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0. 2019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선택  

-자꾸만 뒤돌아 본 두고 온 여행지_2

우리는 보다 중요한 선택을 언제쯤 하게 되는 것일까..?


오늘 아침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요즘 주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이탈리아어 인텐시보 과정(corso intensivo italiano)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심화과정을 통해 언어를 다듬는 것. 이 과정은 오전 9시 20분부터 시작해 오후 1시면 마무리된다. 하지만 내게 매우 벅찬 일이다. 젊은 학생들과 달리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면 '괜히 시작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 물론 재밌기도 하다.


문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휘를 늘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단어를 많이 숙지해야 할 텐데 (글쎄.. 글쎄 말이다. 한 귀로 들어오는 듯싶다가 두 귀로 다 빠져나가는 걸 어쩌나..ㅜ)  언어란 모름지기 쉬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제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남몰래(?) 발버둥 치다시피 하는 것. 따라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인텐시보 과정에 매달리는 게 생활이 됐다.





오늘 아침, 내 모습이 비친 거울을 보는 듯한 나이 지긋하신 분이 노트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처음엔 무슨 다른 볼일이 있어서겠지 싶은 생각을 했지만 금세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곁에 있는 빈자리를 찾아 냉큼 앉았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기 나는 그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소개를 하고 당신의 정체 파악(?)에 나섰다. 그는 캐나다 퀘벡에서 늦깎이 학생이었다. 그저 이탈리아가 좋아서 이탈리아어를 시작했고 독학으로 2년 동안 부했다고 했다. 머리는 하얫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실례지만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그는 질문에 잠시 주춤하는 듯싶더니 이내 말문을 열고, 자기의 현재 나이는 67세이며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그의 형은 당신보다 10분 더 빨리 출생했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나 보다 손윗사람이었지만 동년배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중에 필자와 동갑내기가 있긴 하지만 학생들 중에 나 보다 손윗사람은 처음 본 것.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모두 일러바쳤더니 아내의 첫마디는 이랬다.


"와.. 대단하신 분이시네..!"  





(기억하고 계세요?) 내 브런치에 먼저 끼적거린 글 '자꾸만 뒤돌아 본 두고 온 여행지'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떠나던 날.. 동구 밖 저만치서 뒤돌아 보니 여전히 사립문 밖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그 순간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느낌이 울컥 솟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주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간다니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추억은 이게 전부였다. 당신께선 볕 좋은 어느 봄날 칠 남매를 세상에 남겨두고 77세를 일기로 먼길을 떠나셨던 것. 그리고 대략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머니에 대한 몇 안 되는 기억이 후회막급하게 만드는 것.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나로부터 일어났던 것이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때만 해도 객지에서 열심히 일하여 잘 살게 되면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선택은 연속되고, 선택을 통해 당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선택은 적게는 하루의 일이, 크게는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결과로 남게 되는 것. 인류문화사를 참조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현자 조차도 선택에 앞서 고민을 해야 했고, 한 번 잘 못 선택한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했었다.


먼저 끼적거린 글을 다시 옮겨다 놓은 이유는 다름 아니다. 부모님께 대한 효도는 특정일을 기준 삼아 행할 일이 아니라, 생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행해야 옳았던 것.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게 되면 효도를 한다?.. 당신께선 무조건 사랑하셨는데 거기에 조건을 단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가.





매우 잘못된 선택의 결과 후회 막급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하고 너무도 좋아한 여행지를 떠나
던 날, 사립문 밖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를 보는 듯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셔터를 눌렀었다. 우리는 먼 나라 힘든 여정의 여행지를 통해 가슴속에 응어리진 회한을 얼마간 보상을 받았을까. 아내는 새로운 늦깎이 학생의 선택을 두고 정말 잘한 선택이라며 자기의 일처럼 반겼다.


"정말 대단해요. 그 나이에 이탈리아로 떠날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지요!




본문에 등장하는 스펙타클한 파노라마는 PatagoniaEl chalten(Argentina)에 위치한 Fit Roy 산군(山群)의 모습이며, 맨 아래는 비에드마 호수(Lago Viedma)가 어우러진 풍경이다. 파노라마는 이곳을 떠나면서 자동차 내에서 촬영됐다. 우리는 이 명산과 풍경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자화자찬이 이런 것일까.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마치 그를 통해 우리 모습을 보는 듯했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의 시기에 대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택이란 녀석은 여러 장애 요소를 동시에 수반한다. 이렇게 하면 저게 걸리고 저렇게 해보니 이런 결과 등으로 나타나는 것.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당신에게 보다 중요한 선택은 차일피일 미룰 아니었다. 여러 선택 과제를 순서를 정해놓고, 평소에 꾸준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당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 오늘 아침 교실에 들어선 늦깎이 학생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최소한 2년 전부터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했고, 인텐시보 과정이 끝나는 대로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캠핑카로 누비게 될 것 같다. 그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 바란다. IN BOCCA AL LUPO..!!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