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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3. 2020

부모님이 물려주신 무형의 유산

-이성과 감성 혹은 불감증과 안 불감증의 차이

나는 언제쯤 행복해할까..?!!



오늘(2월 초하루) 아침 컴 앞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면서 세월이 무섭도록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을 했다. 불과 나흘 전, 나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바닷가에서 천지 빼까리로 피어난 샛노란 풀꽃 무리들에 취해 있었다. 그때가 1월 29일 정오경이었다. 혹시나 하고 가 본 바닷가에서 풀꽃 무리를 발견하며 꽃 속으로 숨어든 것이다. 



그야말로 꽃밭에서 흥에 겨워 있는 동안 이곳의 시민들은 무심코 지나쳤다. 사구를 깎아 만든 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무시로 지나치고 있었지만, 꽃무리를 보려고 차를 세운 사람은 없었다. 먼발치서만 봄소식을 관망하고 있었던 것일까.. 샛노란 꽃무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사는 사람들도 일부러 꽃밭에 다가오지 않았다. 꽃을 사랑하는 민족들임에도 불구하고 꽃밭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시간과 장소를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들은 습관적으로 꽃이든 예술이든 그들의 문화를 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이성이 감성을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랄까.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겪고 사는 일상이자 불감증에 빠진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성적 잣대로만 판단한 나머지 감성적 자아가 숨을 쉴 수 없거나 구속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이다. 내가 그랬으며 우리가 그러했던 것을 숨길 수 없다. 임마누엘 칸트의 실천이상비판에 따르면 "유한한 인간은 이 세상의 행복을 얻으려는 욕심의 지배를 받아 이를 실천의 원리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한편, 내부에서 단호한 도덕적 명령(의무의 소리)을 받는다."라고 했다.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며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욕심 이상의 욕망의 노예가 된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 주로 이성적으로 행해진 탓에 자아는 숨을 죽이고 이성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던 것이랄까. 나는 그러한 현상을 불감증 혹은 안 불감증으로 정리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욕망의 노예가 된 상태를 말하며, 후자의 경우는 자아 본래의 모습을 찾아내거나 느낀 것을 말한다. 




불감증의 시작은 자아 형성 기간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되는 사회생활로부터 시작되며(필자 주) 이때부터 자아는 숨을 죽이거나 상처를 받고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겪어놓고 보니 그런 일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세상이 이성의 편을 드는 동안 감성은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 그곳은 철저히 똑똑해야 하며 돈과 조직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혈연 지연 학연 인연 등으로 똘똘 뭉쳐 그들만의 이익을 좇는 사회로 굳어진 것이다. 특히 공부는 많은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이웃을 편 가르는가 하면, 한 민족을 줄을 세워 착취구조로 만든 지 오래이다. 




어떤 때는 특정 조직이 국가의 권력을 넘보는 일까지 생긴다. 사람들로부터 '권력의 시녀'로 불리는 검찰 조직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그들 가족들의 이익만 계수할 뿐 이웃은 안중에도 없는 거머리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 못했거나 못하거나.. 금수저가 아니고 흙수저 집안 출신은 인생을 종 쳐야 할 것인가.. 




당신의 판단에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투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들만의 세계를 맹종할 게 아니라 당신만의 리그에 등록(?)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삶과 행복을 담보해줄 적성에 맞는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세상을 깨닫는데 무려 50년 이상의 세월을 낭비했다면 믿기시는가.. 




풀꽃들이 지천에 널린 꽃밭에서 나는 유년기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유년기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가난했던 시절 나의 놀이터는 자연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환자를 돌보시느라 바빴고 가끔씩 산파역을 맡아 왕진을 떠나면 집안에는 누렁이뿐이었다. 동생과 형이나 누나도 친구를 찾아 떠난 텅 빈 집에서 내가 할 일은 친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때부터 귀가할 때까지 나의 놀이터는 앞동산 아니면 가까운 산골짜기였다. 그곳에는 풀꽃들과 맑은 시냇물이 골짜기와 너무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나는 특히 맑은 물을 사랑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조그만 손으로 입에 떠 넣으면 속에 등불을 켠 듯 환하고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이런 습관 때문인지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음료수는 생수가 차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때부터 습관 된 생수 마시기는 혼탁해진 몸을 정화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아를 지켜준 일등공신이었다. 내가 사랑한 친구와 술은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필요한 해독제가 물이었으며 산하를 떠도는(?) 동안 단련된 체력은 연마한 운동과 함께 나를 견디게 한 큰 힘이었다. 


무엇보다 사춘기에 접어들 때까지 부모님은 나에 대해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다 버린 아이가 아니라 웬만한 실수나 잘못은 꾸짖지 않고 용서를 해주셨던 것이다. 어린 나는 그때마다 자기 검열을 통해서 잘잘못을 반성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부모님께서 내게 물려주신 유산은 이게 전부였다. 무관심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배려를 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먼 나라의 일터로 떠날 때 아버지께서 거금의 노잣돈을 챙겨주신 게 마지막이었다. 당시 보통 사람들의 한 달 월급은 2~3만 원 하던 시절.. 수십만 원을 손에 쥐어주며 "사내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필요할 때 쓰라"고 주신 것이다. 이때부터 내 인생 고난의 여정.. 기나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꽃무리 속에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찌든 때를 한 알 한 껍데기씩 씻어내는 맑은 물과 샛노란 풀꽃들이 없었다면.. 나는 불감증에 시달리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세상의 성공'에 집착하며 인생 전부를 허비했을 게 틀림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달라야 한다. 나 몰래 조용히 흐느끼던 감성을 무한 배려할 때.. 남은 생애 동안 내가 할 일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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