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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9. 2019

이탈리아 요리 이렇게 탄생한다

-초보 요리사의 고민

얼렁뚱땅 만들면 얼렁뚱땅을 닮은 결과가 나온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난 이후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현장 실습을 시작하면 곧 졸업시험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요리학교 졸업은 현장실습에서 부여된 점수와 함께 자기가 직접 만든 요리를 선보여야 한다. 현장 실습에서 부여된 점수는 학생이 일하는 리스또란떼의 셰프가 점수를 매긴다. 출석 평가와 업무에 임하는 태도 및 꾸치나 내에서 일어나는 소통(언어) 등을 셰프가 체크리스트에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두 차례 이상 시행되는 현장 실습을 통해서 그동안 배운 요리 실력을 접시에 담아 졸업작품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다. 졸업 작품은 이탈리아 전국에서 차출된 유명 리스또란떼의 셰프들이 심사를 하게 된다. 보통 쁘리미와 세콘도 및 돌치의 세 작품을 제한된 시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절차가 쉬운 것 같아도 결코 만만치 않다. 현장실습만 해도 빠듯한 일정이고 매우 피곤한 일의 연속이다. 



현장실습 기간 동안 가끔씩 빠우자(잠시 쉬는 시간)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에는 밀린 잠을 자거나 볼 일을 보게 된다. 또 같은 조건이라 할지라도 젊은 학생들(청춘)은 최소한 체력적으로 더 나을 것이므로 현장실습은 견딜만했을까.. 


관련 브런치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현장실습의 관건은 소통수단이다. 꾸치나 내에서 동료 요리사들과 소통은 물론 셰프와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상대의 표현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과정(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학생이 귀국을 하여, 친구들 혹은 지인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모를까 한마디로 쪽팔림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요리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온 한 친구가 리스또란떼에서 감자나 양파 등 야채만 손질하고, 이탈리아 요리를 눈팅만 하고 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꾸치나 내에서 말이 안 통하면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이나 놀림감이 되고 셰프 조차 손짓 발짓으로 일을 시키게 된다. 


사정이 대략 이러하므로 당사자는 그때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고민의 깊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어서 현장실습을 끝마치면 반쪽이 되고 만다.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이다. 또 어떤 학생은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학교와 상의한 다음 중도 포기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생겼다. 언어 때문이다. 내가 요리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죽자살자 이탈리아어에 매달린 것도 이 때문이며, 오랜 외국 생활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었다. 



언어를 모르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나의 현장실습은 소통 부재는 겨우 면한 상태여서 매우 활기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몇 번의 실수도 있었지만 소통이 잘 되면서부터 동료들은 물론 셰프와 장난까지 칠 정도로 매우 친근해졌다. 그때부터 내 앞에는 일감이 넘쳐났고 동료들은 물론 셰프의 신임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셰프 옆에서 셰프의 일을 돕는 데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내 몸에는 작은 녹음기의 이어폰이 장착되어있었다.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어 듣기 연습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이 같은 일은 반복되었고 잠을 잘 때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들었다. 이런 습관이 계속되면서 무슨 일이든 이탈리아어로 말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래 봤자 초보의 수준이었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런 내 앞에 숙제가 생긴 것이다. 졸업시험이 코 앞에 다가오면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졸업시험에 출품할 요리를 내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배웠던 기초과정은 물론 리스또란떼의 현장 실습 경험을 바탕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빌딩을 건축하듯 설계가 필요했다. 요리 제목에 걸맞은 식재료의 선택과 가공 방법 등을 먼저 그림으로 그려봐야 했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을 나름대로 끝마치고 나면 셰프에게 먼저 시연을 해봐야 했다. 내가 만든 요리의 배경은 물론 리체타를 이탈리아어로 설명을 해야 하는 것. 


이 같은 일은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의 노련한 셰프 앞에서 시연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나의 창작이었다. 셰프는 놀라워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가지고 다닌 노트 중 맨 처음 등장한 사진(용케도 남아있었다)이 그중 하나이다. 토스카나 주에서 만난 풍경을 소재로 돌치를 완성한 것이다. 


위 사진들은 학생들이 졸업시험에 출품한 작품들이다.


이 같은 과정을 극복한 내게 학점은 푸짐했다. 100점 만점에 97점을 획득한 것이다. 말 그대로 에이뿔(A+)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식재료만 봐도 머릿속에서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 요리가 술술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절차가 생략되고 얼렁뚱땅 특정 셰프가 일러준 리체타를 응용하거나 남의 리체타를 베끼면 보기는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졸업시험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게 될 건 자명하다. 이탈리아 요리에 도전하기에 앞서 먼저 언어를 습득하는 게 급선무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아래 동영상은 조금 뻥 튀기면 1000번은 더 들었을 내용이다. 1500 단어로 이루어진 영상의 내용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 이탈리아어가 보다 쉬워질 것 같다. 참고 하시라.

LA STORIA DELLA CUCINA ITALIANA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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