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의 속살
요즘도 수첩에 여행 메모를 하시나요..?
참 바보 같은 자문자답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자들은 여행기록을 수첩에 적었다. 나의 수첩은 여행일 수와 비례해 꽤 두툼했다. 아울러 배낭 속에는 현지 가이드북(론니플래닛)과 지도는 물론 취사도구와 양념까지 챙겨 다녔다. 거기에 침낭과 여벌의 옷과 카메라 장비 등이 포함돼 마치 쌀가마니를 지고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랄까. 이게 대략 아날로그 배낭여행자의 모습이다.
얼마나 어수룩한 모습인가. 따라서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요즘 같으면 두툼한 수첩이나 가이드북 등을 대신해 줄 휴대폰이나 태블릿 하나면 족하다. 현재 위치는 물론 각종 정보와 기록들을 여행지에서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여행자는 불평 한 번 없었다. 그리고 어떤 기록들은 굳이 수첩에 기록하지 않아도 가슴에 담아두는 것. 또 여행 사진 한 장만 펼치면 당시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른 아침 북부 파타고니아의 뿌엘로(Puelo)에서 첫차를 타고 본격적인 파타고니아 투어에 나섰다. 뿌엘로의 새벽은 얼마나 조용한지 마치 진공상태를 방불케 할 정도. 안개가 자욱한 이른 새벽 숙소를 나와 깔레따 뿌엘체로(Caleta Puelche)로 가는 버스 종점으로 이동한 후 첫차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우리가 이름 붙인) 코자이께(Coyhayche)로 가는 버스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깔레따 뿌엘체는 뿌에르또 몬뜨에서부터 시작된 까르레떼르라 오스뜨랄(Carretera austral)의 두 번째 포구며, 이 길을 따라가면 오르노삐렌을 거쳐 까르레떼르라 오스뜨랄의 해로(海路)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중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까지 끝까지 가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일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먼저 묵었던 오르노삐렌 숙소의 아주머니가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고 일러주어서 흔쾌히 길을 찾아 나선 것. 그 호수 이름은 따구아 따구아(Lago Tagua Tagua)였는데 이름처럼 재밌고 특별한 풍경을 지닌 곳이었다.
또 링크된 호수 상류를 따라가면 쟈나다 그란데(Llanada Grande)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 전혀 뜻밖의 어느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할머니 아이들은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Argentina)에서 살고 있었고, 주말이면 가끔씩 이곳으로 놀러 온다고 했다. 또 혼자서 외딴 숲 속에서 뜨개질을 소일거리로 사시고 계셨다.
할머니의 친구는 착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와, 매일 아침 계란을 제공해 주고 있는 닭 몇 마리가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연로하시지만 뜨개질 손놀림은 세심하고 빨랐다. 또 우리를 위해 계란을 얻으러 갈 때면 동작도 빠른 편이었고,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빵을 만들고 굽는 솜씨는 전혀 할머니답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할머니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또 우리를 위해 아들이 사용하던 2층 방을 통째로 내어주며 하룻밤을 유숙해도 좋다고 하셨다. 희한한 일이었다. 개신교에 심취해 있었던 할머니께선 우리를 일러 '하늘에서 보내주신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고마워하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다음날 할머니의 이끌림에 따라 정말 전혀 예정에도 없던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에 참여한 것.
예배가 끝나고 할머니는 열댓 명의 적은 수의 교인들에게 우리를 소개하며 흐뭇해하셨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비용 얼마를 지불하니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시다니.." 하시며 뜻밖의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다시 이곳을 방문하면 꼭 들르겠다"고 약속하며 돌아서는데, 포옹을 마친 아내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아내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을 했을까.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속살을 드러낸 깔레따 뿌엘체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했다.
"팔순의 할머니께서 우리가 다시 올 때까지 살아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