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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0. 2019

난생처음 본 비현실적 풍경 앞에서

-요즘 보기 드문 한 쌍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 쌍이지 아마도..!


북부 파타고니아가 시작되는 칠레의 로스 라고스(Los Lagos) 주, 뿌에르또 몬뜨(Puerto_Montt)에서 이동한 직후 만나게 된 오르노삐렌(Hornopiren)의 봄은 매우 특별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변화무쌍한 날씨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날이 밝은가 싶으면 오르노삐렌 삼각주는 뽀얀 안개에 갇혀, 누군가 베일을 둘러둔 듯한 비현실적 풍경을 연출했다. 


그때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 앞에서 할 말을 잊는 것. 뷰파인더는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것까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행운이었다. 이날 아침 꿈속에서 본 듯한 또 다른 한 장면과 마주치게 된 것. 누군가 베일을 조금씩 아주 천천히 조금씩 걷어낸 자리에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말 두 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만치서 한 쌍의 말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듯 마주 보며 서 있는 것이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오르노삐렌의 삼각주인데 썰물이 되면 넓은 초원으로 변하는 곳. 밀물이 되면 작은 어선(자료사진)들이 정박해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차 오른다. 그때마다 리오 네그로(Rio Negro) 강과 리오 블랑코(Rio blanco) 강 하구는 바다로 변하곤 했다.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또 한 번의 행운을 누렸는데,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용케도 물때(조수간만의 차로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일어나는 현상)가 썰물에 맞추어져 있었다, 강하구에 널따랗게 펼쳐져 있던 밀물 대부분을 달님이 회수해 가는 것. 


그때마다 오르노삐렌은 뽀얀 분가루를 얼굴에 토닥토닥 찍어바르며 뷰파인더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시시각각 화장을 고치며 베일 전부를 안데스 머리 위로 걷어붙이곤 하는 것. 그때마다 한 쌍의 부부는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곤거리는 것이다. 



"지금 행복하세요..?"




지금 당신 곁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 행복이란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이 행복하려면 주변 혹은 또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가 삶의 메커니즘이랄까. 누군가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 또 다른 누구는 당신을 사랑한 대가 혹은 피치못할 희생을 톡톡히 치르고 있거나 있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어느날 문득 나이를 계수하다가 철이 들었다는 것을 느낄 땐, 곁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될 것같다. 그러니까 나는 또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나절에 본 한 쌍의 부부는 하루 종일 발품을 팔며 강하구에 떠내려온 나뭇더미(땔감으로 파는)를 수레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수레질은 굵은 자갈이 깔린 강바닥을 비틀거리며 여러 번 건너야 하는 매우 힘든 노동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났던 보기 드문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둘만의 격려의 토닥거림이 엿보이는 것. 


삼각주를 덮고 있던 베일 전부가 걷히는 순간부터 고된 노동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곁에서 잠든 아내는 또 어떻고.. 새끼들과 지아비가 행복하지 않다며 투정을 부릴 때, 당신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불살랐던 게 아닌가. 그래서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요즘 보기 드문 한 쌍'이라는 칭찬을 받게 되면, 그건 전부 값없이 베푼 당신의 희생 덕분인 것. 오르노삐렌의 이른 아침이 내게 베푼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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