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 불시착한 외계의 사람들
외계의 생물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난 주였다. 학생들의 작문 시간에 재미있는 주제가 주어졌다. 향후 50년 지구의 미래 및 우주에 존재할 수도 있는 생물 등에 대해 마음 가는 대로 쓰라는 것. 이 주제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그룹을 지어서 토론한 후 결과물을 옮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와 한 조가 된 여학생 두 명과 짝을 지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우리는 지구별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 먼 우주로 향하고 있었다.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내 외계의 생물('외계인'이라 한다)이 사는 어느 행성을 그렸다. 모티브는 어린 왕자가 사는 행성이었다. 그러나 코딱지만 한 작은 별에 등장하는 생물의 모습은 착하고 똑똑하며 잘 생긴 어린 왕자와 판이한 생김새였다. 생각도 달랐다.
그래서 하나하나 그림을 완성해 나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흉측하게 생긴 모습 때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생김새는 이러했다. 녀석이 사는 별의 이름은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메가스텔라였다. 메가스텔라는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한 일본 여학생이 안경을 뜻하는 메가네(めがね)를 제안한 것과, 내가 제안한 별을 뜻하는 스텔라(la stella)의 합성어였는데 이유가 있었다. 메가스텔라에는 중성(Unisex_남녀 구별이 없는 일체)의 한 외계인이 살고 있는데 그의 몸에는 온통 눈이 박혀있는 것. 맨 처음 외눈박이로 시작한 녀석은, 토론시간 동안 진화를 거듭하여 머리통 전체가 잠자리 눈처럼 변했을 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눈이 사방으로 박혀있는 것이다. 너무 흉측했다.
실제로 이런 모습의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밤중에 절대로 만나지 않아야 꿈자리가 조용할 것. 아무튼 녀석의 정체성을 완성한 후 이번에는 그가 살고 있는 행성의 식물(먹이)을 그려 넣을 차례가 됐다. 따라서 어린 왕자의 별을 참조하여 장미 한 송이를 그렸는데.. 글쎄 이 마저도 단박에 진화를 거듭하며, 꽃잎에 눈이 박힌 희한한 식물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메가스텔라에 살고 있는 외계인은 꽃잎을 먹고사는데 그때마다 소멸된 하나의 눈이 다시 생기게 되는 것. 그렇다면 녀석에게 왜 이렇게 많은 눈이 필요하게 됐을까.. 녀석의 장점은 세상 모든 것을 24시간 감시하거나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것. 따라서 잠시 졸기라도 한다면 눈 하나가 소멸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연속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것.
하나의 별을 차지한 외계인, 우리 인간과 너무 다른 생김새와 생식 습관 그리고 그의 운명.. 우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문법과 회화 등을 익히는데, 나는 이 짧은 과정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좋아했다. 상상 속의 세상을 좋아했었다.
아내와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로부터 꽤 먼 곳에 위치한 안데스 근처까지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르노삐렌 앞바다가 빤히 보이는 곳에서 저만치 먼 곳에 큼지막한 산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리오 네그로 강과 리오 블랑카 강이 쏟아낸 토사들이 쌓여 삼각주(Delta a Ventaglio di Hornopiren)를 이루고 있는 널따란 초원이었다.
이 초원은 평소에 물속에 숨어(?) 있다가 썰물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데 몽골의 초원처럼 장관을 이루곤 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 삼각주에는 우리 내외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가 보고 싶었던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재밌게 생긴 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본문의 자료 사진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큼직한 돌(자갈)의 표면에는 누군가 문양을 그려 넣은 것 같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또 삼각주 한편 강가에는 이런 돌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와 생김새가 유사한 돌을 본 적 있지만, 이렇듯 호기심을 끌만한 돌은 보지 못한 것. 따라서 쪼그려 앉아 녀석들과 눈을 마주하며 자세히 관찰한 결과 생물(이끼류 같았다)들이 살았던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로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이곳의 날씨를 참조하면, 돌에 새겨진 문양의 정체는 이끼류가 날씨가 습한 우기 때 돌 표면에 서식했다가 건기가 되면서 말라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긴 생물의 흔적들은 지구별에 흔치 않아 마치 외계의 모습을 발견한 듯했다. 그래서 이곳의 풍경을 관련 포스트에 한국인들이 잘 안 가는 여행지라고 표현할 만큼 귀한 장소였던 것.
시선을 조금 달리해 보면 자갈돌들은 각자 작은 행성으로, 그 행성에는 무수한 개체의 생명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도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갈돌 하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서두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늘, 우리 혹은 자기만의 입장에서만 대상을 바라보거나 생각한다. 객관적인 듯 매우 주관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통해서만 알게 될까.
인간은 일찌감치 시선을 외계로 돌려 태양계의 여러 별을 둘러보며 생물이 살 수 있는 토양을 갖추었는지 등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외계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이나 흔적을 발견하면,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학술지에 결과물을 옮겨 자랑을 한다.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작문 시간에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학자들 혹은 우리 인간들은 인간의 관점에서만 대상을 바라보지 외계의 생명 현상이나 생물 입장에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예건데 우리는 다른 행성에 물이 존재해야 생명이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산소가 존재해야 생물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 진공상태에서는 생물이 살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한다.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 아니었을까..
서두에 언급한 메가스텔라는 상상 속의 행성이며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온몸에 눈이 박혀있다. 또 그가 좋아하는 식품은 단 한 종(種)이며 꽃잎에 눈이 박혀있다. 그는 꽃잎을 먹고 산다. 아울러 생명체의 얼굴에는 코며 입이며 귀까지 다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녀석은 지구별에 사는 우리들처럼 처럼 산소를 흡입하고 먹이를 섭취한 후 용변까지 봐야 하는 걸까.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생각만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체와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갖춘 외계의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광속으로 아니면 그 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간이동을 하며 우주 저 먼곳까지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지않을까. 또 어쩌면 그들은 생로병사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한 삼각주에 널부러진 작은 돌을 살피자니 마치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이 만든 대단한 작품이다.
Delta a Ventaglio HORNOPIREN
LOS LAGOS PATAGONIA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