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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6. 2019

누가 나를 위로해 줄까

-시선만 바꾸었을 뿐인데 달라진 세상

내가 외로울 땐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요즘 필자는 조금 피곤하게 산다. 피곤을 느낀다. 왜냐하면 능력 밖의 일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능력이란 늙어가면서 사서 하는 고생이다. 고생은 모름지기 젊어서 해도 시원찮은데 새까만 아이들하고 함께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는 것. 내가 이수하고 있는 과정에는 다국적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한다. 


한국 학생들은 물론 일본, 미국, 캐나다,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러시아, 독일, 리투아니아, 아제르바이잔, 스페인, 스위스 등지에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위해 피렌체로 온 것이다. 이들은 언어 과정이 끝나면 각자 전공을 찾아 이탈리아 각지로 떠나게 된다. 요리와 가죽공예로부터 디자인, 패션, 건축 등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 




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동안 어쩌면 내게 전혀 필요치 않을 것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해, 공유하면 좋을 듯싶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우리 학급에서 자주 듣게 되는 게 충고(Consiglio)라는 단어이다. 예를 들면 대략 이러하다.


나이 18세의 로미오란 녀석이 죽을 만큼 사랑에 빠졌는데 그의 가족은 물론 줄리엣의 가족들까지 나서서 두 사람의 관계를 못마땅해하는 것. 나이 16세의 줄리엣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로미오가 없으면 단 하루라도 세상을 사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상담사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 상담사 내지 해결사는 학생들이다. 충고를 제시하는 문장을 통해 문법을 익히거나 회화를 연습하게 되는데 학생들의 상상력은 나를 차마 웃지 못할 상황으로 몰아간다. 이미 세상만사 오만가지를 겪은 나이에 불 보듯 뻔한 문제를 놓고 고민에 앞서 웃게 되는 것. 어떤 학생들은 충고랍시고 이렇게 끼적거렸다. 



-제발 죽지 말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세요. 

-로미오 당신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줄리엣 보다 더 아름다운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줄리엣도 정신 차려야 해요. 요즘 취직이 얼마나 어려운데 벌써부터. 

-양가 부모님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 보세요.

-운동을 열심히 하던지 취미를 가져보세요.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든지 등등





충고를 살펴보면 말도 안 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었는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학생들 같았다. 학생들 중에는 30대에 이른 학생도 있지만 17세부터 22세 전후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자기가 작문한 내용을 발표하며 남의 일처럼 키득거리는 것. 선생님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별의별 상상을 다 동원한 학생들 때문에 좋아 죽는 것이다. 이때 내 차례가 왔다. (뭐라 했게요..?)



"흠.. 한국이라면 사정이 조금 다르지요. 고3 때 혹은 이 나이에 공부는 안 하고 사랑놀음에 빠지면 어른들 한테 디지게 혼나요. 따라서 두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서로를 잊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반드시.."



어른들은 당신께서 당연히 겪어온 과정이지만 아이들한테는 관대하지 못해 핏대를 올린다. 이탈리아어로 발표한 문장은 국격과 품격(ㅋ)을 생각해서 점잖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런 말이 하고 싶어서 부글부글 끓었다. 예전에 부모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셨지 아마도..!


"흠.. 요것들 봐라.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요즘 이렇게 말하면 십중팔구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또 누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기 새끼들에게 이런 거친 발언을 일삼겠는가. 그래서 당사자들은 더 죽을 맛이다. 자기들의 속사정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SNS 등을 통해 비상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것. 그렇다면 뾰족한 수가 있을까.





최근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웃을 둘러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와 다르지만 그 보다 꽤 심각한 주제들이 적지 않았다. 머리가 아플 것.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둘러대지만, 정작 자기에게 닥친 불행이라면 생각이 다를 게 아닌가. 최소한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해도 위로라도 받고 싶을 것이다.  이런 상황 등 머리 아픈 세상의 일 때문에 가수 윤복희 씨는 "여러분'이라는 노래를 불러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것 같다. 이랬지..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네가 만약 음..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하략)



이 노래가 대히트를 치며 가수 임재범 씨까지 리메이크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는 다름 아닌 것.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자 사회적 존재란다. 처음엔 이런 정의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인 줄 알았지만, 웬걸.. 사노라면 절로 알게 되는 발가벗긴 인생의 나약한 모습이랄까.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벌이나, 나는 새를 말 한마디로 떨어뜨릴 만한 권세를 지닌 권력자나, 요즘 인기 절정에 다다른 방탄 소년 같은 사람들이나, 명예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겨드랑이가 시릴 정도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것. 그때 위로받을 어떤 대상이 궁극적으로 필요해진다는 게 인간사의 모습이다. 모습이란다.



윤복희 씨가 부른 '여러분'의 노랫말을 인용한 건 다름이 아니다. 노랫말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위로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려 하지 말라는 것. 쉽게 변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므로 위로의 대상을 신이나 자연으로부터 발견하라는 것일까.



글을 읽어 내려오는 동안 4월 초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잎사귀들(자료사진)이 눈에 띌 것이다. 사진들은 몇 해 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대모산 기슭에서, 아침나절에 촬영된 것으로 내가 너무 좋아하는 풍경이다. 1년에 단 한차례 밖에 볼 수 없는 녀석들의 모습을 통해 내 속에 가득한 삶의 찌꺼기를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여쁜 아이들(?)을 통해 스트레스에 찌든 내 몸이 정화되면서 삶의 활력을 얻게 되는 것. 봄이 준 기막힌 선물이다.



대략 40년 전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 촬영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을 내게 안겨주며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에 띄는 사물 혹은 피사체들은 거의 언제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내게 말을 거는 이다. 그리하여 녀석들은 나의 외장하드 빼곡히 줄 맞추어 서 있다가 주인의 부름에 기분 좋게 화답하며 짜잔 하고 등장하는 것.





사노라면 누구를 위로해 줄 일 보다 위로를 받아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더라. 그때 평소에 생각지 못한 쉬운 방법 하나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름 길게 끼적거리고 있는 것. 감갑하거나 두려운 일 등 문제가 닥치면 먼저 머릿속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게 좋더라. 


지금 내가 그런 셈이다. 능력 밖의 일을 도모하여 온 몸이 과부하 상태로 변하며, 마치 1 테라바이트 외장하드를 99% 소진한 듯 빨간불이 켜진 것. 이때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학생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써먹던 어설픈 설루션? 그것도 아니면 포맷을 하던지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던지.. 해야 할 텐데 후자는 불가능하여 전자의 경우를 추천해 드린다. 





산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누군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산은 언제 어느 때 방문해도 변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보듬어 주는 곳이란다. 위로해 주는 곳이자 위로받는 곳이란다.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했거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담 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때, 혹은 오만가지 잡념이 당신을 괴롭힐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곳이 히말라야든 아마존 밀림이든 파타고니아든 또 동네 뒷산이면 어떠랴. 확신하건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순간, 오래전 어머니께서 어린 당신을 품에 꼭 껴안고 토닥거리던 안도감에 빠지며 질펀한 눈물을 흘리게 될 것. 반대로 어머니께서 연로하시다면 당신이 꼭 보듬어 주시라. 어머니는 자나 깨나 평생을 당신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하신 분이다. 또 어머니가 안 계신 빈자리는 어머니가 너무 사랑하셨던 풀꽃들이 채우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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