즐긴다. 표정들은 밝고 만나는 사람들 마다 인사를 건네는 화목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슬픈 풍경보다 행복하고 기쁜 모습을 더 많이 만나게 됐다.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겠다만,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어쩌면 속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때 겉모습도 덩달아 우울한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잠시 표정을 감출 수는 있지만 장시간 당신의 표정을 관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얼굴에 나타난 게 관상이라나 뭐라나.. 


위 자료사진은 사흘 전 하니의 화실 옥상에서 바라본 스카이라인이다. 안테나가 빼곡한 보기 드문 풍경이 이곳 바를레타의 구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구도시는 대리석으로 포장되고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통신선로를 매설할 수 없다. 따라서 가스배관 혹은 전기 배선 등은 모두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는 기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하니가 그림 수업에 몰두할 때 가끔씩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하니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릴 때면 집중에 집중을 더하게 되고, 무념무상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되므로 불행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나 할까. 본문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불과 사흘 전에 남긴 기록들이며 그녀의 그림 수업 과정이 담겼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 초까지 대략 5개월 동안 이어진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달에 12번의 수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5개월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대략 예순 번(12x5=60)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최소한 예순 번은 행복에 겨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나 할까.. 




요리사 앞에서 주름잡은 선생님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맛있는 요리 때문에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웃을 도운 일 때문에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도둑질을 해야 행복하고.. (이건 이상하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잘 커줘서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서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촌이 땅을 사서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소맥 때문에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등..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삶의 최고 가치인 행복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행복만이 살 길이라 굳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늘 빛과 어둠 높고 낮음 강하고 약함 좋고 나쁨 등 상반된 관계로 질서를 이루고 있다.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면 반드시 불행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등식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곳이 그녀가 말하고 있는 행복 속에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 그림 수업 중에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빛과 어둠.. 그러니까 흑과 백의 차이를 통해 대상을 소묘로 그려내는 것이다. 지난 주말(금요일)에 그녀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가 건넨 과제는,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1882년에 연필로 그린 작품(Matita, penna e inchiostro su carta)이었다. 작품의 이름은 '슬픔(Dolore, Sorrow)'이었다. 



머리를 두 팔에 파묻고 쪼그려 앉은 그녀의 모습에서 슬픔을 너머 절망이 느껴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을 말할 때 그녀에게는 불행이 깃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이란 말은 야속하게도 늘 상대적이다. 불행한 사람이 없다면 반대편에 있던 행복은 나타나지 않는 것. 그래서 그녀의 소묘 작업 중에는 늘 흑과 백이 교차로 등장하고 흑과 백 사이에 회색이 채워진다. 5개월 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된 작품은 주로 그러했으며, 장차 연필이나 목탄을 벗어나 붓으로 그림을 그릴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그녀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가 수업시간 중에 넓적한 알루미늄 포일을 들고 내 앞에 내려놓으며 짜잔~하고 뚜껑을 열어보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루이지는 엄마가 해 준 요리를 우리와 함께 나누어 먹곤 했는데 이날도 그랬다. 아무튼 먹는 것을 앞에 두면 입이 귀에 걸리며 행복해지는 것이다. 히히.. ^^ 



생선 이름은 브란찌노 혹은 스피골라(Branzino (spigola))로 불리는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생선이다. 학명은 'Dicentrarchus labrax'이다. 생선의 맛은 참돔의 맛을 쏙 빼닮은 맛있는 고급 어종이었다. 그는 즉시 포일 뚜껑을 열어젖히고 능수능란한 솜씨로 포르첼라(Forcella, 포크)와 꼴뗄로(Coltello, 나이프)를 이용하여 생선 요리를 해체 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열어보면 보다 더 흥미롭게 사건(?)이 진행된다. 나는 요리사.. 그는 하니의 그림 선생님.. 나는 생선 킬러 꼬레아노 1인.. 그는 엄마가 요리해 준 것만 먹어온 노총각 선생님.. 루이지는 나의 요리 솜씨에 대해 익히 잘 안다. 어떤 때는 내가 만들어준 이탈리아 요리를 먹고 '엄지 척 X수백 번'은 더 됐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하니가 루이지를 위해 만들어 준 김밥이며 김치 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입만 열면 김치! 김밥! 을 중얼거릴 정도로 우리나라 음식 맛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 그가 시연해 보인 생선요리 해체 법 그리고 시식을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리사 앞에서 주름잡던 그가 왜 놀랐을까..


