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용산 집무실 필요 없는 이유

-반쪽짜리 권력의 암울한 미래 X

by 내가 꿈꾸는 그곳


뒷골목에서 놀던 녀석들은 뒷골목 티를 낸다!


서기 2022년 3월 23일 오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우리가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이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 뒷골목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르네상스(Rinascimento, Renaissance)의 도시라 부른다. 우리가 문예부흥이라 부르는 원래의 뜻만으로는 리나쉬멘또.. 즉 부활이란 뜻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사진첩에 등장한 뒷골목 풍경은 자정이 넘은 시각에 방문한 곳으로 인적이 뚝 끊겼다. 그러나 다시 날이 밝으면 세계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이곳은 13세기경에 지어진 건축물로 라 토레 데이 부온델몬티(La Torre dei Buondelmonti)라 이름 지어져 있다. 부온델몬티가(La famiglia dei Buondelmonti)가 살았던 탑 모양의 건축물로 이 길을 따라 델몬티가는 여러 개의 탑을 소유하고 있었다.(Borgo Santi Apostoli (per esempio quella che oggi è chiamata Torre degli Acciaiuoli)) 그중 하나의 탑 아래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탈리아의 퓌렌쩨서 살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도시 전체에 널브러져 있는 중세시대 전후의 건축물 등으로 어디를 찔러(?) 봐도 이야기보따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흥미로운 곳이다. 아울러 사진이 취미인 내게 매우 적합한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퓌렌쩨 뿐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바를레타는 물론 이탈리아 전체가 그런 곳이라 봐도 가언이 아닐 정도로 이야기보따리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시선을 아드리아해 너무 동북쪽 한반도로 시선을 돌리고 한반도를 들여다 보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궁전이나 토후 세력들의 유뮬 몇 곳을 제외하면 잿더미로 변한 전쟁의 폐해거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하여 가난했던 시절의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유년기 등을 돌아보면 뒷골목 문화가 성행한 적 있다.


내 고향은 부산.. 동족상잔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피난민들이 득실대던 곳이고, 부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나무 몇 그루 보이지 않는 헐벗은 곳이었다. 산기슭은 물론 중턱까지 판잣집들이 얼기설기 모여 살았다. 사람들은 그곳을 피난민촌이라 불렀으며 북에서 피난 온 '북한 사람'들이 '아바이, 애미나이' 등의 사투리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죽마지우 한 녀석은 그분들의 2세였다.


그리고 그런 동네에 가면 입에도 담기 힘든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중 양아치와 깡패 그리고 양공주 등이 아이들의 입에 자주 올리던 볼썽사나운 풍경이었다. 양아치란 거지를 속되게 일컫는 말로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당시에는 품행이 천박하고 건들거리며 못된 짓을 일삼는 양아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 일부는 무리를 지어 싸돌아 다니며 행패를 부리곤 했다. 요즘으로 치면 조폭이나 깡패들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잘 몰랐던 양공주들이 오늘날 땡칠이의 마누라 이력에 포함된 콜걸이었다.



오늘 아침 노트북을 열어 퓌렌쩨 뒷골목과 한국의 근현대사에 드러난 뒷골목 풍경을 일면 비교해 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 지난 대선에서 티브이 토론을 할 때 잠시 열어본 토론 광경 속에 땡칠이는 시쳇말로 '돌대가리'였다. 뭘 아는 게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녀석을 검사 나부랭이라 부를 정도였다. 나는 걱정스러웠다. 만에 하나 저런 녀석이 덜컥 대통령에 당선 되면 나라가 큰일이겠다 싶은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 보다 0.73%(그래서 땡칠이) 앞서며 당산이 됐다. 문제는 곧바로 터져 나왔다. 녀석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겠다나 뭐라나.. 지난 대선 때 나로부터 돌대가리로 지목된 녀석을 대가리를 지배하고 있는 건 땡땡 법사와 양공주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콜걸의 지배를 받거나 무속인의 지배를 받는다며 커뮤니티를 도배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팩트로 지울 수가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땡칠이가 대선 중에 써먹던 대장동 사건의 몸통이 녀석으로 밝혀지면서부터 녀석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상습적인 거짓말에 이어 타인을 기망하여 이득을 취한 사기꾼이나 협잡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머리에 뭐 하나 든 게 없는 땡칠이.. 녀석이 어느 날 청와대 집무실을 마다하고 용산으로 가겠다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들까지 기분 잡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업무를 어디서 보던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의 머리이다. 국정을 돌봐야 하는 녀석의 머리가 돌대가리라면, 녀석을 어디에 앉혀 두어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매일 술이나 퍼 마시고 상접대를 일삼는 것으로 알려진 검사 나부랭이가.. 어느 날 덜컥 국가원수 자리에 오르면서 사람들로부터 원수 소리를 듣게 된 게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돌대가리는 이장이나 면장 혹은 통장도 할 수 없다는 게 대선 토론을 통해 확인됐다. 뭔가 아는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유세 중에 얼핏 본 녀석의 동태는 뒷골목의 양아치나 할 수 있는 행동이나 말을 사용하곤 했다. 정말 겁대가리 없는 녀석이 어느 날 우리 앞에 등극한 것이다.


글을 맺는다. 께시민들 외 0.73%를 더 찍은 사람들이 눈여겨봐야 한다. 녀석의 집무실은 소맥을 즐기는 술집이거나, 양공주를 대접하는 분홍빛 커튼을 내린 곳이 전부라 생각되는 것이다. 뒷골목 양아치가 집무실이 필요 없듯 국가안보를 내팽개친 녀석에게 용산 운운 따위는 '개 발에 닭알' 같은 게 너무도 잘 어울린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녀석이 설레발을 치는 이유는 콜걸 정부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라 생각한다. 녀석의 원죄가 그 속에 깃들었다.

퓌렌쩨의 한 명소는 중세 이전 때부터 오늘날까지 보존이 잘 되어있다.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특정 가문은 물론 이 도시와 나라는 빛내고 있는 것이다. 땡칠이의 출생은 1960년 12월 18일이라고 한다. 나이가 어느덧 60세를 넘겼다. 뒷골목 양아치도 이순에 접어들면 착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땡칠이는 아직도 철이 덜 들거나 덜 떨어진 한 검사 나부랭이의 모습이다. 우리 국민 다수가 검찰개혁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쪽짜리 권력의 암울한 미래가 우리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Un vagone medievale che illumina Firenze_La citta' di Michelangelo
il 23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