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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8. 2019

설렘 안고 고향 찾아가는 길

-가을날 다시 찾은 요리학교

운명이 바뀌면 고향도 달라진다..!



브런치를 열자마자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 주에 위치한 렛지아 디 꼴로르노(Reggia di Colorno)의 늦가을 풍경이다. 이날 보슬비가 내렸고 짙은 안개가 늦가을 풍경을 더욱더 운치 있게 만들었다. 이곳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두고두고 잊히려야 잊힐 수 없는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다. 내 고향은 부산이지만 어느 날 결심을 실행하고 난 뒤부터 고향이 달라진 것이랄까.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게 둘 있다. 조국과 부모는 절대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나를 낳아준 조국과 부모님을 등지고, 홀홀 단신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또 너무도 뻔하게 진행되는 삶의 굴레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평생을 살아온 우리나라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것이랄까.. 



피렌체서 빠르마로




그래서 아내와 내가 선택 한 인생 후반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 같은 결심은 확고했다. 이탈리아로 떠나던 날 아껴둔 골프채 3세트를 쓰레기장에 던져버렸다. 우리에게 이같이 낡은 유물 등은 더 이상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직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버릴 게 아니라 이웃이나 친구에게 선물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부랴부랴 쓰레기장에 다시 가 봤더니 골프채 세트는 그새 사라진 것이다. 




빠르마로 가는 기차 창밖 풍경




세상은 그런 거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자살자 애용하는 물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어느 날 애물단지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내게 당연했다. 전혀 쓸모도 없는 물건을 집안에 보관하고 있어 봤자 공간이나 차지할 뿐이었다. 이미 새로운 삶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이후에는 그에 걸맞은 실천이 뒤따라야 했다. 



꼴로르노 역에서 




맨 위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그걸 말해준다고나 할까. 나는 요리학교의 꽃과 다름없는 현장 실습을 통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말이 정신없는 시간이지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같은 실정을 전혀 모르는 어느 새까만 아들 벌 후배가 어느 날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내가 겪은 요리 실습 현장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따라서 준비과정은 물론 현장실습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등에 대해 상세하 알려주었다. 내용의 핵심은 이탈리아어를 반드시 숙지하거나 비슷할 정도로 익힌 후 이탈리아로 떠나라고 주문한 것이다. 



꼴로르노 역에서 요리학교로 찾아가는 길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의 페북을 열어보고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현장실습 중에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 그가 사용하는 언어 대부분은 한국에서 최소한 대학교까지 배웠던 영어식 표현이 도배되어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아버지의 유산 일부를 통해 한국사회에 만연된 출신 증명으로 식당을 열 생각이었다. 


아마도 그는 식당을 열면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퉁해 배운 요리라며 모든 음식을 이탈리아산으로 포장할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 같은 일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청년들 다수가 그런 셈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요리는 결코 만만치 않다. 



자주 다녔던 길




요리학교에서 이탈리아 요리의 기초과정을 배웠다면 실습현장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영어로 소통을 한다? 프랑스어로? 스페인어로?.. 그건 그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또 꾸치나 내의 소통은 그렇게 느긋하지 않다. 모든 표현이 간결하다. 이를 테면 여기, 저것, 빨리, 이렇게, 저렇게.. 등등 모든 표현이 '명령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 요리 실습 현장에서 영어로 소통되는 게 아니다. 설령 셰프가 당신의 영어 솜씨를 눈치챘다고 해도, 친절하게 착하게 매우 친근하게 차근차근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초보 요리사는 감자 껍질 혹은 양파를 까거나 대파를 다듬는 등의 푸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



유난히 눈에 띈 도토리




이런 친구들의 불만은 드세다. 요리학교에서 요구하고 지명한 특정 리스또란떼가 당신을 푸대접한다며 다른 리스또란떼로 바꾸어주길 원하는 것이다. 내게 요리학교 현실을 궁금해한 어린 학생은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영어를 잘한다며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감사의 인사말은커녕 피드백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런 요리 실습현장에서 어느 날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차기 실습현장을 지명하고 그동안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등의 점검이 이루지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내가 근무하고 있던 리스또란떼의 셰프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어느덧 1차 스테이지가 끝나고 있었던 것. 나는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하며 환호를 외쳤다. 


야호오..!!



가을빛에 물든 요리학교 렛지아 디 꼴로르노




내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찾아갔던 그 장소는 내게 제2의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나의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시고 태를 묻은 곳이 안태 고향이라면, 요리학교가 위치한 빠르마의 꼴로르노는 나의 운명을 바꾼 새로운 고향이었다. 따라서 학교로부터 온 전갈에 힘입어 명절에 고향집을 찾아가듯 설렘 가득 안고 피렌체서 빠르마로 가게 된 것이다. 



나를 품어준 요리학교의 아름다운 정원




피렌체서 빠르마를 거쳐 꼴로르노를 가는 동안 내내 창밖을 주시하며 꿈같은 일을 행복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꼴로로노에 도착했을 때 가을이 저만치 물러가고 있었다. 잎을 떨구기 시작한 렛지아 디 꼴로르노 정원은 비에 젖은 채.. 객지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나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IL MIO CUORE BATTE E TORNA A CASA_COLORNO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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