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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1. 2020

지구별 최고의 호수에 사는 갈매기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석권과 아내의 표정

아주 가끔씩 갈매기도 시선을 끌 수 있다..!!



누군가 지구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의 이름을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아르헨티나의 산 까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에 위치한 나우엘 우아피 호수(Lago Nahuel Huapi)라 말한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를 본 적이 없다. 안데스를 끼고 사방이 숲에 둘러싸인 이곳은 연중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물은 수정처럼 맑고 푸르며 빅토리아 섬에 자생하는 아라야네스 숲(Parco nazionale di Los Arrayanes)은 디즈니랜드의 영감을 불러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 숲 속에 발을 디디면 온갖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 그런가 하면 바릴로체 시가지는 마치 동화 속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둔 듯하다. 위 자료사진은 바릴로체 시청사가 있는 곳으로 아내와 내가 묵었던 숙소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곳을 두 번씩이나 방문하는 행운을 누렸다. 남미 일주와 파타고니아 투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방문한 곳이자,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된 곳이기도 했다. 자료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저 아래로 걷고 있는 우리의 환영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우엘 우아피 호수로 떠나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짐보따리를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현지시각), 자료를 준비해 놓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컴 앞에 앉았는데 한국에 있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내용은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친구들을 만나는 이야기 등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아내의 습관은 재미있다. 



평소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다가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아예 다른 방으로 사라진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있는 듯 문밖으로 속닥속닥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어떤 때는 소리를 질러가며 깔깔대는 소리가 문틈으로 삐져나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어떤 때는 두세 시간은 더 지나야 끝나곤 했다. 수다도 수다도.. 그렇게 말하면 "남자들은 몰라도 돼.. 여자들은 이래!"라며 일축해 버린다. 




그런 아내가 요즘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출국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 아침은 웬일인지 전화기 너머에서 '빨리 끊었으면' 싶은 뉘앙스가 풍겼다. 그러면서 "나.. 봉준호 감독 봐야 돼!!"라며 전화를 끊자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인터넷을 열자마자 속보로 전해오는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석권 소식을 알고 있는 터라 굳이 말을 끄집어내지 않았는데 아내는 텔레비전으로 전해오는 봉 감독의 수상 소식에 홀딱 빠져있는 것이다. 



그 시각 대한민국은 봉 감독 관련 소식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듣보잡 바이러스가 난리를 치더니 봉 감독의 수상 소식이 바이러스를 한방에 날려버렸다고나 할까. 아내의 전화기 속 표정은 좋아 죽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당신이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등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멀리서 마치 나의 일처럼 봉 감독의 수상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아했다. 그는 한 때 우리 사회로부터 정치적 왕따를 당한 감독이었다. 예술작품을 이념의 틀에 끼워놓고 가위질을 해댄 꼴불견 대통령들이 그를 견제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런 그가 당당히 최고의 영화인의 축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석권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나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소식을 접하자마자 나우엘 우아피 호수 위를 비행하던 갈매기들을 떠올리며 부랴부랴 편집에 들어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나우엘 우아피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미끄러지듯 수면 위를 질주했다. 나우엘 우아피 호수가 위치한 곳은 내륙인데도 불구하고 갈매기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녀석들은 안데스 너머 뿌에르또 몬뜨로부터 이동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호수의 텃새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바닷가 갈매기들이 주변의 풍경 때문에 조금은 지저분해 보이는 반면, 이곳에 사는 갈매기들은 귀족과 다름없었다. 어디 털끝에 먼지 한 점이라도 묻지 않은 녀석들이 유람선을 따라나서는 것이다. 갈매기가 주로 그러하듯 절대 높이 나르지 않는다. 그건 리처드 바크의 단편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녀석들은 이 호수에 둥지를 튼 이후부터 관광객들이 유람선 선상에서 내미는 과자 부스러기에 맛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유람선이 빅토리아 섬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녀석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우아한 날갯짓으로 사람들이 내민 과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녀석들의 비행 모습을 보면 과자의 종류를 꽤 차고 있는 듯 아무거나 함부로 낚아채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내민 과자 부스러기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한 순간에 낚아채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통해 행운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라 타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누군가 나를 찜을 해주어야 행운의 길이 열린다고나 할까..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을 접한 아내가 당신의 일처럼 기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등식이 적용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최초 봉 감독 일행은 당신의 작품이 이 처럼 위대한 결과를 낳을 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명 감독의 소박한 마음이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들며 최고의 영예를 거머쥐게 만들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영화는 감독 혼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다 안다. 누군가 제작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작품에 걸맞은 영화배우를 섭외하는 한편,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과 촬영감독과 스텝들의 빈틈없는 작업이 필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영화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네 삶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얼렁뚱땅 만든 작품은 사람들이 얼렁뚱땅 지나치고 말 것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 작품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건 자명한 일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지구별 최고의 호수에서 살아가고 있는 갈매기들도 아무 과자 부스러기나 함부로 물지 않는다. 하물며 지구별 최고의 작품을 선별하는 심사위원들이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매료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나는 오늘 아침 봉준호 감독 때문에 아내로부터 졸지에 왕따를 당했다. 그런데 희한하지.. 왕따를 당하면 서운한 마음이 들어야겠지만, 나우엘 우아피 호수 위를 나는 갈매기들처럼 가뿐해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행운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이 더딘 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남모르게 땀 흘려 만든 작품이 사람들을 감동케 한다는 걸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늘 봉준호 감독 때문에 봉 잡은 듯 기분 좋은 날이다.. 진심으로 수상을 축하드린다! BRAV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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