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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9. 2023

부활의 노래, Casicma(케시크마)?

-그때 그 시절 나의 노래


돌이켜 보니 그 때가 더 착하게 살았을까.. 내게 이런 시절도 있었다!



 샛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곳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예봉산 8부 능선의 어느 골짜기의 풍경이다. 이맘때 하니와 함께 산행을 하며 자연산 두릅을 채취하기도 한 곳이며, 정상에 사면 두물머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서기 2023년 5월 18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라아 주 바를레타서 다음블로그 백업 본을 열어보고 있다. 백업한 자료를 뒤적거려 보니 꽤 오래전에 블로그에 기록했던 글들이 주인을 알아보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해 한국에 있을 때 백업을 시도해 봤지만 '시스템 오류'가 계속 발생했다. 


그래서 이탈리아로 돌아와 다시 백업을 해 보니 거의 한나절의 시간이 소요됐다. 백업량이 7.8 기가바이트로 엄청난 분량이었다. 그다음 하나씩 천천히 열어보니 사진과 영상은 백업이 안 되었지만, 블로그의 글들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새까맣게 잊고 살았던 과거의 흔적들이 이 모양 저 모습으로 내 앞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시간 <그때 그 시절 나의 노래> 편에 이렇게 썼다. 다시 이어서 쓴다. 당시에는 주로 세로 쓰기를 했으므로 어떤 글은 가로 쓰기로 대채했다. 



부활의 노래, Casicma(케시크마)?

-그때 그 시절 나의 노래



2005-12-14 07:07:28


지난가을


지난가을

훌쩍 뛰어넘어

저만치

더 멀어져 가네



2005-12-15 19:49:41

merry christmas!


금년 여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하여 사람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큼직한 행운을 얻었던 것이지요. 아무런 욕심도 없이 그저 작물이 잘 자라는 것에 대하여 행복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춘천의 한 농장에 있었다는 것은 제가 살아온 동안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윗샘밭의 여름은 그렇게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 상처는 오히려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순박한 도시 한 편의 사람들에게 불신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제가 좀 더 신중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꽁꽁 얼어서 쉬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계곡과 소양강의 물안개를 볼 수는 없지만 이 계절이 다하고 캐럴조차도 상한 마음을 드 높이지 못할지라도 나는 그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서 나의 못다 한 이야기를 할 작정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맘 속에 다시금 무지개가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2005-12-16 16:44:03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죽고 싶을 때도

기적같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진정

바라 볼 가치 하나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닌지...



2005-12-20 10:32:11

그가 곧 나(我) 이기를..


그는 이 세상에 올 때 아무런 대책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그가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한 언덕 위 형틀에서 조롱 속에 죽어갔습니다. 그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아마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우리들의 가슴은 늘 메말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도 죽고 우리도 죽는 공평한 生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가 나에게 보여준 확실한 대책은 죽음으로 가져다준 행복한 미소입니다. 이 계절에 그런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가 나의 맘속에 자리 잡기를 그가 곧 나(我) 이기를...  



2005-12-21 18:54:01

서로 아끼며.. 또 아끼며.. 또 아끼며


지구촌에 사는 우리는...

인간이라고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칭하는 우리는...

이 땅을 관리하라는 명을 받은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골백번도 더 들은 우리는...

눈만 뜨면 형제를 짓밟고 속이며 죽이며 밟고 일어서기를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 까지 반복하며 서로 반목하고 있다.

새해에는 이런 일들이 다시금 없는 평화로운 땅덩이가 되었음 싶다.

눈물 나도록 서로 사랑하며 기쁨으로 서로 아끼며.. 또 아끼며.. 또 아끼며  



2005-12-24 09:17:35

교감게시판 글입니다


오늘이 이브군요. 구름님!

긴 글로 아침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구름님이야말로 신앙인이시군요.

그렇게 공개된 게시판에 자신의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게

너무 보기 좋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신앙을 앞세워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며

또 죽이는 것을 봐 왔습니다.

