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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8. 2019

내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의 상큼한 아침

부활을 믿습니까.. 아니면 믿고 싶습니까?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둥지를 튼 후, 르네상스를 일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해 보니 단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지는 것. 그중 하나는 우리가 학습을 통해 잘 아는 예술가들이며 또 하나는 이들 예술가를 후원한 가문이다. 


예건데 메디치와 미켈란젤로, 메디치와 브루넬레스키, 메디치와 산드로 보티첼리, 메디치와 누구누구 등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이 열심히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메디치가의 후원 덕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같은 일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흔치 않은 일이자 처음 있었던 위대한 인류의 재발견이었다. 실체가 모호한 신의 중심이었던 신본주의 사상에서 인류문화사의 주역인 인본주의가 부활의 날개를 단 것.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역사는 매우 아이러니해서 누군가 의도한 일이 계획처럼 잘 진행되지 않고 희한하게 '삐딱선'을 탄다는 것. 이탈리아 최대의 축일 부활절 아침에 내가 너무 좋아하며 아끼던 오르노삐렌의 아침 풍경을 앞에 두고,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브런치에 옮기기 시작했다. 글의 제목을 '내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로 뽑아 놓고 자료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것. 


피렌체를 방문하신 분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한 번쯤 들리게 되는 곳이 있다. 피렌체의 명물이자 세계인들이 아끼는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 그것. 이곳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 '봄'과 '베누스의 탄생'은 물론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오색 방울새의 성모' 및 치마부에의 '산타 트리니타 마에스타' 등 그야말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미술관 전체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정말 대단한 곳이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이 같은 보물창고(나는 이렇게 부른다)는 없을 것. 아내와 함께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 작품을 더 이상 감상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기회를 미루었다. (무슨 이유로?..) 미술관 빼곡한 작품들을 하루 만에 다 둘러본다는 건 무리이자 예술가들을 무시하거나 모독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미술관 측에서 작품 관리 등의 이유로 미술관 출입 시 음료수를 반입하지 못하게 한 건 참 아쉬운 일이었다. 


미술관 꼭대기 한편에 카페가 마련됐지만 잘 알 수도 없었거니와 그곳에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돼버린 후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미룬 관람 기회 속에는 우리를 지치게 만든 또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그게 무엇일까.. (아래 영상을 먼저 열어보자. 기적 같은 일이 매일 아침 우리 집 건너편 옥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지만 한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LA CANZONE PIU' BELLA DEL MONDO_PER PASQUA LA MATTINA 

QUANDO VENIVA LA MATTINA MI SONO ASCOLTATO E SVEGLIATO SEMPRE PERCHE' UNA BELLA CANZONE CHE AVEVA IL MIGLIORE PRIMADONNA ED SUONA LIRICA ERA GLI ANGELI DEL PARADISO COSI BELLISSIMI, ASCOLTATEVI..! 

FIRENZE_부활의 노래 LA CANZONE PIU' BELLA DEL MONDO_PER PASQUA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르네상스를 일군 사람들 중에 메디치가의 공을 빼놓지 않는다. 메디치가의 후원이 없었으면 르네상스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뒤늦게 이탈리아어 공부에 매달리면서 그냥 넘길 뻔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여러 학자들의 네거티브적 비판에 동조하고 나선 것. 메디치가에서 유명 예술가들을 후원한 건 사실이지만, 결코 인본주의에 합당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메디치가에서 예술가를 후원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고 치밀했다. 이런 일은 비단 메디치가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대부분의 가문이 동일했다. 그들이 예술가를 후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본주의를 빙자한 신본주의의 권력(주교)에 아부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사업(권력) 때문이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는 수태고지(Annunciazione)처럼 바이블 이야기가 주제를 이루는 것. 


메디치가는 물론 이와 유사한 가문들은 이유 있는 후원을 통해 예술가들을 적절히 이용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당시에는 용의주도하게 이루어진 사업수단이 현대인들에 의해 발가벗기며 바이블의 한 인물처럼 각인되는 것. 바이블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 유다(Giuda Iscariota)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들은 유다가 예수의 볼에 입을 맞추며 자기 속내를 숨긴 것처럼 바티칸의 권력에 편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만 얄미울 똑똑한 역사는 배신자를 떠밀어 내고, 하늘이 사랑의 결실로 내 준 예술가들을 가슴에 꼭 품고 르네상스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건 아닐까. 





서두에 부활을 믿습니까.. 아니면 믿고 싶습니까? 라며 여러분들께 반문했다. 세상은 또 현실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더라. 돌덩어리 한쪽을 빵으로 철석같이 믿어도 여전히 돌인 걸 어쩌나.. 하늘이 선물한 인간의 오감으로 파악한 사실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게 관건이더라.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똑같은 물이라 할지라도 뱀이 핥으면 독이 되고 양이 마시면 젖이 된다는 것. 현상의 차이겠지만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쓰임새. 본문에 영상 하나를 준비했다. 영상을 열어보신 분들이라면 영롱하게 해맑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천상의 노래처럼 들릴 것.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자명종처럼 나를 깨운다. 


맨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 내 마음속을 크게 울리는 느낌 하나가 있었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셨던 부모님께서 뭇새로 환생한 것인가..?!) 북부 빠따고니아의 어느 봄날 아침은 지구별에 천국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며 삶에 지친 나를 꼭 보듬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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