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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7. 2020

언제 오셨어요

-나의 작은 고해성사

시간은 웰케 빨리 가는 거야..!!


사진은 바를레타 시내 중심의 모습으로 까니발레 축제가 열리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좌측의 동상은 에라크리오(Eraclio (Arè nel dialetto locale))로 부르는 거상으로 바를레타의 수호신으로 부른다. 사람들에게 가린 발 아래 신발을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속설 때문에 반들거린다.


오늘(26일 현지시각) 오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시내 중심에서는 까르네발레(Carnevale_사육제)가 한창이었다. 이탈리아어로 까르네발레(carnevale)는 "육식을 금한다(謝肉)"라는 뜻이다. 어원은 까르네(carne _고기, 살)와 레바레(levare_없애다, 탈하다)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이 단어로부터 프랑스어 carnaval, 에스파냐어 carnaval, 영어 carnival, 독일어 Karneval 등이 생겼다는 것. 


*영상은 '2020 바를레타 까르네발레' 축제 현장의 모습을 담았다.



가톨릭의 종교적 행사가 사람들을 축제의 현장으로 내몬 것이다. 사육제(謝肉祭)란 엄격히 말하면 주현절(1월 6)부터 기름진 화요일(참회의 화요일, Mardi gras)까지의 기간을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미가 약간 변화하여, 기간 자체보다는 이 기간 동안 열리는 다양한 행사를 뜻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재밌는 것은 이 축제가 시작된 배경이다. 



금육과 사육의 절제 기간인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마음껏 신나게 놀고먹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까니발레 현장은 너무 귀여웠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축제이자 코스프레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의 의상이나 마스코트를 흉내 내고 뽐내고 있는 것이다. 



또 온 가족이 당신의 아들 딸을 위해 기꺼이 축하를 해 주는 모습이 눈에 도드라졌다. 도시는 온통 인조 꽃가루 투성이었다. 엊그제 성탄절이고 주현절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잠시 후, 축제가 한창인 도심을 떠나 바닷가로 향했다. 



그곳은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후 아침운동을 하던 코스였다. 그동안 방파제를 주로 탐하였으므로 궁금했다. 그런데 바닷가에 도착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곳에서 샛노란 풀꽃으로 단장한 봄처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의 신부 봄처녀여 언제 오셨나요..!!) 



나는 까르네발레 현장에서부터 줄곧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축제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유년기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유년기와 이곳 아이들의 모습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동안 세월도 많이 흐르고 세상도 변했지만, 우리와 너무 다른 문화를 비교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씩 웃고 있었다. 꽃가루를 뿌리며 좋아하고 있는 저맘때를 지나면 곧 입학을 할 텐데 공부하기 싫었던 나의 작은 고해성사를 생각해낸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공부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몇 안되었지만,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도 몇 안됐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이런 결과는 통지표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를 때까지 나의 통지표는 화려했다. 여간 화려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는 것이다. 놀다 보면 어느 땐가 정신이 번쩍 든다. (시간은 웰케 빨리 가는 거야..!!) 그리고 시험이 다가오면 벼락치기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통지표는 화려했을 망정 남들이 다닌 코스는 용케도 잘 찾아다녔던 것이다. 시방..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것까지도 신기한 거 아닌 감..! 기적이다.




그래도 벼락치기 공부는 봐줄만하다. 방학이 오면 바빠진다. 방학이 오기도 전에 일정이 빡빡하게 짜이는 것이다. 그때 가장 큰 문제의 숙제가 일기였다. 공부는 벼락치기로 할 수 있을 망정 일기는 벼락치기가 될 수가 없는 것. 따라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정을 기획(?)하는 한편, 방학기간 동안의 일기를 미리 써 놓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글쎄, 그게 제대로 잘 될 리가 있겠는가..ㅋ 



놀기 바쁜 넘에게 시간은 웰케 빨리 지나가는지 금방 개학날이 다가오는 거 있지..! 어느 날 바닷가에 들렀더니 불순하게도 그때 일이 생각났다. 너무 빨리 찾아온 봄처녀.. 나의 신부 봄처녀여 언제 오셨나요..!!


LA SPIAGGIA DELLA BARLETTA  PUGLIA
il 26 Gennai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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