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아찔한 풍경
동심은 언제쯤 나를 소환할까..?!!
나는 까마득히 먼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 아이가 전축(電氣蓄音機, 전기축음기의 한자식 표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잡기장에 뭔가 열심히 끼적거리고 있다. 전축에서는 똑같거나 비슷한 멜로디와 노래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한 번은 전축 속에 든 LP에 손을 얹는가 하면, 또 한 번은 잡기장에 뭔가를 쓰는 행위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가 전축에서 들리는 음악을 따라 끼적거리고 있는 내용은 이랬다.
체 우나 까사 비앙까 께
께 마이 삐우 이오 스꼬르데로
미 리마네 덴뜨로 일 꾸오레
꼰 라 미아 지오벤뚜
에라 딴또 뗌뽀 퐈
에로 빔바 에 디 돌로레
이오 삐안제보 넬 미오 꾸오레
논 볼래보 엔뜨라레 라
뚜띠 이 빕 비 꼬메 메
안노 꾸알께 꼬사 께
디 떼로르 리 퐈 뜨레마레
에 논 산노 께 꼬제
꿸라 까사 비앙까 께
논 보르렙베로 라샤레
에 라 로로 지오벤뚜
께 마이 삐우 리또르네라
뚜띠 이 빔비 꼬메 메
안노 꾸알께 꼬사..
위의 내용은 가수 마리사 산니아(Marisa Sannia)가 산레모 가요제(Festival di Sanremo 1968)에서 2위를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노래이다. 그녀는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섬 사르데냐에서 1947년 2월 15일에 태어나 안타깝게도 2008년 4월 14일에 61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왕성한 황동 시기는 1966년부터였는데 19세 때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가 주최한 신인 발굴 패스티발에서 우승하면서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까사 비앙까(Casa bianca_Don Backy원곡)가 산레모 가요제에서 2위를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 칸소네는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불리고 있었다. 가사는 매우 서정적인 것으로 우리 정서와 꼭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어릴 때 살던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그리워하는 가사 내용은 여러 가수들에 의해 번안곡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노래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곡 내용과 너무 다른 가사였다.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만 취하여 불렀던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LP를 재생할 수 있는 전축을 가진 집이 드물었는데, 이 아이의 집에 까사 비앙까를 들을 수 있는 전축이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서정적인 멜로디가 너무 좋아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가사를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곧장 전축 앞에 쪼그리고 앉아 노래를 반복해 듣고 있었던 것. 당시 형과 누나들이 흥얼대던 노래의 원문을 베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50년도 훨씯 더 넘은 어느 날 까사 비앙까의 원문을 번역(필자 주)해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CASA BIANCA 하얀 집
C'e' una casa bianca che, 언덕 위에 하얀 집 한 채가 있었어요,
Che mai più io scorderò; 나는 그 집을 차마 잊을 수 없어요;
Mi rimane dentro il cuore 내 마음속애 머물고 있는 그 집은
Con la mia gioventù. 나의 소녀 시절이 고스란히 묻혀있어요.
Era tanto tempo fa, 시간이 많이도 흘렀지만,
Ero bimba e di dolore 나의 소녀 시절의 아픔은 여전해요
Io piangevo nel mio cuore: 내 마음속은 울고 있었어요:
Non volevo entrare là. 두 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거든요.
Tutti i bimbi come me 아이들 전부 나의 마음과 같을 겁니다
Hanno qualche cosa che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겠지요
Di terror li fa tremare 그곳을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떨려와요
E non sanno che cos'è.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Quella casa bianca che 그곳의 하얀 집은
Non vorrebbero lasciare 도무지 포기할 수 없어요
E' la loro gioventù 어린 소녀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죠.
Che mai più ritornerà. 하지만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
Tutti i bimbi come me 아이들 전부 나의 마음과 같을 겁니다
Hanno qualche cosa…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겠지요...
그 아이는 이탈리아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울 결심을 하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 아이가 살고 있었던 집은 작은 언덕 위에 있었다. 그곳은 유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어있는 곳.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들이 오롯이 머리를 맞대고 살아가던 곳이었다.
봄이 오시면 앞동산에 잔디가 파릇파릇 묻어나고 군데군데 샛노란 풀꽃들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작은 도랑에는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이탈리아로 떠난 후로부터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언덕 위의 작은 집은 물론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었던 작은 도랑과 앞동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단지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만 살아있던 추억이 어느 날 기지개 켜듯 깨어난 것이다. 부활의 노래.. 지천에 빼곡히 널린 샛노란 풀꽃들이.. 박제되었던 그 아이의 추억을 화들짝 부활하게 만든 것이다.
그날이 서기 2020년 1월 29일 수요일 정오경이었다. 그곳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항구가 빤히 보이는 해변 옆이었다. 그 아이는 풀꽃 무리에 취해 휘청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황홀한 장면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소환하고 한 때 심취했던 깐소네까지 끌어들이게 된 것이랄까. 마리사 산니아가 부른 까사 비앙까를 쏙 빼닮은 추억이 그 아이를 비틀거리게 만든 것이다.
세월은 오고 가는 것.. 이탈리아어를 배운 이래 처음 번역해 본 노랫말 속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간 저편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청춘을 그리워 하지만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
그러나 한 가지..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어느 날 가슴에서 지워지기 시작한 동심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 덕지덕지 달라붙은 세상의 때만 지우개로 지우면.. 어느 날 샛노란 풀꽃처럼 예쁘게 반들거릴 것이다. <계속>
LA MEMORIA DELLA CASA BIANCA
il 29 Gennaio 2020,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