다 그릇된 것이지요.

신앙이란?

사랑이 전부란 것을

저도 한참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은 모두 사악한 일들이죠.

그래서

그분은

세상에서 젤 초라하게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젤 위대했습니다.

저는 늘 그분과 동행하길 원하며

그분 또한 저랑 동행하길 원하며

제가 실족할 때마다 제게 손 내미 신 분이자.

든든한 저의 후원자 되시지요.

제가 교만할 때마다 매를 드시고

제가 슬퍼할 때마다 위로해 주시는 분

저는 그분을 너무 사랑하며

저의 모든 것입니다.

그분이 언제 태어나셨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을 언제 어떻게 아느냐가 더 중요하리라 믿습니다.

그분이 오신 날

저는 늘 감격하며 저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낼이

진심으로 세상의 굴레에 속박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는 귀한 날이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구름님과 더불어 사랑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구름님!! ^^* 메리 크리스마스! 사랑하는 우리 블로거님!~



2005-12-24 20:50:55

그가 있었음에


그가 있었음에

행복하네라!!~



2005-12-29 10:15:18

우울한 소식


지난 12월 21일 자정 무렵, 우리 블로그를 뜨겁게 달구던 허태풍의 샘밭사두농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농장의 사랑채로 쓰이던 집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 후 일가가 사용하던 집으로 번져서 목조건물 두 채가 삽시간에 전소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불은 약 10분 만에 집을 태웠는데 건조한 날씨가 손을 쓸 틈조차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화재직후 소방차가 도착하여 불을 끄긴 했으나 가재도구 전부는 이미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가족사가 담긴 앨범 일부만  잿더미 속에서 발견되었고 한밤중에 놀라 뛰쳐나오면서 걸친 내복과 점퍼 한 벌이 전부 인 채로 현재 허태풍의 어머님댁에 일가가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제가 첨 샘밭사두농장을 방문했을 때 만난 이쁜 아이들입니다. 본행이, 아행이, 선행이.. 이렇게 삼행이가 이 겨울에 건강하기를 바라며 이 아이들 뒤로 보이는 저 두 채의 집은 이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갑니다. 허태풍선생과 통화를 하면서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가슴이 아픈 것은 제가 단지 저 농장에 머문 것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이 듭니다. 정이 들대로 든 허태풍선생 내외 그리고 그 아이들... 우리네 이웃의 아픔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없군요. 이제 금년도 한 이틀 남았습니다. 이웃들의 아픔을 보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하는 따뜻한 연말연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허태풍선생! 힘내서 다시 잘해보자고!!~~ 허태풍!! 파이팅!!~~~~~



