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내가 겪은 임사체험 순간

-다큐, 어느 날 내 앞에 등장한 백혈병의 실체와 극복 사례

by 내가 꿈꾸는 그곳


살아생전 겪지 않아도 될 임사체험(臨死體驗) 순간을 겪어보니 세상이 달라보인다!!



서기 2023년 4월 24일 아침나절 그동안 미루어 왔던 기록의 내용들이 부활절 전후로 점점 더 또렷이 다가왔다. 이 기록은 내가 실제 겪었던 것으로 하늘의 일과 인간의 행실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고나 할까.. 앞으로 전개될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에 관한 기록은 학계의 견해와 다를 수도 있으므로 참고바라며, 관련 내용들을 숙지해 두시면 요긴하게 쓰여질 수도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란다.



지난 해(2022년) 7월 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위치한 우리집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날 갑자기 치통이 찾아오면서 한국의 치과 주치의로부터 챙겨온 약을 먹으며 통증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었으며 윗니 한 개가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이 심하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서 유소년기 때 경험한 발치 경험을 떠 올리며 발치를 결심했다. 그동안 치과의 치료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발치 과정은 잇몸의 퉁증이 가라앉고 난 다음 발치를 진행했다. 따라서 발치 이전에 통증이 먼저 가라앉아야 했으므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복용했다. 알약은 주로 진통과 염증 및 항생제 성분이었다.

이틀 동안 꾸준히 약을 복용한 결과 통증이 멈추었다. 그 다음 하니의 화구로 준비해 둔 펜치를 들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힘껏 잡아당겼다. 사람들은 "앓던 이를 뽑아낸 것처럼 시원하다"는 표현으로 치통의 정도를 표현했을까..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난 후 통증은 사라지고 잇몸에서 피가흐르기 시작하여 준비해 둔 거즈를 물고 지혈을 기다렸다. 발치 모습을 본 하니는 평소 가끔씩 강심장이라 말하다가 "독하다!"며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하룻밤을 지났는데 거즈를 다시 바꾸어 물어야 했다. 발치를 한 곳으로부터 조금씩 흘러나온 피가 엉겨붙으면서 입안에 두꺼운 실 같은 기다란 혈액 응고가 남기 시작했다. 그 다음 발치를 하고난 다음부터 심한 몸살기운을 느꼈다.



이빨에 통증이 생긴 이후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하니는 무시로 죽을 끓였으나 한 두 숟가락 입에 댈까말까 했다. 발치를 한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대략 1주일 정도로 굶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몸살기운을 느껴 약을 먹을 때만 약 기운을 달래려 죽을 마시듯 한 게 전부였다.



몸살기운은 얼마나 극심한지 생전 처음 겪어본 것으로 속으로 "코로나에 감염됐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은 잠시 뿐이었다. 그 다음부터 벌어진 몸살 현상은 온 몸이 식은 땀에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 그녀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죽을 끓였다가 다시 버리곤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 이틀 고생하면 나아지겠지 싶은 생각으로 약을 먹으면 자리에 눕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부터 비몽사몽.. 우리가 페루에서 겪은 고산병의 원인은 고지대로 올라가면 갈수록 산소가 희박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고산 증세는 공기 중 산소 비율 자체는 1,000미터까지는 21% 정도로 일정하나, 고지대로 올라가면 점차 공기 중 산소농도가 떨어져 동맥의 혈액에 녹아든 산소가 줄어 조직에 저산소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고산증세에 대해 평소에 학습해 두어도 막상 닥치면 당신의 몸 상태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기억에도 없다.

비몽사몽 간에 나타난 증세가 고산증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을 먹고 자리에 누우면 심하게 열인 나거나 식은 땀을 흘리며 잠 속에서 깊은 꿈을 꾸고있었다. 꿈속에는 책상이 놓여있었고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서류들이 쌓인 책상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하니가 병원에 가자고 재촉했으나 나의 경험칙상 감기몸살은 이틀이면 호전되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만 더 보내면 멀쩔햐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 집 앞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그녀가 급히 내 곁으로 와서 자동차를 다른 곳으로 주차해애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 정신이 번쩍들어 집 앞에 주차해 둔 자동차 곁으로 가 보니 이미 견인차가 견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리에 누운 동안 행사장이 된 도로에서 자동차를 옮겨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래서 견인차 운전자에게 "지금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말하니 들은체 만체 출동한 견인차는 명함 한 장을 남기고 어디로가 떠났다. 그 자리에 경찰이 함께 출동해 있었다.



그런 잠시 후 견인차량주에게 전화를 했더니 "집앞 공원 앞으로 나오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전에 느끼지 못했던 증상이 몸에서 느껴졌다. 집에서부터 대략 150여 미터 남짓한 인도를 걸어가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 너무 힘든 나머지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인도 보도 블럭에 걸터앉아 쉴 수 밖애 없었다.


얼마 후 견인차 한 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에 자동차를 견인한 그 자동차였다. 그는 우리를 조수석에 태우고 자동차가 보관된 장소로 이동했는데 시내서 조금 떨어진 교외 올리브과수원 곁이었다. 견인 요금은 150유로.. (이런 덴장!)

비용을 지불하고 자동차로 돌아가는 순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어지러워 운전석 옆 바닥에 잠시 쪼구려 앉았다. 같은 시각 우리처럼 견인을 당한 한 사람이 곁으로 다가와 "괜찮으세요?"라며 물었다.


나는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켰지만 내 몸의 상태는 알 수 없었다. 하니가 곁에서 우려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불필요한 지출에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한 순간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견인차 주차장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았던 하니가 "운전 똑바로 해!.."라며 몇 번이고 소리를 지르며 경고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에 차량들이 빈번한 곳에서 중앙선을 침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겨우 차리며 속도를 줄여 겨우 집 앞에 도착해 다시 주차를 해 두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자리에 눕자마자 다시 비몽사몽.. 약을 먹고 누웠는데 식은 땀을 흘리며 잠 속에서 깊은 꿈을 꾸고있는 것이다. 꿈속에는 여전히 책상이 놓여있었고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서류들이 쌓인 책상으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곁에서 간호를 하고 있던 하니는 서서히 결심하고 있었다. 나로부터 아무런 조치가 없자 그녀가 경찰을 불러 엠블란스를 불러달라고 한 것이다. 하니가 나를 깨웠다.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면 그 길로 하늘나라로 떠났을까.. 비몽사몽간에 바깥이 소란하여 나가 보니 경찰 서너명과 엠블란스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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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누워 긴급 조치를 받고 있는 동안 발동한 기록 본능.. 왼쪽 손에는 링거용 관이 삽입되었다.


그 즉시 엠블란스 요원이 나를 안내했고 생전 처음으로 구급차 신세를 지게됐다. 하니가 동승하고 싶어했지만 '환자 외에는 탈 수 없다'고 하여 나 혼자만 구급차에 올았다. 그 즉시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바를레타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도착시간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그동안 두 명의 여성 구급요원은 나의 몸상태를 점검하며 피를 뽑는 등 온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매우 빠른 조치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계속>


Leucemia. Un episodio di tristezza_La Disfida di Barletta
Il 24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