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의 색다른 입춘 풍경
사라진 풍경 하나..!!
서기 2020년 2월 5일 아침 광풍으로 뒤덮인 아드리아해.. 나는 그곳에서 목신 파우누스(Faunus)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e)의 대결을 목격했다. 광풍을 동원한 노도 앞에 한 고목이 뿌리째 뽑혀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지난해부터 금년까지 무시로 드나들었던 바닷가였는데, 바닷가를 드나들면서 잎을 다 떨군 고목이 이제나 저제나 연초록빛 잎을 내놓을까 궁금해했었다.
그런 그가 입춘 절기(우리나라 시각)에 광풍을 못 이기고 뿌리째 뽑힌 것이다. 간밤에 봄비를 쏟아내던 일기는 이날 사람이 바람에 날릴 정도의 거센 바람이 아드리아해로부터 불어닥쳤다. 거센 파도는 패딩 조끼를 적시고 카메라 렌즈까지 희뿌옇게 만들었는데 그를 보는 순간 신화 속의 두 주인공이 생각난 것이다.
이랬던 바다가..
운명은 이런 것일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야생 수선화와 노란 풀꽃들과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었건만.. 포세이돈의 분노에 목신의 저항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포세이돈이 왜 분노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녀석은 목신이 불고 있었던 봄의 피리 소리가 귀에 거슬려 시샘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내와 통화를 하며 이 같은 상황을 전하자 "거기도 꽃샘추위가 있나 봐"라며 일축했다. 바닷가로 나서기 전 아침운동을 갈까 말까를 생각하다가 집을 나서면서 '꽃샘추위'를 생각했는데 아내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다 좋다.. 포세이돈이여! 시샘까지는 좋다 치자 그런데 치사하게 고목 한 그루를 굳이 쓰러뜨려야 했는가.. 이 나쁜 넘의 자식아.. 하고 속으로 팔뚝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목신의 편을 들고 있었다. 표지 사진에 이어 두 번째 사진이 쓰러지기 직전 고목의 마지막 모습이며, 사납게 불어닥친 광풍 이전의 평화로운 아드리아해를 고목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는 이날 광풍에 맞서 사진과 영상으로 포세이돈의 일면을 담았다. 광풍의 바다가 만들어낸 천의 얼굴 아드리아해로 안내해 드린다. Andiamo..!! ^^
이렇게 변했다..!!
뿌리째 뽑힌 고목이 쓰러진 바닷가 너머로 사나운 광풍과 파도가 미친 듯이 달려든다. 바람은 바닷물을 작은 언덕 위까지 밀어 올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바닷가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바람에 날린 파도가 패딩 조끼를 적시고 있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저 고목 앞 바닷가를 걸었지만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불쌍한 목신의 후예여..!!
위 영상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아침운동 코스인 방파제 입구까지 진출하여 담은 사진을 음악과 함께 담아봤다. 나머지 풍경들은 보다 실감이 나도록 큰 화면으로 보도록 한다.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에 광풍의 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현장의 풍경을 영상에 담았다.
천의 얼굴 아드리아해
사진으로는 느낌이 덜하지만 바를레타 내항은 이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광경을 연출 헸다. 내항이나 외항 모두 사납게 돌변한 것이다. 이곳 바닷가에 살아가던 오리가족 4마리도 바닷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웅크리고 있었다. 피렌체서 이곳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후 무시로 만난 아드리아의 표정은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이었다. 만약 바다의 모습이 늘 이랬다면 바다는 나로 하여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메두사(Medusa) 같은 존재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케토의 딸로 고르고 세 자매 중 막내였다. 무시무시한 외모를 가진 두 언니와 달리 매우 아름다운 외모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가졌는데, 포세이돈이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강간한 후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자신의 미모(머리카락)가 아테나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하다가 흉측한 외모의 괴물로 변하는 벌을 받았다는 것. 그런 그녀를 마주치거나 바라보는 순간 돌이 된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된 것이다. 저주를 받은 메두사는 아무도 못 오는 곳으로 은둔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리는 비운을 맞게 된다.
요즘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넘쳐난 신화 세상을 잠시 돌아보는 것도 포세이돈 때문이며 메두사 때문이었다. 과학의 세상에서는 기압골의 영향 등으로 발생하는 날씨지만, 신화의 세계에서는 광풍으로 넘실대는 바다에 신의 힘이 존재했던 것이다.
겨울을 지배한 신들의 세계에서 봄의 전령을 부르고 있는 목신의 피리소리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목신은 단지 숲을 위해 피리를 불었지만 피리 소리를 들은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그를 자상하게 여겨 봄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랄까.
광풍이 불어닥친 이틀 전까지만 해도 바닷가에 불어오는 바람은 비록 세찰지라도 피부에 와 닿은 바람은 마치 오븐에서 구워낸 것 같이 훈훈했다. 그리고 이튿날 마구 성깔을 부려대는 것이다. 신화의 세상 우주관에는 지구별.. 그중에서도 아드리아해 이오니아 해 지중해가 전부였을 정도로 세상은 좁아터졌다. 그리고 태양계로 우주로 생각을 확대해 보면 포세이돈이나 메두사 등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은 또 얼마나 속이 좁아터졌는지.. 글쎄 입춘날에 꼭 고목 한 그루를 쓰러뜨려야 했나..
방파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은 거세게 휘몰아쳤다. 광풍에 몸이 날리고 카메라를 붙든 손이 마구 떨리며 휘청댓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여전히 광풍에 쓰러진 고목을 생각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바다 너머로부터 끊임없이 실려오는 광풍은 지난여름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던 바닷가 대부분을 바닷물로 채웠다.
입춘을 시샘하는 포세이돈의 바다.. 천의 얼굴을 가진 아드리아해가 잠잠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며칠 되지 않을 것이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오리족의 전설을 끌어다 연가를 부르고 있었지..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러운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참 희한하지..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포세이돈이 바다를 들끓게 하지만 실상은 태양신의 졸개에 불과한 것. 같은 이유로 신화의 세계나 과학의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들 조차 태양신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거시 세계에 사는 동안 내가 느끼는 게 겨우 이런 모양이다.
귀갓길에 다시 가 본 오리가족들은 바다로부터 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시로 날리는 파도를 피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앉아 바람이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파도에 흠뻑 젖어있었다. 나 또한 뽀송뽀송헸던 패딩 조끼가 오리가족을 닮았다. 매우 요란한 입춘 신고식이 아드리아해 너머로부터 다가온 것이다. 그나마 여긴 한국보다 조금 더 나을까.. 전화기 너머에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응.. 여긴 영하 10도씨에서 15도씨나 돼..!!
TEMPESTA SUL MARE ADRIATICO
il 05 Febbraio 2020,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