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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5. 2020

그 바다에 맛조개가 산다

-아드리아해의 노인과 개펄

갑자기 바다가 달라졌다..!



바다가 속을 내보인 것이다. 가끔씩 차려입던 속이 훤히 비치는 실크 캐미솔을 내던져 버린 것이다. 아침운동을 나선 나를 유혹한 바다.. 그 바다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틀 전 평소처럼 바닷가로 나갔다. 자료사진 오른편에 위치한 기다란 방파제를 돌아오는 코스가 내가 즐기는 운동코스이다. 



이 코스를 따라나서면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 내항과  오른쪽의 방파제 너머로 아드리아해의 변화무쌍한 바다가 나를 반긴다. 어떤 때는 반기는 게 아니라 저만치 물러서라며 앙칼지게 나를 떠밀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빨리 안아달라고 졸라대며 칭얼거린다. 성난 바다.. 얌전한 바다.. 바다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사람을 쏙 빼닮았다. 



그런 바다가 어느 날 아침 평소 답지 않게 아예 캐미솔 조차 걸치지 않은 채 속을 훤히 내보인 것이다. 바를레타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 만난 흥분되는 광경이었다. 썰물이 최고조에 이른 간조(干潮)의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한 사리 때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가 저만치 물러서며 갯벌이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봐 왔던 개펄이 아드리아해 연안에 펼쳐진 것이다. 불현듯 우리나의 개펄과 어릴 적 추억이 스쳐 지나가면서 개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내 고향은 부산.. 부산은 항구도시일 뿐만 아니라 빼어난 산을 등에 업고 있고 옆구리에는 기나긴 낙동강을 끼고 있는 도시다. 



뿐만 아니라 드넓은 낙동강 하구까지 갖춘 최고의 자연경관을 갖춘 천혜의 도시였다. 지금은 난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부산 앞바다 혹은 낙동강 하구는 나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 풍경들을 닮은 바다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개펄 위를 맨발로 서성이는 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봉지를 들고 개펄 위에서 무언가를 채집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개펄에 다가가 바다가 내민 속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곳 개펄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뻘이 적은 대신 모래가 더 많은 개펄이었다. 따라서 운동화를 벗지 않고도 개펄 위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서남해 혹은 강화의 개펄은 뻘이 무릎 위까지 차 올라 '죽음의 늪'을 생각할 정도지만 이곳은 달랐다. 한 노인은 맨발로 개펄 위를 오랫동안 서상이며 뭔가를 채집하고 있었는데 그는 개펄 위에서 카메라를 만지작이는 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노인: 어디서 오셨어요?

나: 한국의 서울요.

노인: 사진 찍으러 오셨나요?

나: 제 취미가 사진 찍는 겁니다.




노인은 묻지도 않은 말을 내게 건넸다.


노인: 나 지금 조개 줍고 있어요.(웃으며)

나: 그렇군요.(시크 시크)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다의 개펄에 당연히 조개가 살겠지 싶은 생각들.. 그런데 잠시 후 노인은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이 채집한 것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한 두 번 흘려듣다가 노인과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채집한 조개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좋아라 하고 봉지를 열어보였다. 나는 그제야 이곳에서 맛조개가 서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자랑스러워하며 봉지를 들추어 맛조개를 꺼내 보이고 기념촬영을 허락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바를레타에서 바다의 이 같은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고 노인이 물 때를 잘 맞추어 나온 것으로 미루어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곳의 토박이가 틀림없었다. 바다의 물때(조석)를 안다는 건 일반인들이 학습해도 금방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당신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곳이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다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들이나 낚시꾼들에게 물때만큼 중요한 게 없다. 어릴 때 바닷가나 강가로 놀러 다녔을 때도 어른들로부터 학습한 물때를 확인 후 다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노인의 모습이 그러한 것 같았다. 물때를 알아야 바닷물이 저만치 빠져나가 광활한 개펄을 드러내면 조개며 낚지 등 해산물을 채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때를 다시 한번 더 복습하면 이러하다.



주지하다시피 바다는 물이 불어서 해안선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또 한 번 물이 들어왔다가 다시 한 반 나간다. 하룻만에 생기는 일이다. 이 같은 일은 대략 여섯 시간 간격으로 벌어진다. 옛사람들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들물' 혹은 '물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온다 하여 '밀물'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물이 나간다'거나 '물이 썬다'고 해서 '날물' 혹은 '썰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밀물과 들물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들었다가, 두 번 물이 나가는 것이다. 물이 최고로 많이 들어왔을 때가 만조라 부르고, 가장 많이 나갔을 때를 간조로 부른다. 이 같은 차이를 '조수 간만의 차'라고 학습한 바 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보다 유독 서해안이 이 간만의 차가 극심하다. 물때는 음력 기준으로 대략 15일 만에 다시 반복되곤 한다. 



만조에서 간조를 거쳐 다시 만조가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시간(정확히 11시간 20분 정도) 주기로 한 바퀴 돌게 된다. 즉 조금에서 사리를 거치면서 다시 조금에 이르기까지 걸리는데 15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은 1물, 2물, 3물, 4물, 5물, 6물, 7물(사리), 8물, 9물, 10물, 11물, 12물, 13물, 14물, 15물(조금)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주기를 선조님들께선 한물, 두메, 무릎 사리, 배꼽 사리, 가슴 사리, 턱 사리, 한사리, 목사리, 어깨 사리, 허리 사리, 한 꺾기, 두꺽기, 선조금, 앉은조금, 한조금으로 불렀다. 참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물 두메로 다시 이어지는 게 바다의 살아있는 변화무쌍한 모습이다. 


이런 바다가 매일같이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물때에 따라 서기 2020년 1월 25일(음력) 아침이면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 설날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다. 텅 빈 바다 열린 세상에서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



DISTESA FANGOSA E UN UOMO ANZIANO
il 22 Gennaio 2020,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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