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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4. 2020

내가 만난 건강 장수 비결 두 가지

-하늘의 선물 올리브를 찾아 나서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살고 싶은 건 인간들의 오래된 욕망..!!



정든 도시 피렌체를 등지고 낯선 도시 바를레타로 가는 길


서기 2019년 8월 12일, 꿈에도 그린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와 이별하는 시간을 맞이했다. 착잡했다. 이별이라는 단어가 주는 슬픔이 교차되기도 한 시간들.. 나는 그 전날 내 가슴에 품었던 피렌체에 대한 사랑과 헤어지는 송별식을 하고 있었다. 피렌체를 천천히 돌아보며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애인과 작별을 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련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 삶 전부를 보내야 할지도 모를 낯선 도시로 가기 위해 큼직한 가방 여러 곳에 짐을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살았던 집안 청소를 깨끗이 마무리 한 다음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행 기차표를 끊은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도시였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했지만) 이 낯선 도시로 거주지를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그림 수업 때문이었다. 피렌체의 재래시장 곁에서 만난 한 아티스트를 통해 우리의 삶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던 것이랄까. 아내가 그의 화풍을 좋아했으므로 대략 열흘 이상의 시간을 통해 현지답사를 마친 곳이기도 했다. 



기차 창 밖의 풍경에 한눈팔다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가기 위해서는 대략 10시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부터 바를레타로 이어지는 기차 노선이 그랬다. 이날 내가 끊은 기차표는 평소와 달리 볼로냐를 들르지 않고 퐈엔사를 가로질러 바를레타로 가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이 코스는 아드리아해를 왼쪽으로 끼고 이동하는 것이므로 여행 내내 바다가 기차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그런 풍경이 자취를 감출 때쯤이면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좌석에 앉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리를 이탈해 기차의 연결 고리가 있는 바깥으로 나가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오가며 창밖 풍경을 기록에 남긴 것이다..



창밖의 풍경이 너무 궁금했다. 겉으로 보기엔 몇 안 되는 작물들이 풍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풍부한 작물들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언제부터 누구의 식탁에 안겨줄 것인지.. 그런가 하면 이 작물들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혜택을 부여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궁금증은 바를레타에 새로이 둥지를 튼 다음 나의 호기심을 단박에 충족시켜 주었다.



하늘의 선물 올리브를 찾아 나서다




바를레타에 짐을 풀고 새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관심 중 하나는 피렌체서 떠나올 때 기차 창 밖으로 보였던 풍경이었다. 당시 나의 기록 속에 드러난 비옥한 토지 속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의 작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로 수도 없이 만나고 봐 온 이 식물의 이름은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였다. 


그러니까 창밖으로 보였던 풍경들은 포도원과 올리브 과수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 날 배낭에 도시락까지 챙겨서 발품을 팔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때가 지난해 10월 6일이었다. 이날 나는 신들린 것처럼 올리브 숲 속으로 빠져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올리브 나무는 상록수로 일 년 내내 푸른 잎사귀를 내놓는다. 자료에 따르면 나무의 키가 10미터 정도이며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또 재배하는데 큰 일손을 필요치 않은 식물이다. 바를레타에서 만난 지인의 과수원만 봐도 그러했다. 어쩌다 들러 풀이나 뽑아주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올리브 과수원이 위치한 곳은 어림잡아 수 킬로미터 이상의 거리였으므로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이 위치한 바를레타 중심에서 서쪽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진입하자 말자 눈에 띄는 게 올리브 나무였다. 



올리브 농사와 수확은 이렇게


이때가 10월이었으므로 곧 올리브를 수확하는 철이었다. 올리브 열매는 꽃을 피은 후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나중에는 검은색을 띠며 익게 된다. 열매는 대략 5~6월쯤에 여문 후 9월이면 완전히 익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0월이 다가오면 수확기에 접어드는 것이다. 


수확은 나무 밑에 넓은 돗자리를 깔고 막대로 가지를 쳐서 열매를 떨구거나, 가지를 붙들고 훑어내리는 것이다. 요즘은 주로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열매가 상처를 입히지 않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올리브 과수원으로 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가끔씩 드나드는 자동차가 전부였다. 



그리고 길 양쪽으로 포도원과 올리브 과수원이 기다랗게 줄지어 있었다. 포도원은 이미 수확이 끝난 상태였는데 아직도 그곳에는 미처 수확하지 못한 등급 이하의 포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임자도 없는(?) 포도 한 송이를 따 입에 넣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이 포도는 그냥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또 길 양옆에는 포도즙을 짜고 버린 찌꺼기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아울러 생활쓰레기가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누군가 인적이 드문 곳에 함부로 내다 버린 흔적이었다. 세계인의 나쁜 습성이 이곳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것 외에 올리브 과수원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은 뷰파인더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열매가 얼마나 탐스럽고 아름다운지 모를 지경이어서, 가던 걸음을 자꾸만 멈추며 나무 곁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이탈리아 남부 혹은 지중해 주변에서 일어났던 서양사가 훤히 보였다. 지중해 주변의 척박한 땅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비옥한 이 땅을 두고 사람들이 눈독을 들일만 했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이 땅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싸움이 기록됐던 것이다. 


