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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8. 2020

진공상태로 변한 아드리아해

-잠옷 차림으로 침입한 집주인 여자

살다 보면 별 희한한 일을 다 겪는 법이지..!!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항구 풍경이다. 저만치 등대가 서 있는 좌측으로 커다란 상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 시설이 돼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는 작은 보트들과 어선들이 아무렇게나 닻을 내리고 쉽을 얻는 곳. 멀리 수평선에는 아침운동 코스인 방파제가 보인다. 



이틀 전, 나는 바를레타 내항을 서성거렸다. 조금 전에는 먼저 걷던 운동코스를 둘러보고 이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날 바다는 해무가 잔뜩 끼어있어서 맑은 바다와 하늘을 구경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내 앞에는 진공상태로 변한 진귀한 풍경이 펼져지고 있었다. 



흔한 듯 흔치 않은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뷰파인더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람은 겨우 한 점 밖에 없어서인지.. 바다는 매끈한 면경을 닮아 물 위에 떠있는 보트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세상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길냥이들 조차 졸고 자빠진 곳. 


바를레타 내항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난 꿈같은 현실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진공상태처럼 변한 무의식 상태의 잠결에 어떤 여인이 속이 훤히 비치는 잠옷 차림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꾸며낸 소설이 아니라 실화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한 5년 만의 외출이 단편이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언어 학습은 물론 준비과정은 매일 쌍코피가 터질 정도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수를 하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찬물이든 더운물이든 세면대 앞에 서서 세수를 할라치면 코피가 주르륵 흐르는 것이다. 그 즉시 휴지를 돌돌 말아 콧구멍 깊숙이 꽂아 넣으면 그때부터 목젖으로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그런 잠시 후 코피는 멎고 아침상 앞에 앉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에도 내 손에는 문법책과 단어장이 들려있었고, 진공관 앰프 스피커에서는 이탈리아어가 쉼 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집에서부터 교대역 근처 어학원까지 가는 시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들르지 않았다. 집 근처 공원에 들러 이탈리아어 문장을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집에 도착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복습과 예습이 끝나면 잠들 때까지 언어 수업은 이어졌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는 이어폰을 낀 채 잠들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므로 의식 무의식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수업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낮에 만났던 일과들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번역되고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최소한 1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했다. 남의 나라의 문화를 습득하려면 언어는 기본이었므로 죽기 살기로 덤벼든 것이다. 이런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 건 아내와 나의 운명을 바꾸어 보기 위한 절차였다. 죽기 전에 10년만 잘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며, 따분하고 무료한 한국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실천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 입국하여 요리학교를 다니면서도 언어 학습의 끈은 놓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가를 만났을 때 당신의 요리 철학 등을 물을 때 이탈리아어를 사용한 것이다. 끊임없이 내 앞에는 이탈리아어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현장 실습을 할 당시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피렌체의 오래된 한 리스또란떼를 지명받고 그곳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말이 좋아 바쁜 시간이지 현장 실습은 여간 만만치 않았다. 군대생활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든 과정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맨 먼저 피렌체에 입성한 이후로 방을 얻어야 했다. 




대체로 리스또란떼는 요리사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는 숙소가 없어서 따로 방을 얻어야 했다. 따라서 잠시 민박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동안 부동산 사무실을 통해 방을 구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쉬는 시간을 쪼개어 방을 얻은 곳은 피렌체의 뽀르따 로마나(Porta Romana)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리스또란떼까지 걸리는 시간은 15분에서 20분 정도였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정거장까지 가는 거리는 5분이면 족한 곳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지역에 방을 얻게 된 것이다.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은 오래된 건물의 3층(우리나라의 4층에 해당)이었다. 처음 본 집주인 마르게리따(가명)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중년의 세련미가 돋보이는 여성이었다. 마리게리따가 살고 있는 집은 큰 방 하나와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거실 옆에 위치한 작은 방이 내가 묵을 방이었다. 그러니까 집 한 채에 합숙을 하는 구조였다.



거실에는 액자에 든 사진들이 이곳저곳에 걸려있었고, 사진 가운데 마르게리따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보였다. 미모의 한 여성은 옷을 잘 차려입고 무대 위를 오가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모델 출신이었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면 그녀가 걸친 옷이 여간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시련이 닥친 것이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남편과 이혼을 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내가 묵고 있는 방에는 책상과 옷장과 집기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벽에는 50호 이상의 커다란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짐작컨데 그녀의 남편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보였다. 당신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빼곡한 가운데 나는 침대 하나가 달린 방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묵는 방은 고풍스러운 커튼이 기다랗게 드리워진 곳으로, 방을 드나들 때 커튼을 젖히고 방문을 열어야 하는 구조였다. 잠금장치도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삐에몬떼 주로 일터를 옮길 때까지 묵게 되었는데 어느 날 깜짝 놀랄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리스또란떼 일은 초보 요리사에게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다. 땀에 흠뻑젖은 조리복을 매일 갈아입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8월의 날씨가 가뜩에나 힘든 일을 부추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숙소로 돌아오면 그 즉시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상이 됐다. 다행인지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했다. 



그래서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어떤 때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뽀송뽀송 뽀얀 침대 커버만을 두르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런 습관이 화근을 부른 것일까.. 가끔씩 무의식 중에 인기척을 느끼곤 했는데 누군가 나의 방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마르게리따가 커튼을 젖히고 방문을 여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잠옷(camìcia da notte)만 걸친 채 나의 침대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화들짝!!) 나는 잠결에도 불구하고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침대커버로 몸을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OHH~NOOOOOOO!!!"


이때부터 전혀 상상 조차 하지 못헸던 시련이 시작되며 이중고를 겪게 됐다. <계속>


Il mare Adriatico si è trasformato in vuoto
il 26 Geanna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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