그는 열심히 엄마가 오븐에서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을 흩뿌리고, 레몬즙을 뿌려 구워낸, 담백한 생선요리를 잘 해체하여 대접하고 싶었을 것이다. 맨 먼저 생선 대가리를 분리하고, 그다음 생선 뱃살과 함께 뼈를 발라냈으며, 지느러미까지 제거하고 난 연후에 생선 껍질을 발라냈다. 그리고 생선살 가득한 몸통을 짜잔~하고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끝나자마자 내가 먹은 것은 역순이었다. 맨 먼저 생선 대가리를 발라먹고, 그다음 뼈가 달라붙은 뱃살을 먹고, 마지막으로 잘 발라낸 생선껍질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생선요리를 먹을 때 루이지와 같은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생선 맛 등을 잘 아는 식도락가들은 어두일미라 칭하는 생선 대가리는 물론 뱃살과 생선껍질을 탐하게 될 것이다. 몸통의 살에서 느낄 수 없는 고소한 맛 대부분은 루이지가 버리고 싶은 부위에 모두 포함되었다고나 할까. 

동물이든 생선의 맛은 지방이 좌우한다. 그중 생선에 포함된 지방은 영양 성분은 물론 효능(통과~)까지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배를 불리지는 못할지라도 요리 고유의 맛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까이꺼.. 생선 한 마리를 셋이서 나누어 먹으면 성에나 찰까. 맛이나 보면 그만이지..!




다시 앞서 언급했던 행복과 불행 타령을 이어간다. 우리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 행불행을 느끼게 된다. 생선 안 조각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하면 보다 더 큰 물질과 권력으로부터도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당신이 처한 현제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더 누리고 싶은 사람들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작품에 묻어난 '슬픔' 혹은 슬픈 여인도 존재한다. 그는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Lettere a Theo)에서 이렇게 술회한다.



"지난가을 한 임산부를 만났어. 버림받은 여자였지.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있어.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는 거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하는 힘이 아니겠니. 그녀의 이름은 시엔이야. 시엔을 모델로 '슬픔'이라는 최고의 소묘를 완성했어. 감동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슬픔'은 미약한 시작에 불과해. 하지만 내 감정이 여과 없이 담겨 있지. 내가 슬픔을 느끼지 못하면 그림을 그려 낼 수가 없어."



시엔은 누구인가


빈센트 반 고흐의 세 번째 여인은 시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매춘부, 클라지나 마리아 후르닉이다. 그는 그녀를 크리스틴이라고 불렀는데, 그 보다 세 살이 많았고, 그를 만날 당시 임신 중이었다. 알코올 중독에 매독 환자였던 그녀에게 다섯 살짜리 딸이 있었다. 그녀는 이미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그는 시엔이라는 여인을 사랑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매춘부를 사랑한다고 봤다. 시엔과 살림을 차렸지만, 고흐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결국 시엔이 다시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됐고, 1883년 9월 고흐는 시엔과 아이들을 놔두고 후커벤으로 떠난다. 이후 한동안 고흐는 그녀와 아이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시엔은 훗날 재봉사와 세탁부로 일을 하다가.. 1904년, 스켈트 강(River Scheldt,Schelda) 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원작 '슬픔(Dolore, Sorrow)'Vincent van Gogh, Dolore (6-9 novembre 1882); gesso nero, 44,5 ×27 cm, The New Art Gallery, Walsall. F 929a, JH 130


작금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원치 않았던 일 등에 대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행을 말한다. 누군가는 "고통은 나누면 작아지고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라고 말했다. 빵 한 조각이나 고기 한 덩어리도 이웃과 함께 나누면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토기와 같이 잘 깨어지는 (마음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 장차 어떻게 변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요즘 먼 나라에서 열어본 내 조국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서 불행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여인은 눈부신 햇살 아래서 벌거벗은 몸으로 두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파묻고 있다. 고흐가 말하는 작품 속의 그녀는 불행했으며 고흐 당신도 불행했다. 그래서 그는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있어.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는 거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함께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예술가의 창조적 세계는 이런 모습이다. 다행히도 먼 나라에서 하니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요리사 앞에서 신나고 재밌게 주름(?)을 잡은 루이지가 생선 한 마리를 혼자 다 먹었다면 배는 불렀을지 모르겠다. 그렇치만 과연 행복했을까. 우리.. 슬플 때는 더욱더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 전부가 아니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만이라도.. 대한민국이 통째로 행복해질 때까지..!


Un ottimo record per una settimana della Disfida di Barletta
il 13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양송이버섯 초간단 파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