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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20. 2020

친구가 안내한 잊지 못할 드라이브

-여행지에서 주검을 목전에 두고 촬영한 사진들 

이 포스트를 내 친구 뚤리오에게 바친다..!!



내 친구 뚤리오에게


너무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게 됐소. 나는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현재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아마도 별일이 없는 한 나는 이곳에서 살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나의 아내는 이번 주말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올 예정이랍니다. 그것도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라 꽤 긴 시간 동안 내 조국의 생활 대부분을 정리하고 돌아올 예정이오. 




나는 그동안 당신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며 사진첩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 차마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기록되어 있었던 거지요. 당시를 회상하니 단박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당신이 베푼 친절 이상의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거지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어째.. 당신이 베푼 은혜는 한 올도 다치지 않고 사진첩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지.. 



당신의 아내 마리아와 아들내미 그리고 우리 내외 다섯 명이 나누어 탄 차 속에서 당신은 주로 나를 배려했지요. 먼 나라에서 여행 온 이방인에게 무시로 베풀어준 친절.. 꽤 긴 시간이었지만 전혀 불편한 내색은커녕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일 모르는 바 아니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나와 아내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합니다. 또 그때마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지요. 아마도.. 그때 두 분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최소한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주검을 목전에 둔 상황과 다름없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내게 큰 희망을 불어준 사건이 당신과 함께한 드라이브였습니다. 



당신은 그저 작은 친절을 베푼 것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내겐 절박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이 없었다면 절망 끝에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지요. 



내 친구 뚤리오.. 당신과 탑승 동행자들은 그 같은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사진 한 장을 카메라에 담을 때마다 나는 고통의 몸부림을 쳐야만 했소. 조수석에 앉아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허리는 찢어오는 듯했고, 누군가 골수에 뾰족한 바늘을 쑤셔대는 아픔이 이어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당신과 마리아가 우리에게 베푼 은혜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여행 때문에 견디고 또 견뎠지요.



내 친구 뚤리오.. 그런 당신이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여러 차례 우리를 데리고 최고의 풍광을 선물해 주고 있는 동안 서서히 새로운 삶의 기운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삶을 포기하다니요..! 



나는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길 위에서 나 혼자 걷기 연습을 통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지요. 그때마다 몇 발자국도 걷지 못해 길 위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울 힘도 없었지요. 소리를 지를 힘은 더더욱 없었으니 말이죠. 



아내는 매일 저녁 습포 마사지를 했으며 병원에 들러 검사를 해 봐도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숙소로 돌아오며 절망의 한숨만 쉬었답니다. 여행 중에 거의 한 달을 침대에 누워 지냈으니 아내는 또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했을까요.. 



내 친구 뚤리오.. 그때 당신은 우리에게 "잠시 바람이나 쇠자"라고 했지요. 지금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제안한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대서양을 건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꼬자이께로 갈 수만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조수석에 앉히고 싶습니다. 우리가 봤던 천국 같은 풍경 속으로 내가 당신을 안내하고 싶은 거지요. 친구여.. 그때까지 부디 몸 건강하시고 가내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오랜 벗

yookeun Chang으로부터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나는 친구가 제안하고 동행한 이 드라이브를 끝으로 한 달  동안 지속된 병상에서 일어나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은 관련 브런치 등을 통해 언급된 사실이지만 기록을 펴 놓고 보니 새삼스럽다. 친구 내외의 도움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 나는 숙소에서 가까운 시립공원묘지까지 혼자서 걸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도 아니면 모.. 여행지에서 가만히 누워서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 어디가 부서지던지 걸을 때까지 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십 보 백보 다시 백보 이백보를 걸으며 보라색 초초가 흐드러지게 핀 골짜기 옆에 위치한 공원묘지까지 이동한 것이다. 내 앞에는 두 손을 못 박힌 채 고개를 떨구고 피를 뚝뚝 흘리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불편한 몸을 끌고 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이 가벼워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등을 떠밀다시피 이동한 곳.. 그곳에서 차마 믿기지 않는 기적을 경험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이리 뛰어보고 저리 뛰어보는 등 내 몸에 일어난 이상 신호를 시험해 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통증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즉시 숙소로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동안 아내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몸도 성하지 못한 사람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궁금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동안 일어난 기적을 소상하게 일러바쳤다.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이 솟구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기운의 실체를 느끼곤 한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천지신명께서 우리를 늘 돌보고 계신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세상은 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물론 세계 최고 청정 지역 파타고니아 투어의 의식 같은 생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때 내 친구 뚤리오와 마리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친구가 제안한 차마 잊지 못할 드라이브를 통해 새로운 삶을 다시금 꿈꾸는 것이다. 



"고마웠어요. 내 친구 뚤리오..!!"


FOTO SCATTATE DI FRONTE ALLA CARCASSA A DESTINA
il Nostro viaggio in Sud America Patagonia centrale CIL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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