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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7. 2019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한 사람

-이탈리아 요리 거장 괄띠에로 마르께지 선생을 기념하며

결심을 해야 했다..!



나의 브런치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찾아 나선 곳에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사람들은 가끔씩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딴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면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이런 가정은 누구나 한 번쯤을 가슴에 품어봤을 터. 당신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운명의 그림자는 당신의 소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난들 달랐을까.. 

어느 날 내 앞에 다가선 운명의 그림자를 바꾸어 놓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보통의 사람들처럼 보다 더 편리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참 따분한 일이었다. 최소한 지천명에 도달하는 즉시 세상이 훤히 보여 재미를 느낄 호기심 따윈 저만치 멀어지는 것. 세상은 갈수록 정형화된 이후로 판도라의 상자는 텅 빈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삶의 시간만 야금야금 축낼게 아니었다. 뭔가 다른 세상을 맛보고 죽고 싶었다.


사진은 선생께서 보다 젊으셨을 때 모습으로 요리학교에 걸려있었습니다. 아래는 선생님이 생애를 기록해 놓은 위키피디아의 글입니다. 

Gualtiero Marchesi (Milano19 marzo 1930 – Milano26 dicembre 2017) è stato un cuocogastronomo e ristoratore italiano. Viene unanimemente considerato il fondatore della nuova cucina italiana, a parere di molti lo chef italiano più noto nel mondo[1][2] e che sicuramente ha contribuito allo sviluppo della cucina italiana, ponendo la cultura culinaria italiana tra le più importanti del mondo.
Nasce a Milano da una famiglia di ristoratori di San Zenone al Po, in provincia di Pavia, grazie alla quale muove i primi passi in ambito gastronomico e nella ricerca del proprio, personale percorso culinario. Nel dopoguerra si trasferì in Svizzera, dove perfezionò la sua conoscenza frequentando, dal 1948 al 1950, la scuola alberghiera di Lucerna. Rientrato in Italia, rimase per alcuni anni nell'albergo di famiglia, per poi proseguire il suo perfezionamento a Parigi
Nel 1977 fondò il suo primo ristorante nel capoluogo lombardo, ottenendo nel 1978 il riconoscimento della stella dalla Guida Michelin, e nel 1986 ricevette, primo ristorante in Italia, il riconoscimento delle tre stelle della guida francese, passando a due dal 1997 in avanti. Al riconoscimento della Guida Michelin fece seguito il conferimento dell'onorificenza di commendatore nel 1991[3] dal presidente Francesco Cossiga.


바로 그때 내 앞에 나타난 한 인물이 이탈리아 요리 아버지로 불리는 거장 괄띠에로 마르께지 선생이었다. 인간의 운명은 질기고 모진 것이어서 쉽게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심을 해야 했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 미루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심이 서는 즉시 아내와 나는 서울의 한 이탈리아 어학원에 곧바로 등록을 했다. 


그때부터 군대생활은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행군을 했다. 장차 대가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이탈리아어로 당신의 요리 철학 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이탈리아어였다. 따라서 거의 매일 코피를 쏟아가며 이탈리아 요리 입문 과정에 돌입하고 있었다. 늦깎이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가 몸담았던 요리학교(ALMA)의 아름다운 전경입니다. 요리학교는 빠르마의 유서깊은 렛지아 디 꼴로르노 궁전을 통째로 사용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차마 잊지 못하는 곳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자 험난한 길을 자처한 것이다. 아내와 함께 결정한 일인데 아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 24시간을 통째로 언어 학습에 매달렸던 것이다. 꿈속에서도 언어 수업이 이어졌고, 모든 생각을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버릇을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 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앞에 꿈에 그리던 장면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선생께서는 이미 연세가 팔순을 넘기셨다. 그런 분이 어느 날 특강 시간에 나와 조우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내 곁에서 나의 질문에 차분히 낮은 어조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가의 요리 철학을 경청하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그때가 2016년 7월 4일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26일에 87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선생께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후 먼 길을 떠나셨던 것이다. 그런 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GUALTIERO MARCHESI_in sieme Maestro
Un film dedicato alla memoria del maestro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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