2006-01-08 09:25:12

2006,1月 1日 丙戌年太白山(태백산)-보고 싶은 어버이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제일 먼저 한 해의 삶이 풍성하기를 기원했다. 그 기원은 주로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나 조용한 곳에서 행해졌는데 자신의 맘 속에 쌓여있는 회한을 던지고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그리하여 그 희망은 한 해의 농사가 되었고 그 결실에 대하여 하늘에 다시 감사의 제사를 지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었던 때나 산 너머 이웃의 생사를 오로지 말발굽이나 인편에 의하여 소식을 알게 되었던 예전에는 모든 운명을 하늘에 걸었다. 운명을 하늘에 걸지 않아도(?) 운명은 자신의 의사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의 마음을 지켜 줄 대상을 찾게 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이 가세되었다. 인간은 처음부터 외롭고 고독한 존재였으며 하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부모의 구속을 싫어하면서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삶에도 늘 따라다니는 고독과 외로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인생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태초로부터 영원까지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를 지탱해 줄 유일한 힘이다. 인간들은 그것을 신앙으로 불렀다. 어떤 이는 나무에 어떤 이는 돌에 어떤 이는 나는 새나 육축에 어떤 이는 산이나 물에 각자의 선택에 의하여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고자 했다. 이 땅의 모든 육축과 생물과 자연들은 모두 한 곳으로 회귀하게 되는데 그것을 죽음이라 하며 죽음이 있기 전의 생을 삶이라 부르며 그  삶이 윤택해지기를 늘 기도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는 부모님이 계셨고 그 부모님이 계시던 산하를 우리는 어버이로 동일시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우리는 한 해의 농사(일)가 잘 되기를 빌었는데 그 기도는 지난해의 잘못된 관습을 버리는 일이 포함되었고 오로지 하늘( 드높은 곳 -heaven-)을 바라다보며 농경사회의 신앙을 만들었다. 하늘 저 끝에 우주를 관리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으며이 땅에 오랜 세월 버티고 있는 생물이나 무생물이 그 메신저이거나 그 메신저가 깃들었다고 믿었다. 산도 예외가 아니었다.靈山이라 불리는 산마다 사람들은 그 산을 경외시 했다. 하늘과 맞닿은 산이므로 경배하는 神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산에 오를 때나 또 하산할 때는 누구 하나 신을 본 사람이 없었다. 다만, 가슴속 깊은 곳에 불덩이처럼 이글거리고 눈보라처럼 불어 닥치는 마음들이 봄 산과 잔 물결이 되어 면경같이 스스로의 맘이 추슬러지는 기쁨을 맛보았다. 우리가 목숨 걸고 향하던 귀향길은 그 가슴 설레던 해후가 있듯이 산 또한 넉넉한 가슴으로 세파에 찌든 우리를 보듬어 주는 것이다. 만나서 기쁨을 나누고 또 나의 슬픔에 대하여 같이 슬퍼하는 산 우리 어버이가 그랬듯이 수천 년 수만 년을 우리와 함께 변함없이 살아오고 또 살아갈 이 자연... 어찌 어버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경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소풍날 밤 잠을 설치듯 새벽을 마다 하지 않고 먼 길을 마다 하지 않고 오늘도 그 넉넉한 어버이의 품에 안기고자 산을 찾는다. 그 산이 거기 그 자리에서 주목과 함께 싸리문을 열어두듯 태백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서 있다. 나는(죄송하지만) 첨으로 그 태백산을 찾았으며 그 산은 나를 힘껏 안아주었고 나는 그 품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고향이며 죽어서 돌아갈 하늘이었다.



2006-01-11 12:39:19

Casicma(케시크마)


그 녀석은

차를 탈 때마다

운전석 옆에 앉았다.

그렇게 옆좌석에 따라다닌 지 3년여

자동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 녀석은 조수석이 더 높아서

가만히 앉아있는 녀석의 발끝을 보면 너무 귀엽다.

두 다리를 곧게 펴고 앉은 다리 끝에

작은 신발이 걸쳐있는 모습이 꼭 인형을 세워둔 것 같이 이쁜 사내다.

그 녀석의 별명이 케시크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외출하러 자동차에 태워졌는데

잠시동안 음악을 틀지 못했다.

그 녀석은 오디오를 가리키며 뉴스를 듣고 있는 내게 말했다. 

" 케시크마요..." 

"...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케시크마가 무슨 말을 했나 생각했지만 알 수가 없다. 

" 케시크마가 뭐야?..." 

그 녀석은 아주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부리며 소리쳤다.  

" 케시크마요!..." 

" 너~천천히 말하든지 똑똑히 말하든지 난 못 알아듣겠어! " 

그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발 밑을 보면서 또박또박 한자씩 말했다. 

" 케.씨.크.마!! " 

그래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 너~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나한테 말 시키지 마아~?! " 

그 녀석은 그때부터 입을 삐죽이 내밀고 바닥을 쳐다보며 풀이 죽어 있었다.

한참 후 케시크마는 조그만 손으로 오디오를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 케시크마요!~ " 했다. 

 CD 넣는 곳이었다. 그때서야 그 녀석이 뭘 원하는지 알았다. 

