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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4. 2019

다가서면 더 멀어지는 꿈같은 아침

-한국인들이 잘 안 가는 여행지_4 

다시금 생각해 봐도 황당한 장면..!


까마득히 오래전, 내게 발생한 일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입학도 하기 전, 어린 꼬마 녀석의 시선에 환상적인 한 풍경이 포착됐다. 어느 날, 뒤뜰로 이어진 현관문 바깥 앞동산 위에 알록달록 색깔이 뚜렷한 무지개가 걸려있는 게 아닌가. 그땐 그게 자연의 한 현상이라는 걸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무지개에 가까이 가 보기 위해 고무신을 신는 둥 마는 둥 잽싸게 앞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무지개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 황당했다. 그때 저 먼 곳에 조금 전에 봤던 무지개가 다시 걸려있었다. 무지개에 대한 환상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말을 내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산자로부터 하루 3 천리씩 멀어진데..!



어른들의 말씀 속에는 어떤 근거가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가 죽는 순간부터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빨리 잊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참 슬픈 시추에이션이네 ㅜ) 십리가 4km이므로 하루 동안 대략 1200km씩 산자로부터 멀어지는 것.  평소에 그렇게 애지중지 사랑했던 당신 이건만, 죽음이 갈라놓은 별리(別離)의 아픔은 그렇게 촛불처럼 사그라들면서 당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제 아무리 애달파 한들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게 산 자와 죽은 자의 역할일까.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의 아침은 안개가 자욱했다. 다가서면 멀어지는 꿈같은 아침이었다. 오르노삐렌의 삼각주 현장을 탐사하면서 만난 풍경 앞에서, 무아지경 혹은 물아일체의 삼매경에 빠진 나로부터 아내는 저만치 앞서 가는 것.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꿈속에서는 그랬다. 가까이 다가서면 점점 더 멀어졌던 무지개처럼, 산자로부터 하루 3 천리씩 도망치듯 멀어진 그리움의 대상들..





어느 날 불쑥, 그렇게 멀어졌던 기억들이 내 앞에 나타나 당시의 상황을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럴 리가 없겠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어느 날 불쑥 당신 앞에 나타나 당신의 안부를 묻게 된다면 기절초풍하게 될까. 아니면 좋아 죽게 될까.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얘야, 난 죽으나 사나 자나 깨나 주야장천 너만 사랑했단다. 지금도..!"



이른 아침, 안개와 이슬이 뽀얗게 내려앉은 오르노삐렌 삼각주를 저만치 앞장서 걷던 아내는, 가끔씩 나를 향해 뒤돌아보곤 했다. 죽은 자는 하루 3 천리씩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진다건만, 당신은 여전히 나의 존재를 일깨우며 무지개처럼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 우리 앞에 다가오는 모든 현상들이 무지개 같을지라도 나는 그 환상을 결코 잊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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