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한국인들이 잘 안 가는 여행지
"아저씨.. 아저씬 어느 별에서 오셨어요?"
"얘는.. 그걸 몰라서 묻니..?"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효?"
"왜? 내가 어째서..!?"
녀석은 품에서 거울을 꺼내 보여주며 나의 얼굴 앞에 들이댓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녀석은 무엇을 봤길래 내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을까. 나는 녀석을 빤히 들여다보며 조금 전의 느낌을 되새겨 봤다. 내 몸은 마치 진공상태에 놓인 것처럼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까마득한 우주 저 먼 곳 어느 별에 불시착한 것 같은 착각이랄까.
무념무상의 세계가 이런 것이지 아마도.. 내 속은 수정처럼 말갛게 새털보다 더 가볍게 변하며 최소한 반 백 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녀석은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구별에 사는 동안 처음 만난 녀석은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에 위치한 오르노삐렌의 리오 네그로 강변에 살았으며, 이름은 군네라 띤끄또리아(Gunnera tinctoria)였다.
현지에 살거나 식물에 관심이 많거나 식물학자가 아니라면 잘 알 수도 없는 녀석의 정체는 오히려 외계에서 온 식물처럼 생소했다. 군네라 띤끄또리아는 관상용으로 주로 파타고니아 서부 지역의 온대성 기후에 자생하고 모래 땅에 머리를 박고(?) 살아가고 있었다.
군네라 띤끄또리아도 봄이 되면 새 순을 내놓는데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새순을 따서 시장에 내다 팔고 있었다. 식용으로도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꽃술과 잎이 매우 특이한 녀석의 모습 때문에 북부 파타고니아를 돌아보는 동안 눈을 마주치는 일이 매우 흔했다.
어떤 이파리는 텐트를 펴 놓은 것처럼 널찍했으며 얼마나 튼실한지 잎 위에 작은 보따리를 올려놓아도 끄떡없었다. 또 성장한 줄기는 얼마나 억센지 현대에 사는 동물들은 녀석을 도무지 공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파타고니아 투어 중에 만난 녀석들을 두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녀석은 공룡이 즐겨먹던 샐러드가 틀림없어.. 아마도!"
아내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녀석의 물음에 답하며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느 봄날 리오 네그로 강변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두 외계인(?)이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표정으로 강변을 걷고 있는 것.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의 젖줄 리오 네그로 강은 뿌에르또 몬뜨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고 강하구는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으나, 우리가 아는 모래톱과 전혀 다른 형태의 지질을 갖추고 있었다.
오래전 오르노삐렌 화산에서 분출된 것으로 추정된 굵은 자갈들이 모래밭 바로 아래층을 더 받치고 있는 것. 따라서 리오 네그로란 이름은 수정같이 맑은 물이 거무스름한 자갈 위를 흐르는 동안 검게 보이면서 붙여진 이름이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군네라 띤끄또리아가 좋아하는 지형이 이런 곳이었을까.
우리는 처음 보는 식물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봄(남반구)이 되어 네그로 강 곁에서 샛노란 꽃잎을 드러낸 풀꽃들 때문에 도무지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녀석들이야말로 태양계 저 바깥 알 수 없는 행성에서 날아온 우주의 생명들 인지도 모를 판이었다. 우리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그건 먹이사슬 꼭대기에 위치한 한 생물의 자만심 외 더도 덜도 아니었지. 도대체 우리가 뭘 안다는 말인가.
"희한하지.. 이런 데도 있었나?"
여행은 이런 게 아닌가. 무슨 도를 닦아야 도달하는 경지가 아니라 특정 장소에 머무는 것만으로 무념무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 네그로 강가에서 일상에서 혹은 살아가는 동안 무뎌지거나 혼탁해진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싹 씻겨 내려갔다고 할까.
우리를 정화시켜준 건 다름 아닌 파타고니아의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도 안데스의 티 없이 맑은 대자연의 양식을 호흡하지 않았다면 천상의 언어를 쏟아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녀는 '예술가의 십계명'을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그녀는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당신의 현재 위치를 한 마디로 알려주거나 경고하고 있었다. 인간의 자만과 교만이 망가뜨린 영혼을 되살리는 일은 전혀 힘든 게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는 것.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해맑은 아이처럼 변하는 게 아닐까.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나는 왜 그녀가 위대했고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지 나중에 알게 됐다. 아름다움의 근원이 신의 그림자라고 그 누가 표현한 적 있던가. 또 그 누가 자기 속에 내재된 신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리켰던가. 그리고 수많은 작품 중에 유독 '예술가의 십계명'에 매달리며 메시아처럼 여기는 것. 만약 여행을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신의 보살핌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며, 신의 동행을 공감하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저씨.. 아저씬 어느 별에서 오셨어요?"
"얘는.. 그걸 몰라서 묻니..?"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효?"
"왜? 내가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