" 아~클래식 음악~!! " 

" 그거, 맞아요! 히~^^ " 

클래식음악을 케시크마로 알고 있었다.

나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그 녀석도 좋아했다.

씨디에서 음악이 경쾌하게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케시크마에게 그때를 상기시켰다. 

" 그때는요... 내가 말을 잘 못했어요..." 

케시크마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 케시크마는 내 옆에 없다.

케시크마가 보고 싶다. 



2006-01-13 22:02:27

안개 낀 청계산淸溪山


2006년, 1월 13일 한 해도 잘 풀려 갈런지 한 겨울에 때 아닌 비가 오시더니 서울 하늘을 온통 안개로 채워 넣었다. 오리무중...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우리네 삶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청계산에 가면 낮게드리 운 산자락과 정감이 넘치는 오솔길이 잃어버린 좌표를 찾아준다. 그 오솔길을 따라서 원터골에서 매바위까지 올라가면서 본 한겨울의 안개는 仙景 그 자체였다. 평소 봐 두었던 몇 배경을 찾아서 셔터를 눌러대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은 온통 생쥐 꼴이지만 편집을 하면서 본 그림은 대 만족이다. 잔설은 눈에 녹아 질퍽였으나 아랑곳하지 않았고 빈가지에 매달린 물방울들은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수묵 담채화를 이고 있는 청계산자락.. 그 아름다운 광경을 우리님들께 보여드린다. 곧 다가오는 설날.. 풍성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울님들... 늘 복되고 귀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 



2006-01-22 12:36:31

채석포에서 만난 세희


채석포는

태안의 연포해수욕장에서 동쪽으로 1km 남짓의 거리에 있다.

쪽빛바다를 보면서 자동차 차창으로 비치는

한 겨울의 모습은 너무 평화롭다.

바다는 마치 잠을 덜 깬 듯

졸린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채석포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원흥 해수욕장이 있고

이 바닷가에서 10분 쯤되는 거리에 세희가 산다. 

세희 할아버지는

 한가한 오후 바다가 열리면(물이 빠지면)

삽자루 하나와  20L 물통 한 개를 들고

갯벌에 박힌 개불을 잡으러 간다.

자연산 굴이 즐비한 바다를 건너서 개불이 서식하는 뻘밭에서

약 두 시간 작업하면 3만 원을 번다.

할아버지는 금년 75세...

아직도 정정하시다. 

세희는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렇게 세 식구가 단출하게 산다.

아무리 둘러봐도 젊은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어촌이든 농촌이든 젊은이가 없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 노인들의 몫인데

여기에 세희가 할머니랑 부엌에서 놀다가(?)

나를 만났다. 

금년에 8살 난 세희는

그런 내가 너무도 낯설다.

날씨가 너무 화창한  오후에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연기 자욱한 부엌에서

할머니와 함께 장작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이 나이에

도무지 한가할 수 없을 지경인데

세희의 시계는 아날로그에 고정된 듯

그 표정이 너무 순진무구하다.

그 표정이 우리가 잃어버린 아날로그를 박제해 둔 듯

너무 귀 해 보여서 세희를 윽박(?) 질러서

꼼짝 못 하게 하고 몇 컷 옮겼다.

짬나는 대로 세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니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뵙기로 했다. 

세희를 부엌에 머물게 한 

매정한 세월이 밉기도 하고 

도시로 나간 세희의 엄아 아빠가 안쓰럽기도 하다.

채석포 바다는 저리도 잔잔한데..



참 희한한 일이다. 다음블로그 글을 편집하면서 시간 여행을 하고있었다. 시제가 분명히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브런치스토리도 미래에 언제인가 누군가 다시 열어보면 현재처럼 느껴질까.. 짬짬이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예봉산에서 하산하면 만나게 되는 개울물도 변함없겠지..


La mia canzone di quei tempi_Gangnam, Seoul in COREA
Il 19 Maggi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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