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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5. 2020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바다

-너무 잔잔해진 연가의 바다 아드리아해

우리 가슴을 따뜻한 봄 햇살로 녹여주었던 달콤한 연가(宴歌)가 있었다..!!



서기 2020년 2월 2일 오전 날씨 화창화창..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맨 먼저 눈에 띄는 풍경(위 자료사진)이다. 종려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바다 너머로 아드리아해가 펼쳐져 있는 곳. 수평선 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곳이 바를레타 내항을 보호하고 있는 방파제이다. 나는 저 방파제 위를 산책과 운동삼아 소일하는 것이다. 


지난겨울 내내 비바람이 몰아치던 바다.. 가끔씩 잠잠할 때도 있었지만 봄이 오시기까지 늘 변덕을 부리며 사납고 앙칼진 모습을 보여왔다. 그 바다가 잠잠해지며 지천에 풀꽃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방파제를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가끔씩 생각해 내곤 했던 노래가 연가(宴歌)였다.



조금 전 바를레타 성 좌측으로부터 바닷가로 진출했다. 바다는 잠잠했고 바닷물은 수정처럼 맑고 고왔다. 



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애국가 가사 4절은 외우지 못해도 연가(宴歌) 만큼은 익숙할 것이다. 뉴질랜드의 팝페라 가수(Hayley Westenra)가 부른 뉴질랜드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Pōkarekare ana)는 우리나라의 가수 은희 씨가 번안곡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애창하던 노래였던 것이다.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또래의 학생들은 언제 어디를 가나 이 노래를 불렀다. 당시 유행하던 통기타의 멜로디는 저 멀리 남반구의 청정지역 뉴질랜드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우리나라에 한(恨)의 문화를 대표하는 아리랑이 있었다면, 뉴질랜드의 북섬 로토루아로토루아 호수에 살던 마오리족의 전설에도 아리랑을 닮은 애틋한 멜로디가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가슴을 마구 뒤흔든 것이다. 이 노래의 배경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처럼 뜨겁게 뜨겁게 이어졌다. 



마오리족의 전설에 따르면 호수 섬 모코이아에 살던 휘스터족 소족장의 아들 트타네카이는 육지에 사는 너무 아름다운 아리족 대족장의 딸 히네모아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대축제 때 멀리서 바라만 볼뿐 신분 격차로 인해 차마 사랑 고백을 하지 못했다. 사실 히네모아 역시 트타네카이를 연모하고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한 사람의 중재로 인해 결국 만나게 된다는 전설이다. 그 전설의 노래는 이러했다.




Pōkarekare ana      포카레카레 아나


Pōkarekare ana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Ngā wai o Waiapu            와이아푸의 호수는
Whiti atu koe hine            그대 건너간다면
Marino ana e                     잠잠해지리라


E hine e                               그대여
hoki mai ra                         돌아와 주시오
Ka mate ahau                     그대를 너무나 

I te aroha e                          너무나 사랑합니다


Tuhituhi taku reta              저는 편지를 써서
tuku atu taku rīngi             반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Kia kite tō iwi                     사람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raru raru ana e                    제가 얼마나 괴로운지.



E hine e                                    그대여

hoki mai ra                              돌아와 주시오

Ka mate ahau                          그대를 너무나 

I te aroha e                              너무나 사랑합니다


E kore te aroha                       제 사랑은 절대
E maroke i te rā                       마르는 날이 없을 겁니다.
Mākūkū tonu                            언제나 젖어 있을 테니까요.
I aku roimata e                         제 눈물로 말입니다.


E hine e                                    그대여

hoki mai ra                               돌아와 주시오

Ka mate ahau                          그대를 너무나 

I te aroha e                              너무나 사랑합니다





이날 아드리아해는 너무 잠잠했던 나머지 졸고 있는 듯했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바다는 호수보다 더 잠잠했다. 그 바닷가에는 이곳 시민들의 낚시터가 돼주고 있었다. 어떤 때는 팔뚝만 한 물고기를 낚는가 하면 피라미 같이 작은 물고기를 잡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심각하지 않고 여유가 넘친다.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도 당신의 시선이 바다로 향해있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지며 평온을 되찾는다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그 바닷가에서 오래전에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사랑을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념무상에 빠진 낚시꾼들에게 잠시 허튼 마음이 생기기라도 하면 하시라도 찾아드는 망상.. 바다가 잠잠한 날이면 그럴게 분명해 보였다. 



연가의 노랫말을 보면 원곡과 번안곡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도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것.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 어느 곳에 살아도 표현법의 차이는 있어도 본래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오리족의 전설에 녹아든 노랫말을 은희 씨가 부르면 이러했다.   



연가(宴歌)

-은희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러운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방파제 위를 걷다 보니 이탈리아 스러운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자전거 곁에 묶어둔 기다란 작대기 두 개는 문어를 잡는 도구이다. 막대 한쪽 끝에 뾰족한 삼지창을 묶고 미끼를 달아 물속에 담그면 문어가 입질을 하는 순간 낚아채는 방식이었다.


우리나라 70년대 초중반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노랫말이 이러하다. 바닷가로 가던 산으로 가던 캠퍼스에 던 삼삼오오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둘러앉아 부르던 노래였던 것이다. 연가에 힘입었던 탓인지  어느 날 군부독재의 원흉은 총탄에 쓰러지고 우리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서서히 찾아오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 방파제 위로 비바람과 파도가 넘실 댓는데 세상은 늘 이런 모습일까.



방파제 끝에는 이곳 시민들의 때 이른 일광욕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방파제 위를 걷는 동안 나는 줄곧 저 바다 너머에 있는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매일 방파제 위를 걸으며 통화를 하곤 했던 습관이 연가를 불러온 것이랄까.. 



당신이 피렌체서 한국으로 일시 귀국한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대략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아내는 많은 일을 해 오고 있었다. 당신을 낳아준 조국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미디어 바이러스와 함께 듣보잡 바이러스까지 한몫 거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에 맞추어 비행기 표를 끊고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연가가 슬며시 끼어든 것이다. 



아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이탈리아는 우기에 접어들면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였다. 그야말로 비바람이 몰아치던 바다를 연출하며 곁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마오리족의 전설에 비견되는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아드리아해 건너 멀리 동쪽의 한반도.. 직항 비행기로만 12시간이 더 소요되는 먼 거리에 아내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부터 바다는 잠잠해지고 바다 건너 저 먼 곳으로부터 귀국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러운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요즘 생각해 보면 너무 너~무 착해 보이는 노랫말이지만 사랑은 늘 그런 거.. 사랑할 때는 유치 찬란한 빛이 발하는 것을 당사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법이다. 또 눈치채면 어떠랴.. 나만 좋으면 그만. 오늘 따라 수정처럼 맑고 고운 바닷물이 너무 아름답고 좋아 보인다. 어서 오시오 아내 님이시여.. 은빛 날개를 달고..!! ^^



IL MARE ADRIATICO TROPPO TRANQUILLO
il 22 Febbrai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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