이런 기록들은 통일 이탈리아가 생기기 전까지 계속되었으며 바를레타도 그랬다. 또 이 같은 역사 이전에 생긴 기록을 살펴보면 포도와 올리브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올리브 나무의 원산지는 터어키로 알려졌으며,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사작한 작물이었다. 



바이블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올리브유




이 같은 기록은 바이블을 빛낸 신비로운 열매가 올리브 나무로부터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앙인이 아니라도 한 번쯤 접해봤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속에는 올리브유에 대해 상세히 언급돼 있다. 신명기(28.40)에 언급된 이 나무는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는 특정 지역뿐만 아니라 '성서의 땅' 곳곳에서 재배돠고 있었다. 


가나안 땅은 올리브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지였다. 올리브는 밀을 비롯한 곡식과 포도와 함께 가나안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주요 농산물(신명기 11,15 열왕기 18,32 예래미아서 40,10)이었던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란다. 세계로 수출되는 올리브의 주산지가 주로 지중해 주변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의 기후는 여름이 건기이며 겨울이 우기여서, 우리나라의 날씨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요즘 나의 브런치에 쓴 기록들을 보면 주로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올리브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틀 전 브런치 이웃(@꽃뜰 ) 한 분이 올리브유의 쓰임새 등에 대해 문의를 해 온 것이다. 이 포스트는 이웃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잠자던 기록을 깨운 것이다.


 

올리브유는 바이블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낯익은 열매이며 기름일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는 가뭄이 들었을 때 하늘에 기도한 끝에 시돈의 사르밧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 살던 한 과부는 식량도 떨어졌고 기름도 떨어졌다. 그래서 빵 한 조각을 청하는 나그네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1 열왕기 17:12)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지중해 주변에 가뭄과 기근이 든 것을 알 수 있다. 한 과부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과부 또한 결심을 해야 했다. 이걸 엘리야에게 건네든지 아들과 나누어 먹고 죽던지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이걸 알아차린 엘리야는 이렇게 말했다.


"...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7:14)"



그 기름이 올리브유였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기록을 믿건 안 믿건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기록은 이랬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17:15-16)”




내게 나타난 신체적 변화


바이블 내용 일부를 인용한 것은 올리브유의 쓰임새와 당시의 문화를 참고하기 위함이었다. 또 이탈리아 요리를 연구하려면 이 같은 자료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않겠는가. 따라서 나는 바를레타로 이사를 온 후로부터 식습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무슨 음식이든 요리를 할 때 신의 선물로 일컫는 올리브유와 함께 포도주를 양껏 마음껏 먹고 마시고 있는 것이다. 내 생애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불과 5개월 만에 내게 일어난 신체적 변화는 눈에 띌 정도로 달라지게 됐다. 내 몸을 상대로 임상실험에 착수한 결과였다. 매일 걷기 운동과 함께 한 식생활로 하반신은 청춘들 못지않게 탄탄하고 굵어졌으며, 누우면 쏙 들어가던 뱃살에 탄력이 붙었다. 그런가 하면 팔자주름이 생기던 볼에 살이 올라 통통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브런치 글쓰기도 왕성해진 것이랄까. 



이 같은 과정을 다시 바이블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착한 사마리아인을 비유한 내용에 따르면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는다는 말(루가 10, 34)이 있다. 술은 상처를 치료하고 기름은 아픔을 녹이는 역할(이사야 1,6)을 하는 것이다. 올리브유는 단순한 의약품의 역할을 넘어 환자에게 베푸는 하늘의 도움의 상징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수의 제자들은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자를 고친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바이블 속에는 올리브유와 관련된 기록이 무수히도 많이 있다. 이 같은 기록 등에 힘입어 이탈리아인들은 세계 최고의 건강 장수를 누리는 나라도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기적의 식품이 두 가지로 압축된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식품에는 우리 인체에 필요한 5대 영양소를 무시로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올리브유의 효능은 검색만으로 단박에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우리 인체를 괴롭히는 여러 증상을 개선하거나 치료하는 놀라운 효능을 지닌 것이다. 



어느 날 한 아티스트를 만나 바를레타로 이사를 떠나면서 전혀 뜻밖의 선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나는 반나절 이상을 올리브 과수원에서 보내게 됐다. 이만 돌아설까 싶다가도 올리브 열매와 고목으로 변한 나무를 보면 자꾸만 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약속의 땅이자 세상의 보물이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곳곳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피렌체를 떠나 바를레타로 길게 이어지는 풍경을 가슴에 담지 않았다면, 신의 선물은 아직도 내 주변만 맴돌고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행운이었다.



FRUTTETO DI OLIVO IN PUGLIA
l'anno scorso Ottobre,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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