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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30. 2020

아드리아해의 큰 선물

-방파제에서 만난 엄청난 대물 문어

요즘 용왕님은 뭘 하고 계시나..?!!



귀차니즘에 빠진 갈매기를 날개 하는 방법.. 무리 중에는 초병이 있게 마련이다. 군대에 가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전투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서 실패하는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더글라스 맥아더의 어록이 초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갈매기 무리들도 겉으로 봐선 잘 모른다. 그들에게 누군가는 무리를 해치려는 침입자를 경계하는 초병이 있는 것이다. 주로 먹이사슬 아래에 위치한 착한 무리들.. 사진을 찍을 때 이 같은 전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정중동의 풍경을 보다 동적으로 촬영해 낼 수 있다. 어떻게..? 


녀석들에게 천천히 딴 곳을 응시하며 다가서다가 한순간에 그들을 향해 몇 발짝 뛰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 즉시 초병의 외침(?)이 시작되고 귀차니즘에 빠져 졸고 있던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게 된다. 위 자료사진은 그렇게 나의 카메라에 담긴 것이다. 


어제 오전(28일 현지시각) 아침운동에 나서면서 만난 녀석들.. 나는 갈매기들 뒤로 보이는 방파제 끝까지 다녀오면서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날 방파제 끄트머리에서 전혀 뜻밖의 횡재를 했다. 아드리아 해서 잡힌 대물 문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난 대물 문어였다. 그 현장으로 가 본다. 



지난겨울의 흔적.. 방파제 입구에서 만난 마른 풀꽃이 미라로 변했다.



새 봄의 노래.. 또 한쪽에서는 풀꽃들이 샛노란 꽃잎을 내놓는 곳. 



이날 방파제 끄트머리에서 물질을 끝내고 나온 잠수부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조금 전 바다에서 나왔는지 잠수복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물 망태기를 졸라매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 문어 같았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문어를 좀 볼 수 없는지 물었더니, 그 즉시 좋아하며 망태기를 다시 풀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문어 대물이 느린 걸음으로 방파제를 휘저었으나 이미 녀석의 운명은 다한 후였다. 요즘 용왕님은 뭘 하고 계시나..?!! 자기 새끼들이 잡혀가고 있는 마당에 초병이라도 세워뒀어야 했다. 초병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용왕국 백성들은 즉시 현재의 용왕을 탄핵시켜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보는 1인 혹은 주변의 친구들은 좋아 죽는다. 무게가 대략 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괴물이었다. 한국의 속초에서 우리나라 대왕문어를 자주 봐 왔지만 아드리아 해서 자주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자 바다가 내어준 큰 선물이었다.



대물의 실체는 이러했다. 정말 멋진 녀석인데 어쩌다 침입자에게 발각된 것이다.



기념촬영을 하자니 좋아 죽던 1인이 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의 브런치에 출연하는 영광을 안은 것이다. 브라보..!! ^^



다시 봐도 멋진 녀석이다.



이날 나의 눈에 띈 낯익은 녀석들이 다른 망태기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고동과 성게는 눈에 익었지만 감자처럼 생긴 저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녀석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멍게(우렁쉥이_Halocynthia roretzi)란다. 무슨 멍게가 이탈리아 쓰럽지않게 감자를 닮았다. 그리고 물질을 마친 잠수부는 부연 설명을 통해 '바다의 비아그라'라며 히죽거렸다. 



멍게는 타우린이 많아 노화방지와 피로 해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숙취에 좋다고 알려진 신티올 성분도 있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완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 혈관에 쌓인 노폐물 배출을 돕기 때문에 혈관계 질환에도 효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프라스마로겐이라는 성분이 기억력 감소를 막아 노인성 치매를 예방한단다. 특히 여름철에는 글리코겐 함량이 높아져 피로 해소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척삭동물 문 미삭 동물아문에 속하는 동물이다. 



내가 감자 같은 멍게에 관심을 보이자 한 친구가 감자 껍질(?)을 까 보이며 맛을 보라고 했다. 이게 웬 떡 아니 웬 멍게냐..!!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가운데 첫 손에 꼽는 게 있다면 단연코 멍게였다. 잘 손질한 멍게 한 덩어리를 입안에 넣는 즉시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바다향이 입안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날 맛 본 감자 멍게(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향이 매우 진했다. 아드리아 해산 감자 멍게를 처음 맛 보며 모처럼 황홀한 맛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그 향기가 얼마나 진했으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감자 멍게 향이 입안에 돌았다. 탄핵시켜야 마땅한 용왕님 덕분에 아드리아해를 통째로 삼킨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방파제에서 바라본 오래된 도시 바를레타는, 바를레타 성 뒤로 솟아오른 두오모의 종탑을 제외하면 높은 빌딩이 없는 게 특징이다. 작년부터 두오모 종탑 내외부 수리에 착수한 모습이지만 수리가 끝나면 다시 아드리아해의 보석으로 명성을 이어갈 것이다. 입안에서 아직도 멍게 향이 나는 듯하다.



LE POLPE GRANDISSIMO DAL MARE ADRIATICO
il 28 Gennaio, 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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