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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5. 2019

돼지 껍데기 요리의 끝판왕

-토마토 양념으로 만든 돼지 껍데기 요리

녀석들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일행을 맞이한 토스카나 주 돼지의 자세


글쓴이가 다녔던 요리학교의 장점 중에 하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사용되는 농축산물 가공 현장 또는 축산 농가를 직접 방문해 산지식을 얻는 것이다. 포르맛지오를 만드는 곳이나 라르도를 만드는 곳, 파라오나를 기르는 축산 농가며, 쁘로슈또 나 꿀라뗄로를 만드는 곳이며, 포도원의 깐띠나 등등.. 우리가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으면 눈에 쉽게 띄는 유제품과 농축산물의 주요 생산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어느 날 토스카나 주의 한 축산 농가를 방문한 곳에서 쁘로슈또를 만드는 돼지(Cinta Senese)를 만나게 됐다. 목에 흰 띠를 두른 특별한 종의 이 돼지는 토스카나 주에서 생산되는 대표 특산물(DOP_ denominazione di origine protetta)로, 수컷의 무게는 대략 300kg(암컷 250kg)으로 알려졌다. 주로 야외에서 방목해 키우는 이 돼지는 우리가 방문했을 때 돼지우리에서 낮잠을 퍼질러 자고 있었다. 


녀석들은 돈생무상함을 느꼈던 것일까.. 6월의 따뜻한 볕이 이들을 비몽사몽 물아일체의 경지로 빠뜨렸는지, 드러누운 우리 옆에는 샛노란 꽃다지가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희한하게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그들은 곧 시장에 내다 팔릴 준비를 하는 몸.. 삶을 초월한 듯한 자세로 일행을 맞이한 것이다. 





돼지 껍데기 생각난 썰렁한 날씨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의 일기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화창한 봄 날씨를 연상케 할 정도였는데 오늘 아침부터 험상궂은 날씨로 변했다. 장대 같은 비를 퍼붓는가 하면 운동 겸 산책으로 나간 바닷가는 파도소리가 울부짖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한편 날씨가 썰렁해진 것이다. 


바닷가 방파제에서 울부짖는 파도를 카메라에 담다가 옷도 다 젖고, 우산까지 다 망가지고, 머리는 비 맞은 생쥐꼴로 귀가하면서 가까운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봐 왔다. 돼지갈비와 돼지 껍데기.. 몸이 으스스해 귀가하면 갈비찜과 돼지 껍데기 요리를 해 먹을 작정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날씨가 썰렁해지면 가끔씩 소주와 곁들여 먹던 돼지 껍데기가 생각난 것이다. 귀가하자마자 곧 작업에 들어갔다.




자료사진은 이탈리아 요리 유학 당시 현장 체험학습 시간에 방문한 토스카나 주의 한 축산 농가의 6월 풍경 



뽀모도로 살사로 만든 돼지 껍데기(껍질) 요리


브런치에 올려둔 돼지 껍데기 요리(자료 사진)를 잘 관찰하면 돼지 껍데기가 유난히 두껍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껍질이 두껍고 안쪽 비계층까지 잘 도려낸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돼지 껍데기는 이 보다 얇았다.(거의 가죽 수준이었지 아마..) 이날 대형마트에서 구매한 돼지 껍데기는 대략 600그램으로 1킬로그램 가격은 1.9유로(우리 돈 2천 원 정도)였다. 그러니까 천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구입한 것이다. 이런 걸 '천 원의 행복'이라고 불러도 좋다. 갈비는 두 팩(1.3킬로그램 정도)에 6유로를 지불(20% 할인=대략 5유로)했다.


이날 만든 돼지 껍데기 요리는 절차가 꽤나 까다롭다. 리체타를 대략 소개하면 이러하다. 먼저 커다랗고 깊은 팬 혹은 냄비에 깨끗하게 다듬은 돼지갈비(600그램)와 돼지껍데기(600그램)을 넣는다. 센 불로 팬을 달군다.(지지직~) 팬이 충분히 달구어지면 준비한 비노 비앙꼬 한 컵 분량을 넣고(치익~) 뚜껑을 덮는다. 팬 안에서 '6.25 때 난리는 난리가 아닌 것처럼' 잠시 요란하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대략 5분 정도 끓인 후 이번에는 한 컵 분량의 물을 붓고 간장 세 큰 술과 통마늘 여러 쪽을 넣고 뚜껑을 덮은 후, 한소끔 끓으면 약불로 낮추어 10분 이상 대략 20분 정도 후에 불을 끄고 식힌다. (위 영상 참조) 그동안 밀린 숙제(?) 하고, 볼 일 보고, 브런치에 글을 좀 끼적거리는 등 시간을 보낸다. 출출하고 허기가 몰려드는데 왜 이런 절차가 필요할까.




뽀모도로 살사만 만들면 이탈리아 표 돼지 껍데기 요리는 끝


우리만 돼지 껍데기 요리를 먹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인들로 매우 즐긴다. 다만 우리나라와 만드는 절차와 양념이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추장으로 버물리거나 고춧가루를 뿌리는 등 매콤한 양념이 주를 이루며 쫄깃한 식감을 내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돼지 껍데기 요리는 춥거나 썰렁한 날씨에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하루 피곤이 싹 날아가신다. 


그런 반면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돼지 껍데기(COTEANNA DI MAIALE) 요리는 비주얼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바로 뽀모도로 살사 때문이다. 이들은 튀겨먹기도 하고 콩과 뽀모도로 살사와 함께 먹는 등의 요리를 만든다. 내가 만든 요리는 후자의 경우와 비슷한 것으로, 돼지갈비의 육즙을 최대한 우려낸 다음 곱게 간 빠싸따 디 뽀모도로(Passata di pomodoro)와 함께 조려내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앞서 우려낸 갈비와 돼지 껍데기는 왜 식혀두었을까.. 충분히 식은 팬의 뚜껑을 열어보면 놀라게 될 것이다. 육즙이 자작한 팬 위에는 새하얀 띠가 형성되어 있을 것. 돼지기름이 뽀얗게 응고된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뜨거울 때 갈비나 돼지 껍데기를 먹었다면 돼지기름 대부분을 함께 먹었을 것이다. 돼지비계가 좋다고 한들 일부러 퍼 먹을 이유가 있겠는가. 


이때 비계와 갈비를 전부 걷어낸 팬 속으로 뽀모도로 한 컵 분량을 쏟아붓고 끓여내는 것. (위 과정을 단축하려면 부드럽게 잘 삶은 돼지 껍데기와 육수만 있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접시에 올릴 때 토스카나 주에서 만났던 '돼지의 호접지몽'을 연출하면 끝!!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솔직히 말해서 한 점 한 점 잘라먹는 동안 '세상에 이런 맛도 있었나' 싶을 것. 이날 곁들인 건 루꼴라와 비노 비앙꼬였다. 돼지 껍데기의 끝판왕이 탄생한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COTEANNA DI MAIALE CON SALSA DI POMODORO
il 23 Novembre 2019, Citta' di Barletta PUGLIA
Piatto 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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