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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6. 2019

참 행복하셨겠어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세상을 뽀얗게 덮어버린 신비의 물질..


서울에 살 때 일이다. 어느 날 함박눈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펑펑 쏟아질 때가 있다. 우산을 받쳐 들었지만 함박눈을 머리에 인 우산은 금세 무거워지며 휘어진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옷이 흥건히 젖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돌아 댕긴(다닌)다. 누구의 일도 아니고 내가 그랬다. 


평소에 찜해 두었던 명소로 이동해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날은 자동차를 몰고 멀리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집에서 가까운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게 오전이든 오후든 한밤중이든 가리지 않는 것. 눈은 나이와 성별은 물론 금수저든 흙수저든 누구에게도 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은 구름 주변의 온도와 습도 등에 결정되고 다양한 형태의 눈을 만들어 낸다. 눈의 종류를 살펴보면 함박눈, 싸락눈, 가루눈, 날린 눈, 진눈깨비 등으로 불린다. 함박눈은 다수의 눈 결정이 서로 달라붙어서 눈송이를 형성해 내리는 눈으로, 영하 15도 정도의 상대적으로 따뜻한 공기에서 형성된다. 


함박눈에는 습기가 많으며, 결정의 모양은 육각형이다. 또 싸락눈은 구름으로부터 떨어지는 백색의 불투명한 얼음 알갱이로 영하 30도 이하의 찬 공기에서 만들어진다. 둥근 모양이나 깔때기 모양으로 크기는 약 2~5mm 정도다. 진눈깨비는 눈이 녹아서 비와 섞여 내리는 현상을 말하는데 비와 눈이 함께 내리는 경우의 수이다. 




눈의 종류와 결정 등에 대해서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가 됐다. 컴 앞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으면 찰나에 세상 모든 자료를 손에 쥘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의 풍경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또한 이미지 검색을 통해 컴을 열면 다양한 형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풍경을 몸소 느끼려면 강아지처럼 좋아서 날뛰지 않으면 안 된다. 눈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둔 자료를 살펴보면 아무런 감동도 없는 시대가 도래된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함박눈이 내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어디로 떠나고 싶은 충동과 설렘이 마구 이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적지 않은 생각을 해 봤다. 눈을 하얗게 머리에 인 산이나 빙하를 만났을 때, 또는 파타고니아처럼 청정한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느낀 감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세상에 빠져든 기분이 든다. 




우리들 마음이 함박눈처럼 새하얀 백지장 같다는 것이다. 그 뽀얀 백지가 세상에 굴러다니는 동안 온갖 황칠로 얼룩진 모습이 우리네 삶의 모습 같다는 것. 함박눈은 머지않아 녹아내리며 거리를 질척거리게 하고 다시 물로 변하게 된다. 극지방도 아닌 좁아터진 서울에서 함박눈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 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머지않아 저 먼 곳으로 떠날 텐데 육신은 세상에 남고 우리의 자아를 일군 영혼은 어디로 떠나게 될까. 


필시.. 온 곳이 있으면 떠날 곳이 있는 것. 어느 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아파트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속에 아름다운 장면이 포착되었다. 자동차 한 대가 주차장에 도착한 직후 두 사람을 내려놓고 다시 오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따라 서행을 했을 것이다. 그 시간이 길든 짧든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천국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눈만 바라봐도 행복한 세상인 것이다. 차디찬 겨울이 가져다준 하늘의 축복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Dopo La neve cade a larghe falde
Seoul in Repubblica di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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