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챙겨 온 어마 무시한 물건들
더디게 오는 듯 너무 빨리 지나치는 시간들..!!
나흘 전 오전 6시 30분경(현지시각), 나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중심을 거쳐 바를레타 기차역으로 향했다. 저만치서 동이 터오는 가운데 인적이 뜸한 시내 중심부를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아내를 마중하러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간밤에..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아내의 동선을 따라 탑승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공항으로 함께 마중 나가 거들었지만 공항에 도착할 때쯤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 갑갑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혹은 있었는지..)그리고 출국이 가까워 겨우 통화가 이어졌지만, 전화기 너머 사정은 왠지 불안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를레타 현지 시작은 오전 0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 시각 아내와 나의 대장정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 놓고 배낭에 챙겨 넣고 있었다.
아내는 출국 직전 통화를 통해 짐이 생각보다 많아 과징금을 무는 등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사전에 각오를 한 일인데 공항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두 개의 큰 가방을 가져올 것이라 했지만, 결국 짐보따리는 세 개로 늘어났다는 것. 따라서 공항으로 가는 내 손에는 큼직한 케리어가 따라가고 있었다, 짐을 나누어 담을 요량이었다. 출국 시간은 가까워 오는 가운데 공항 풍경은 무거웠다. 그 시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를레타 역에 도착하여 내가 이용하게 될 비나리오 2에 도착하자 저 멀리 아드리아 해 너머로부터 동이 밝아 오고 있었다. 아직 기차가 도착하려면 대략 50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각.. 아내가 은빛 날개를 달고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12시간의 직항.. 인천공항발 시간을 현지시각으로 계산하여 마중을 나가야 했다.
바를레타의 첫차는 오전 7시 47분에 있었으며 미리 예매를 해 두었다. 바를레타에서 로마 떼르미니 역까지 이동시간은 대략 4시간이 소요되고, 다시 그곳에서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역까지 가는 시간은 4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그러니까 바를레타에서 로마 공항까지 가는 시간은 대략 5시간이 소요되므로, 아내의 비행 스케줄에 따라 내가 공항에 도착하면 대략 5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아내의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5시 5분..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아내가 탄 비행기가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시간이 현지의 막차 시간에 맞아떨어져야 했다. 로마 공항의 막차 시간은 오후 6지 08분으로 입국장을 빠져나온 아내(혹은 비행기)가 조금이라도 연착을 하거나 하면 문제가 생긴다. 바를레타행 기차 시간을 이용하지 못하고 공항에서 띠부르띠나 버스역으로 이동한 다음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는 난관을 예고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택시가 없어서(어쩌다 한 대 목격한 적 있음ㅜ) 밤늦게 혹은 이른 새벽에 도착하면 집까지 이동하는 힘든 여정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고 손가방을 들고 있다. 아내가 인천공항을 떠나기 직전 남긴 말 중에는 "케리어의 바퀴 하나가 파손되었다"라고 했으므로.. 만약 바퀴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밤을 꼬박 새운 나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평소 나 답지 않게 차창에 머리를 박고 졸고 있었다. 피곤이 마구 몰려드는 것이다. 창 밖으로 뿔리아 주의 광활한 평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봄은 일찌감치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어떤 농장에서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평원을 물들이고 있었다. 동네 근처 바닷가에만 봄이 오신 줄 알았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평원은 연녹색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곧 가지가 정리된 포도원에서도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병든 닭처럼 졸다가 반쯤 배시시 뜬 눈 저 멀리 어느새 봄은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봄을 한국의 봄에 비교해 보면 연분홍 진달래가 전국 산하 곳곳을 물들이고 있겠지.. 이맘때를 가수 백설희 씨 등 여러 가수가 불렀던 노랫말은 이랬다.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아내를 마중가는 '로마로 가는 길'에는 연분홍 치마는 물론 산제비도 성황당도 알뜰한 맹세도 꽃편지도 청노새도 역마차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봄이 오시는 풍경이 기찻길 옆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꽤 먼 시간을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홀로 밤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을 따져보니 7개월이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별거가 별거던가.. 이런 게 별 거지..!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봄은 일찌감치 내 곁에..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로마 공항에 도착하는 여정 같은 모습이랄까. 혹한의 겨울이 봄을 잉태한 것처럼 전화기 저편에서 로마로 떠난다는 소식 속에 아내는 봄처녀를 쏙 빼닮아 있었다. 비록 겉모습은 오래돼 보일 망정 속 사람은 로마로 가는 길의 봄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시간은 급행열차의 속도에 견줄 만큼 빨리도 흘러갔다. 그동안 창밖으로 따라다니던 풍경들이 느리게 느리게 지나치면서 마침내 내가 탄 기차는 로마의 떼르미니 역에 도착한 것이다. 졸다 깨다.. 창밖 풍경 대부분을 놓친 다음 떼르미니 역에 도착하니 대한민국을 통째로 들썩거리게 만든 꼬로나 비루스가 문득 떠올라 주변을 둘러봤다. 어쩌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로마는 달랐다. 전 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여행객 틈바구니 속에서 한 두 사람이 마스크에 의지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광판의 시곗바늘은 오전 11시 30분..
