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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7. 2020

달콤한 젤라또로 변한 아팟던 바다

-오랜 추억 되살린 풍경 하나 

한 척의 선박이 이끌림을 당하고 있는 풍경..!


한 때 중국을 통째로 잡아먹기(?) 위해 사업차 중국을 드나들었다. 표지 사진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중국의  단동으로 가는 여객선 동방명주호 위에서 촬영된 오래된 사진이다. 이곳은 북한의 신의주 앞바다의 겨울 풍경이며, 나를 태운 배는 곧 단동항에 도착할 것이다. 연안부두를 출발한 배가 단동항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특별한 장면을 선물해 준 것이다. 


바다가 소르베로 변한 처음 보는 풍경이 목격된 것이다. 겨울에 언 바다는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리아오닝청 단동 앞바다에서도 바다가 어는 것이다. 동방명주호가 바다 물살을 가르자 소르베 위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 




주지하다시피 소르베((sorbet, 혹은 샤베트, 소르베또 등)는 과일즙에 설탕, 전유, 탈지유, 연유, 분유 등을 배합해 만드는 빙과류 일종이다. 과일의 향미를 풍기며 잘게 간  얼음으로 만든다.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하고 빨대로 빨아먹기도 한다. 



젤라또 (Gelato, 혹은 아이스크림) 보다 덜 부드럽지만 입안에서 느끼는 촉감은 젤라또와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여름철 간식이다. 더위를 잠시 잊게 해 주는가 하면 별미를 선물해 주는 것이다. 어릴 때 많이 먹어본 간식이었다.


나를 태운 배가 단동에 가까워 오자 바다 위는 살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장관을 연출했다.


지금은 냉장고가 세계인의 필수품이지만, 소르베가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면 예전에는 대단한 간식이 서빙고에 저장되어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소르베를 여름에 즐겨먹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었으므로 겨울에 얼음을 채집하여 서빙고에 얼음을 저장했다. 



겨울에 채집한 얼음을 오래 보관해줄 서빙고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따리서 값어치가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권력자나 귀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일화에 따르면 오스만의 한 장군이 여름에 벌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귀환하자, 왕이 온갖 재물을 선물하며 치하했는데 그 자리에 소르베가 있었다. 



소르베로 변한 바다




왕은 장군에게 더운데 고생했으므로 소르베를 특별히 하사했다는 것이다. 소르베를 받은 장군은 그 즉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름에 이런 얼음을 먹어봤사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라며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요즘 생각하면 마치 코미디 같은 장면이 당시에는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랄까..



그런 소르베가 요즘 세상에서는 냉동기술에 힘입어 너나 나나 소르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전국적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게 젤라또이다. 소르베의 명성은 박물관에서 조차 찾을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 소르베를 닮은 얼음조각이 북한의 신의주 앞바다 위에서 목격된 것이다.




달콤한 젤라또로 변한 아팟던 바다


단동으로 향하는 동방명주호 갑판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신비로웠다. 세상 전부를 박제해 둔 듯한 그 바다 위에 내가 서 있었다. 사노라면 본의 아니게 당신을 얼어붙게 만드는 힘든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습관적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오래전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이 항해를 끝으로 귀국하자마자 은사님이 챙겨주신 중국 땅을 두 번 다시 뒤돌아 보지 않았다. 그토록 갈망한 땅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소르베처럼 얼어붙게 만든 땅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땐 아팟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몸과 마음을 차갑고 쓰리게 만들었던 소르베가 달콤한 젤라또로 변한 것이다. 너무 오래되고 낡은 추억이 서린 바다였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IL MIO VIAGGIO SOLO CINA_DANDONG
il 07 Gaennaio 2020,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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