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지를 꿈꾸시나요?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들은 몇이나 될까..?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자운영(紫雲英)은 이맘때면 들판 가득 피곤했다. 콩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 자운영은 주로 마른논에 집단 서식한 탓에 녀석들이 꽃잎을 내놓기 시작하면 온 벌판이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융단으로 변한다. 볕이 좋은 날 나는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논둑길을 따라 융단 가운데를 걸었다. 어머니는 말투가 어눌했고 걸음을 잘 걷지 못하는 반신불수의 몸이어서 어머니를 등에 업고 논둑길을 천천히 걸었던 것.
어머니를 잠시 논둑길 옆에 모셔두고 바람을 쇠게 한 다음 표정을 살펴보니 행복해 보였으며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단 한 차례라도 어머니를 등에 업어본 기억이 없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귀히 여기며 정성껏 길러주신 어머니를 한 번 업어보는 게 그렇게 힘들었단 말인가.
다시 자운영꽃이 흐드러진 논둑길을 천천히 걷는데 어머니의 몸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거웠다.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떠나던 날.. 동구 밖 저만치서 뒤돌아 보니 여전히 싸립문 밖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그 순간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느낌이 울컥 솟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주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간다니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추억은 이게 전부였다. 당신께선 볕 좋은 어느 봄날 칠 남매를 세상에 남겨두고 77세를 일기로 먼길을 떠나셨던 것. 그리고 대략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머니에 대한 몇 안 되는 기억이 후회막급하게 만드는 것.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나로부터 일어났던 것이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때만 해도 객지에서 열심히 일하여 잘 살게 되면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본문에 등장한 풍경은 아르헨티나와 칠레 접경지역의 엘 찰텐에 위치한 피츠로이 산군(山群_Monte Fitz Roy)으로 자동차 속에서 촬영된 이미지이다. 따라서 화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내겐 너무도 소중한 장면들인 것. 아내와 나는 이곳을 두 차례나 방문했다.
지구 반대편 남미 여행을 하기 쉽지도 않지만 한 번 다녀온 곳을 다시 가 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테지만, 웬만큼 큰 감동을 안겨준 여행지라 할지라도 다시 방문하면 시큰둥해지는 것. 그런 면에서 여행지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곳이라야 할까.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청정지역 파타고니아의 엘 깔라파테(El Calafate)에서부터 벌판을 가로질러 엘 찰텐(El Chaltén)으로 향하면 마치 지남철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이 들뿐만 아니라, 먼 데서 바라보는 피츠로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활기찬 기운을 듬뿍 느끼게 만드는 것. 어쩌면 이런 이끌림 때문에 산행을 즐기는 산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산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좋아..!"
피츠로이 산행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 때인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내뱉고 마는 게 '죽어도 좋다'는 말이다. 물론 실상은 전혀 다를 것. 살아가는 동안 거의 매 순간 행복한 느낌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욕망 때문 아닐까. 그래서 아내는 수채화 전시회에서 작가노트에 이렇게 적었지 아마도..
대자연 속에서 나(我)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평원을 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차창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차에서 내려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고만 오래된 경험들..
어느 날 거울 앞에선 내 모습 속에는 그 풍경들이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얼핏 스쳐 지나간 풍경 속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꽃들과 세포를 깨우는 먼지 내음들과 바람에 흔들리던 무수한 이파리들. 그리고 밤새 평원을 달리면 은빛 가루를 쏟아붓던 달님과 여명 속에서 다가왔던 발그래한 일출 등
그때는 내 앞가림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엊그제 같았던 지천명의 세월을 지나 이순을 접어들면서, 그게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렇다고 마냥 회한만 붙들고 있기엔 내 가슴속 열정이 나를 용서치 못한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그리움의 흔적을 좇다 보니 그게 하얀 종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게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라고 발효되고 있었던 그리움이라니.. 그리움의 실체가 그토록 아름다운 색과 형체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언제인가 내가 꿈꾸던 세상이 하얀 종이 위에서 바람이 되어 별들이 마구 쏟아지던 안데스 속으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내의 작가 노트 中
자운영꽃이 흐드러진 논둑길 위에서 내가 느낀 어머니의 몸무게는 천근 같다고 했다. 당신께서 우리 남매들을 키우시느라 생애 전부인 세월의 무게를 지니셨던 것인지. 아니면 당신을 쉽게 잊지 말라는 사랑의 증표였던지,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티 없이 맑은 여행지에 발을 디디면, 마치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돌아가신 부모님을 해후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꾼 사람들은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을 것이며, 전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호기심이 가득할 것. 그 어떤 여행지를 선택하더라도 그곳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세상이거나 그렇게 느끼고 싶은 곳일 게다.
우리가 두 번 다녀온 이곳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가슴속에서 영원히 지우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처럼 행복했던 추억과 함께 미련이 두고두고 남는 것. 백발이 성성해도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은지, 돌아서는 먼발치에서 바라본 피츠로이 산군은 동구 밖에서 바라본 어머니의 잔상처럼 애잔하다. 그래서 자꾸만 뒤돌아 보며 셔터를 누른 것. 아내는 여전히 피츠로이 산행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