떼르미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꼬로나 비루스(Corona virus) 풍경을 만나기 위해 아시아 음식을 파는 리스또란떼에 들러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곳에서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종 비루스와 무관한 듯..
그리고 입국장에 들러 봤더니 그곳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때부터 시간은 멈춘 듯했다. 입국장 앞에서 그 넘의 졸음은 어떻게 그렇게 쏟아지는지.. 10분이 1 시간은 되는 듯 전광판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봐도 아내의 도착 예정시간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봄도 그랬을까.. 봄은 더디게 오는 듯 너무 빨리 지나치는 시간들.. 차창밖의 풍경이 그랬지..
마침내 아내가 탄 비행기의 착륙 시간이 전광판에 떴다. 조마조마.. 설렘 설렘.. 비행기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10분 더 빨리 도착하고 있었다. 이대로 짐을 찾아 입국장을 빠져나오면 바를레타행 마지막 기차를 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렇게 돼야 했다. 그동안 아내와 통화를 통해 비행기가 착륙하면 전화기를 열어놓으라고 했다. 따라서 착륙 소식이 전해진 직후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감감무소식.. 그리고 5분이나 흘렀을까. 내 전화기 속에서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는 것. 시간을 계산해 보니 최소한 오후 5시 30분경에는 입국장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국장 바깥에서 기다리며 통화를 시도하며 짐을 가트에 옮겨 나오라고 일렀다. 나는 그동안 입국장에서 기차역까지 가장 빠르고 편리한 길을 찾아내 빠르게 이동할 심산이었다.
그런 잠시 후 아내는 가트를 끌고 입국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있었다. 또 직항을 탄 손님들 몇몇은 마스크를 했지만 다수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또 로마 공항의 풍경은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매우 다른 풍경이었다. 아내는 내가 기다리는 통로 저편으로 이동하고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 즉시 크게 이름을 불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로맨틱한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꼭 껴안고 입맞춤이라도 할 심산.. 그런 시추에이션이 벌어지면 아내는 이렇게 말하겠지..!
"아~ 왜 이래.. 사람들이 보는 데서..(부끄 부끄)"
아내가 좋아하는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 속의 풍경이 고스란히 입국장에 피어있는 것. 나는 이날 아내가 밀고 나온 가트를 열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실로 상상 밖의 요긴한 생필품 등을 대형 가방 속에 빼곡히 채워 넣었던 것이다. 케리어 무게만도 90킬로그램을 넘었고 배낭과 손가방의 짐 모두를 합하면 100킬로그램을 훨씬 더 상회한 무게가 봄바람을 타고 이탈리아까지 날아온 것이다.
그동안 이 같은 내용 등에 대해서 관련 브런치에 실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멸치 다시마 된장 고추장은 물론 우리가 함께 아껴 사용하던 생필품 등이 짐가방 구석구석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서 통화할 시간 조차 없었던 상황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거의 이삿짐 수준이었다. 그동안에 일어난 자세한 내용은 따로 쓸 예정이다. 아내는 "마스크가 불편해 보인다"는 나의 말에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내 마스크를 벗었다. 로마 공항 입국장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속이 다 시원하단다.
글을 끼적거리는 지금 아내는 한국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여놓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아직 시차 적응을 하려면 코를 더 골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바를레타에 도착한 직후 우리 앞에 기다린 행운에 감사했다. 또 이튼날 아내와 처음으로 바닷가 나의 운동 코스를 방문하자 그곳에는 풀꽃들이 난리가 아니었다.
"와 할머니다아~(아 야.. 아저씨가 아줌마라 부르라고 했잖아!)"
"와 아줌마다아~^^(왁자지껄)
아내 왈..
"풀꽃들이 너무 아름답네..!!"
LA PRIMAVERA STA ARRIVANDO A ROMA
il 23 Febbrai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