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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6. 2019

 다시 찾아간 여행자의 천국

-파타고니아 엘 찰텐의 이른 아침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단 말인가..?!


한 번 가기도 힘든 먼 나라 남부 파타고니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엘 찰텐 마을을 두 번씩이나 들렀다. 그것도 모자라 짬 만나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천하의 절경이 위치한 곳.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 출발한 직후 빙하의 도시 깔라파떼에 들러, 잠시 목을 축인 후 우리는 곧장 엘 찰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미 우리 가슴속에는 피츠로이(Fitz Roy)가 꿈틀거리고 있었으므로 주변의 풍광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다. 여행지에서 만난 명소들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더 찾게 되면 감동의 정도는 저만치 달아난다. 그곳은 이미 처녀성을 잃어버린 때문이랄까. 


여행지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면, 이미 절반 이상의 호기심은 물론 관심 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피츠로이를 품은 엘 찰텐(El Chalten)은 달랐다.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40번 국도를 따라 비에드마 호수(Lago viedma) 근처까지 다다르면, 저 멀리서 피츠로이 산군이 얼굴을 내밀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비에드마 호수를 끼고 길게 이어진 23번 국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지남철에 이끌리듯 환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사진첩 속에서 가장 많은 컷을 양산해 낸 곳이 엘 찰텐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게 된 피츠로이의 위용이었다. 


그곳에 가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슴에 응어리진 모든 것을 품어주며 등을 토닥거리는 알 수 없는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환청을 경험하는 동시에 물아일체의 경험까지 하게 되었다. 그건 나의 의지가 아니라 대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신비스러운 체험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엘 찰텐에 여장을 풀고 오래전에 우리를 감동시켰던 그 장소를 찾아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숙소를 떠나 우리에게 익숙했던 산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 산길은 어느덧 20년의 세월을 계수하고 있는 오래된 길이었다. 마을의 가로등 불빛을 뒤로하고 산기슭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저만치 비에드마 호수 위로 서서히 동이 터온다. 


마을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지만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이미 길을 나선 후라고 봐야 옳다. 마을에 가로등 불이 켜져 있지만 실제로는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 여행자들은 가슴에 천국으로 새겨진 엘 찰텐에 대해 낱낱이 꿰뚫고 있으므로, 이른 새벽 혹은 간밤에 길을 나서야 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헤드랜턴에 의지해 산기슭으로 오르는 한편,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 리오 데 라스 부엘따(Rio de las vuelta_굽이쳐 흐르는 강)가 보이는 언덕까지 진출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동쪽의 비에드마 호수 위로 떠오른 태양이 서쪽의 피츠로이 산군 안데스를 비추며 일대 장관의 물결을 이루는 것이다. 필설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강은 피츠로이 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산길 오른쪽에서 함께 동행하는 절경이다. 나의 아동기 때 봐 왔던 꿈의 한 장면이었다. 그땐 엘 찰텐이 아니라 알래스카의 한 계곡으로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던 꿈같은 장면이었다. 


꿈같은 장면이 현실로 바뀌게 된 건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다. 그곳을 아내와 단 둘이 두 번째 방문한 것이다. 아내는 힘들지도 않은지 저만치 앞장 서가며 리오 데 라스 부엘따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운 듯 "야호~"를 외쳤다.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월이 우리 곁을 도둑처럼 지나쳤던가..


*아래는 위키피디아에서 모셔온 리오 데 라스 부엘따의 참고 자료입니다.

Río de las Vueltas: El río de las Vueltas, también llamado río Gatica, es un curso fluvial ubicado en el departamento Lago Argentino, en el sudoeste de la provincia de Santa Cruz, en la Patagonia de la Argentina. Pertenece a la cuenca del río Santa Cruz, de vertiente atlántica. El único poblado sobre sus márgenes es la localidad de El Chaltén, en las coordenadas: 49°20'2.76"S 72°52'50.61"O. 


우리는 이곳에서 못다 한 한을 풀듯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감개무량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기록 수단이 형편없었으므로 기록 조차 마음껏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대략 15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터넷에 기반을 둔 장비들은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했다. 당장 카메라를 바꾸고 외장하드 용량을 1 테라바이트로 장착했다. 거기에 카메라 렌즈를 3종으로 장착한 후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여행 중에 몸 관리만 잘하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등에 맨 배낭 속에는 이 같은 장비와 함께 아내가 새벽에 만든 쇠고기 버거와 음료수 등이 빼곡히 들었다. 오래전에 들렀던 추억의 장소에서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도시락을 챙긴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마음이 갑자기 달라졌다. 약속한 장소에서 돌아와야 하는 여정을 어느 순간 바꾼 것이다. 아내는 기어코 피츠로이까지 가자고 우기기 시작했다. 


대략 난감했다. 만약 그렇게 계획했다면 트래킹에 필요한 식량은 물론 비상식량까지 넉넉하게 챙겨야 마땅했다. 그러나 배낭에 든 식량은 달랑 쇠고기 버거 두 개뿐.. 어쩌란 말인가. 따라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나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아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속으로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모한 짓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아내의 손을 들어주었다. <계속>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El Chalten Patagonia ARGENTIN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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