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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0. 2019

내가 접수한 아드리아해의 괴물

-초대형 고동을 해체해 놓고 보니

도대체 어떤 맛일까..?!!


어제(19일, 현지시각) 오전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재래시장에 들렀다. 시내에서 볼 일을 마치고 요즘 자주 먹게 된 대파 한 단을 구입할 요량이었다. 시장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매우 활기차고 붐볐다. 요즘 나는 이런 시장의 풍경이 너무 좋아졌다. 반듯한 시내 중심가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면, 어딘가에 눈독을 들이며 바쁘게 움직이거나 식재료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아마 이들도 조금 후에 닥쳐올 행복한 미래에 대해 들뜬 것이랄까. 당신은 물론 기족들과 함께 나눌 음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 상인들 다수는 남자 사람들이지만 손님들 다수는 여자 사람들.. 대부분 중년의 여성들이 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내가 접수한 아드리아해의 괴물


그 가운데 멀리 한국에서 온 남자 사람이 끼어든 것이다. 그게 바로 나다. 그런데 대파를 사러 간 이날 나는 거대한 고동을 만나게 됐다. 갓 잡혀온 고동은 스티로폼 상자 가득 담겨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괴물이었다. 녀석의 크기는 어른들 주먹보다 조금 더 컸다. 나는 즉각 녀석들 전부를 구매했다. 


머릿속은 얼마 전에 요리했던 아드리아 해산 뿔고동 맛을 떠올린 것이다. 육질이 쫀득쫀득하고 바다향을 품은 풍미가 일품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나의 습관은 많이도 달라졌다. 처음 보는 식재료이든 어떤 식재료이든 식 재료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요리할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다. 




아드리아 해서 갓 잡혀온 괴물은 군데군데 갯벌이 묻어있었다. 녀석들은 얼마 전까지 바닷속을 느리게 기어 다니며 먹이 사냥을 했을 것이다. 그런 녀석들의 삶은 얼마나 오래되었길래 초대형으로 자랐을까. 이날 구입한 고동의 무게는 3킬로그램이나 됐다. 10개의 무게가 그 정도였으므로 한 개당 무게는 대략 300그램이나 되는 것이다.



귀가한 즉시 괴물의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요리에 앞서 생각한 건 거대한 껍질 속의 속살을 어떻게 잘 발라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보통 새끼손가락 혹은 그 보다 더 작은 고동은 통째로 삶아 핀이나 이쑤시개로 빼먹게 된다. 그러나 소라보다 월등히 덩치가 큰 녀석의 겉모습을 참조하면 다 익었을 때 속살(똥이라 부르는 내장)을 빼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초대형 고동을 해체해 놓고 보니




따라서 요리에 돌입하기 전 괴물의 껍데기를 작은 망치로 깨뜨리며 해체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자료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훗날 아니면 머지않은 날 다시 아드리아 해산 괴물을 마주치게 되면, 이날의 작업을 참고 삼아 요리를 하게 될 것이었다. 이날 해체한 고동의 수는 모두 6개였다. 


괴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녀석을 해체해 놀고 보니 속살의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었다. 녀석의 속살은 소라 혹은 전복과 마주쳤을 때와 비슷하거나 더 나아 보였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다. 따라서 머릿속은 온통 녀석을 맛있게 요리할 방법들이 마구 뒤엉키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녀석이 살고 있었던 아드리아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곳은 거의 매일 아침운동을 나설 때 만난 곳이며 단 하루도 표정을 바꾸지 않은 날이 없었다. 변화무쌍한 바다의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닷속에서 삶을 이어왔을 괴물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의 삶을 이해하면 식재료 본연의 맛을 요리에 응용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냥 고동처럼 삶아먹을 게 아니라 껍질을 상실한 녀석에게 또 다른 맛을 입혀주어야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당신의 요리 철학 등에 따라 그런 저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요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보통 이탈리아인들이 주로 사용해 왔던 방법이 아니라 나만의 독특한 리체타로 완성돼야 하는 것이다. 



해체작업이 끝난 직후 곧바로 초벌 요리에 들어갔다. 어쩌면 꽤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따라서 우선 바를레타 시장에서 내가 통째로 접수한 괴물의 속살을 먼저 정리해 두고 다음 수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를레타의 오늘 아침 날씨(20일 오전 7시 현재)는 매우 음산하고 비까지 뿌리고 있다. 


아침운동을 빼먹어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날.. 그냥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내게 그런 시간은 용납되지 않는다. 곧 괴물을 접시 위에 다시 올릴 요리에 착수하게 될 것이다. 괴물은 어떤 요리로 변신할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계속>


관련 브러치 글: 3유로로 완성한 괴물 고동의 대변신
PRENDO LE LUMACHE DEL MOSTRO
il 19 Dicembre,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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