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인간의 몫 간섭은 하늘의 몫
누가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세월 참 빠르다. 여기서 말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은 인생의 부귀영화가 덧없이 사라짐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삶이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의 기획에 의한 연출된 것이라 할까.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쉽게 느끼지 못하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정리를 요구한다. 내가 주연으로 출연한 인생은 기획자가 조물주라거나 연출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예건데 100년을 사노라면 자기가 고민해서 작성한 시나리오에 최소한 100편의 콘티가 구체화되고, 100편의 콘티는 다시 햇수와 계절 및 하루 24시간으로 나뉠 것이다. 이때 기획. 연출은 당신의 몫이다. 즉 내가 기획자이며 연출자이고 주연으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써(만들어) 나가는 것. 희한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당신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늘 간섭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시나리오는 내가 쓰고 연출은 하늘이 한다고 말하곤 한다.
글쎄 말이다. 참 희한한 일이지.. 하지만 예외도 있다. 브런치를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들어 나가는 것. 화면을 가득 채우는 16:9 비율의 사진과 영상 등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하던 일. 현대인들은 옛날 황제가 누리던 호사를 최소한 백배 천배는 물론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기획 연출은 물론 주인공이 되는 공간에 발을 디디는 순간 저절로 행복해지며 감개무량(感慨無量)을 느끼는 것이다.
#계획은 인간의 몫 간섭은 하늘의 몫
꿈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우리는 파타고니아를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공간이동을 하기 전에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낯선 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벌어질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여러 번 반복하며 준비를 한 것이다. 또 장차 우리 앞에 다가올 여행지는 지구별에서 최고 청정지역으로 불리는 곳이므로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1박 2일 동안 태평양을 대권 비행한 후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부터 부지런히 남하를 하여 뿌에르또 몬트에 도착했다. 뿌에르또 몬뜨는 이미 한차례와 봤던 곳으로 낯익은 곳이자, 그곳에서 파타고니아 투어를 꿈꾼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뿌에르또 몬뜨에 도착하자마자 지도를 펴 놓고 한 차례 현지답사를 한 것.
현지답사는 성공적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었으며 호기심이 대폭발을 일으킨 곳. 마치 다른 별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빠따고니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소풍 전날 밤을 새운 아이들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새로운 세상 때문이었다.
"여보 일어나.. 벌써 날이 밝았네.."
숙소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오르노삐렌의 리오 네그로 강 하구가 펼쳐져 있고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 우기가 끝나가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날씨는 마치 꿈속을 연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뽀얀 안개가 안데스를 융단처럼 휘감아 네그로 강 하구까지 길게 펼쳐놓는 것.
강가를 거닐면 뽀얀 안개의 작은 알갱이가 얼굴을 간질여대며 뽀뽀를 하는 느낌이랄까. 짙은 안개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찾아와 기분 좋은 느낌 이상의 오르가슴을 느끼게 만드는 것.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우리는 그저 발품만 팔았을 뿐인데 하늘은 우리에게 기적 같은 풍경을 선물한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지를 방문해 본 여행자들은 알게 될 것. 그런 곳은 대체로 말 수를 줄이며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지 아마도.. 사랑에 열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는 것처럼, 때 묻지 않은 청정지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대자연은 이방인의 지친 가슴은 물론, 온몸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매우 부드럽게 애무를 거듭하며 황홀경에 빠뜨리는 게 아닌가.
#여행을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의 실체
그날 아침, 우리가 디딘 땅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지만) 지구별의 풍경이라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 믿었던 곳이라면, 이런 감동 혹은 감흥은 애당초 없었을 게 아닌가. 여행을 떠나기 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건 현지의 날씨였다.
그렇지만 현지의 날씨를 감안했다고 한들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풍경이 어떨지 감히 상상 조차 안 되는 것. 이런 일은 파타고니아 투어 끝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가르침 하나가 다시 한번 더 나를 일깨우곤 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 당신 속에 내재된 또 다른 나를 통해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여행을 떠난다는 건 부대끼며 사는 바쁜 일상에서 잊고 산 자아를 되찾는 과정인지, 당신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가르침 한 줄이면 절로 행복해질 것. 당신이 처한 그 어떤 환경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시선 앞에 놓인 사물 혹은 피사체가 아름답게 여겨지면, 당신이 미쳐 알지 못한 신의 동행을 느끼게 될 것. 누가 아름다움을 신의 그림자라고 한 적 있던가. 그날 아침,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은 우리 계획에 신의 간섭이 있었던 게 틀림없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