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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3. 2019

못생긴 딸기로 만든 기분 좋은 후식

-이탈리아 요리 철학이 가미된 나의 요리

현대 이탈리아 요리의 모티브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산책 겸 운동삼아 다녀온 어느 바닷가


브런치를 열자마자 눈에 띄는 표지 사진과 작은 보트가 있는 풍경은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글쓴이가 거의 매일 산책 겸 운동삼아 다니던 바닷가의 모습이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거뭇하게 보이는 그림자는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에 비교했을 때 뒤꿈치에 해당하는 곳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이곳은 대략 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왕복 10킬로미터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제법 멀게 느껴지는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어쩌다 낚시꾼 한 두 사람만 목격될 뿐 하루 종일 파도만 바쁘게 오락가락하는 곳. 참 아름다운 곳이며, 어떻게 보면 쓸쓸해 보이는 풍경이기도 하다. 



이 바닷가의 특징은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밭 곁으로 사구(砂丘)가 함께 길게 이어져있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거의 질 무렵이어서 석양에 비친 바닷가는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연인들이 단 둘이서 손을 잡고 이곳에 왔다면, 머지않아 입맞춤이 이어질 수 있는 달콤한 풍경이 도사리고 있는 곳. 


사구 너머로 갈대가 바람에 서걱이며 저녁노을을 멀리 떠나보내고 있었다. 처음 가 본 그곳에는 바를레타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해변에서 볼 수 없는 바위들이 파도소리를 조율하고 있었는데, 사구 곁으로 함초를 닮은 연보랏빛 꽃들이 지천에 흩뿌려져 있었다. 




이탈리아 현대 요리의 모티브


이날은 바닷가 풍경만 카메라에 담고 내게 준 감동은 가슴에 담아왔다. 그리고 현대 이탈리아 요리 철학이 가미된 '나의 요리'에 당시 풍경 두 장을 준비해 브런치에 올려두었다. 이탈리아의 현대 요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일 것 같은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괄띠에로 마르께지(Gualtiero Marchesi) 선생께서는 특강 시간을 통해 나의 질문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히 당신의 요리 철학을 전수해 주셨다. 큰 행운이었다. 선생께서는 짬짬이 여행을 통해 요리의 영감을 얻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늘 메모지나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셨는데 여행 중에 만난 풍경을 단순화시킨 다음, 그 풍경을 요리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부터 대가의 가르침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 뿐만 아니라, 요리의 모티브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마다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희열이 마구 요동치는 것이다. 요리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게 다가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가께서 요리사더러 끊임없이 공부를 하라는 가르침 뒤에는 음식 만드는 기술자가 되지 말고 음식에 영혼을 불어넣는 예술가가 되라는 것이었다.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요리 만드는 법은 기본이며 미학이며 철학이며 회화 등을 공부한 후에, 접시를 도화지로 삼아 그림 그리듯 식 재료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못 생긴 딸기로 만든 기분 좋은 후식 모티브


요리학교 졸업시험(디플로마)에 출품할 작품(요리)을 구상하는 데만 꼬박 3개월이 걸렸으므로, 이걸 단숨에 이해하고 요리에 접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의 가르침을 깨닫는 순간부터 식 재료는 당신이 느꼈던 감흥을 전달할 매개체로 작용하며 물감처럼 붓에 묻어나는 것이다.


이틀 전 나의 브런치에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이란 제목의 글을 끼적거린 바 있다. 못생긴 아이들이란 딸기를 지칭한 것으로, 철 지난 딸기밭 언저리에서 수확해 온 것이었다. 녀석들은 생기다만 것처럼 반듯하지도 않을뿐더러 비뚤비뚤 제 마음대로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을 보니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도배하는 게 아닌가. 




내가 딸기를 구매한 결정적인 이유는 '못생긴 생김새'며 '맛' 때문이었다. 그리고 녀석들을 후식(i Dolci)으로 요리해 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냉장고 속에는 사흘 전에 대형마트에서 구매한 딸기 요구르트가 있었다. 작은 컵에 든 걸쭉한 딸기 요구르트의 량은 125그램이었다. 보통은 요구르트 속에 딸기 흔적(알갱이)만 남아있다. 입에 씹히는 딸기는 턱없이 부족하여 시장에서 구매해 온 못생기고 새콤달콤한 딸기를 후식에 이용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위에서부터 스크롤바를 내려오고 있는 동안 눈을 즐겁게 만든 기분 좋은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못생긴 딸기는 (오디션을 최종 통과한 녀석들로) 바닷가에서 만난 해초 낀 바위로 변신하며, 주변을 아름답게 만든 풀꽃들의 달콤한 풍경과 함께 접시 위에 올려졌다. 글쎄, 이런 후식을 남편이 아내에게(혹은 반대로) 예쁘게 접시에 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하겠는가. 또 아이들과 노약자들은 어떻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MEMORIA DELLA SPIAGGIA DI BARLETTA
i Dolci_la Storia della Cucina italiana ALMA
Piatto 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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